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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은 무슨 한이 그리도 많아 온 몸에 저리도 많은 가시를 달고 있을까요
▲ 선인장 선인장은 무슨 한이 그리도 많아 온 몸에 저리도 많은 가시를 달고 있을까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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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무슨 한이 그리도 많아
온 몸뚱아리 촘촘히
뾰쪽한 저항의 가시를 달고 있느냐
-이소리 '선인장' 모두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도 달아날 구멍은 열어 놓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렇잖아도 어려운 세상살이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특히 글을 밥으로 삼아 살아가는 시인 작가들은 '맞은 곳에 또 맞는' 것처럼, 식의주 그 자체가 곧 아픔입니다. 이러다 아내에게 무능한 남편으로 찍혀 이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이러다 또다시 살림이 거덜나 노숙자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옛말에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도 도망 갈 구멍은 열어놓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쥐도 목숨이 너무 위태로운 상태에서 달아날 곳조차 보이지 않으면 고양이에게 덤벼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생경제를 잠꼬대처럼 내뱉는 이명박 정부는 힘겨운 서민들이 살아갈 구멍조차 열어놓지 않고 있습니다.

촛불집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5일 미국 부시 대통령 방한에 때맞추어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을 든 국민에게 이명박 정부의 경찰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마구 쏘았습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착한 국민을 솔개가 병아리 낚아채듯이 마구 연행했습니다.

촛불을 든 국민들을 마구몰이식으로 연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찰도 군사독재정부 때의 그 백골단으로 돌변했을까요. 이명박 정부의 경찰은 진청색 옷을 입고 있어 언뜻 검은 빛으로 보이니 '흑골단'이라고 부를까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가시 돋친 말이 마구 튀어 나옵니다.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가시로 만든 선인장처럼.

저 선인장이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뾰쪽한 가시로 말았듯이
▲ 선인장 저 선인장이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뾰쪽한 가시로 말았듯이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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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파란 몸뚱이에서 눈물 같은 물방울이 주르르 주르르

2003년, 경주 토함산 불국사 아래 있는 어느 절에서 일 할 때였습니다. 그때 사무실 한 귀퉁이, 그러니까 출입문 들머리에 온몸에 바늘처럼 뾰쪽한 가시가 빼곡히 솟아난 선인장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놓여 있었는지 잘 몰랐습니다. 제가 올 때부터 그 선인장은 줄곧 그 자리에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 있었으니까요.

하루는 그 선인장이 제 마음처럼 시들해진 것 같아 생수를 조금 주었습니다. 선인장이 뿌리를 옹골차게 박고 있던 그 화분 밑 흙들이 얼마나 바싹 말라 있었던지, 물을 흠뻑 주어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그 선인장을 그 자리에 두고 간 뒤 한 번도 물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이 어서 선인장이 뿌리박고 있는 흙 속으로 스며들기를 기다렸습니다. 물은 좀처럼 흙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물뿜이로 선인장의 가시 돋친 새파란 몸뚱이에 물을 흠뻑 뿜어 주었습니다. 선인장 몸뚱이에서는 이내 눈물 같은 물방울이 주르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허공을 찌르고 있는 날카로운 선인장 가시에도 이슬처럼 동그란 물방울이 매달려 겁먹은 눈망울을 또록또록 굴리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선인장의 뾰쪽한 가시에 가슴을 마구 찔린 동그란 물방울들이 아야 아야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소리는 제 귀에 오랜만에 맑은 물방울을 머금은 선인장 가시들이 내뿜는 속울음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선인장이 희미하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가시에 동그란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그 선인장이 아찔아찔 살아가는 제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희망이란 낱말이 좀처럼 달려오지 않아 속으로 속으로 울다가 기어이 내뱉고 마는 제 독설이 선인장의 가시처럼 보였습니다.

선인장이 아찔아찔 살아가는 제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 선인장 선인장이 아찔아찔 살아가는 제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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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향해 콕콕 찌르는 삶의 무기

저는 그동안 글만 쓰더라도 가족들 식의주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저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글을 열심히 쓰더라도 글은 결코 돈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글을 써서 잡지에 싣고, 책을 펴내도, 쥐꼬리만한 원고료나 책 인세는 결코 밥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펴낸 책 여러 권도 베스트셀러가 된 때가 없었습니다. 꼭 한 번만이라도 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때부터는 정말 글이 밥이 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한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그 작가가 펴내는 책은 내용이 예전의 책보다 조금 떨어진다 하더라도 잘 팔리게 됩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그 작가에게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그렇게.  

하지만 저의 책은 베스트셀러 30위 안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노동의 불꽃으로>라는 제 첫 시집은 그나마 조금 팔리는 듯했습니다. 그때 저는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내 것처럼 같았습니다. 그것도 잠시,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가자 제 시집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뒤 낸 3권의 시집도 초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글만 쓰면서 먹고 산다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한동안 시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무엇을 할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제가 가지고 있는 알량한 재주라곤 글을 쓰는 일뿐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지방에 있는 한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기사를 쓰면서 틈틈이 장편소설도 썼습니다.

장편소설은 그나마 시집보다는 잘 팔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써서 출판한 장편소설도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독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어디 한판 끝까지 붙어보자, 는 오기도 생겼습니다. 저 선인장이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뾰쪽한 가시로 말았듯이 저도 그렇게 글과 씨름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인장은 무슨 한이 그리도 많아 온 몸에 저리도 많은 가시를 달고 있을까요. 저 뾰쪽한 가시는 이 세상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친 잎사귀들이 얻은 고통, 그 끝자락일까요. 그도 아니면 자신을 자꾸만 옭죄는 이 세상을 향해 콕콕 찌르는 삶의 무기일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07년 2월 유포터에 발표한 것을 여기저기 손질한 글입니다



태그:#선인장, #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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