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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7일 제헌절 날 찾았던 KBS 본관 앞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났었던 한 달 넘게 매일 KBS 본관 앞에서 촛불을 든다는, 자칭 'KBS 지킴이' 김석(53)씨를 2주만인 31일 다시 만났다. 여전히 긴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청바지 차림의 김석씨는 기자를 알아보고 웃으며 손 내밀어 반겨주신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만나자마자 수다아닌 수다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KBS 앞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자그마한 천막들은 온데간데 없고 전경차 4대가 천막이 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난 번과는 다른 낯선 분위기에 인사를 나누자마자 바로 질문을 했다.

 

천막은 어디가고 전경차와 전경차만 가득...

 

"천막들이 다 없어졌네요?"

"7월 24일에 강제 철거 됐지. 촛불 들고 있다가 오전 7시 30분 쯤 잠들어서 한 2시간 잤나? 그날도 비가 엄청 왔었는데, 자는데 '쿵쾅'소리가 들리는거야. 그래서 '무슨일인가' 하고 일어났더니,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천막을 다 치우고 있더라고."

 
"사전에 철거하겠다는 얘기가 있었나요?"

"아니, 경고 방송도 없었지. 비도오는데 자다가 갑자기 천막을 뺏겨버렸으니 황당했지만 별 수 있나."

 

"항의 같은 건 안 하셨나요?"

"경고방송을 왜 하지 않았냐고는 물어봤지만, 항의는 안 했지. 사실 천막 치는 것이 불법이라는 걸 아니까 수긍했어."

 

"그 이후로는 천막은 돌려받으셨나요?"

"며칠 전에 돌려받긴 받았어. 천막을 못 치게 하려고 그날 이후로는 이렇게 전경차들이 적어도 새벽 0시시까지는 거리에 늘어서 있지."

 

"그럼 천막은 아예 없어진건가요?"

"지금은 그렇게 됐지. 근데 내가 천막 없이 밖에서 자는 건 아무 상관없는데, 촛불 들러 온 시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천막이 있어야 하잖아. 그게 가장 가슴이 아프지. 특히 시민들한테 줄 물이나 커피, 컵라면 같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던 자원봉사 천막이 없어진 것이 가장 속상하지."

 

시민들을 위해 생수와 직접 탄 인스턴트 냉커피, 그리고 뜨거운 물과 컵라면, 모기향 등이 비치해 놓은 천막이 강제 철거됐다. 대신 그 길건너에 테이블 두 개를 설치해놓고 임시로 시민들을 위한 생필품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먹거리들과 모기향들을 시민들에게 공급하려면 하루에 유지비가 20만원 씩 들어간다고 한다. 모금함이 마련되어있기는 하지만 평균 1만원에서 3만원 정도의 돈이 모이고, 정말 모금이 뜸할 때는 3천원이 모이기도 한다고. 그래서 전액 사비로 몇 달 째 충당 중이라고 했다. 이제 경제적인 면에서 조금은 힘에 부친다고.

 

 

우리가 폭력 시위단이라고?

 

이날 KBS 본관 앞에서는 오수 2시40분부터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주최 'KBS 정상화 촉구 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연주 퇴진' 등의 구호를 내걸고 거리행진과 규탄 발언을 한 후 해산했다. 이들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불법 폭력 시위단'으로 규정하고 "촛불 든 노숙자들로 인해서 정권이 바뀐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발언과 주장에 대해 김석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낮에 대한민국어버이 연합회 등의 일부 보수단체가 KBS 본관앞에서 'KBS 정상화 촉구 대회'를 벌이던데…."

"요즘 자주 와서 그러지."

 

"그들이 외치는 구호나, ‘폭력 시위단’이라는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폭력 절대 안 써. 우리가 집단을 이룬 것도 아니고 단지 개개인의 사람들일 뿐이지. 폭력사태 같은 것도 전혀 없었잖아. 그쪽에서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우리는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어."

 

"매일 같이 이곳에 있는데 KBS 직원들이나 청원경찰들과 사이는 어때요?"

"아까 나랑 인사하는 사람들 못 봤어? 그 사람들 다 KBS 직원들이야. 직원들이 아침에는 남아있는 시민들 명수를 세서 가끔 김밥도 사다줘. 고맙지. 우리는 쓰레기도 항상 줍거든. 습관이 되서 말이야. 그러니 청원경찰들이 오히려 우리를 친근하게 생각하지."

 

실제로, 기자와 대화하는 중간중간에도 김석씨는 몸에 밴 듯 꽁초며 쓰레기들을 봉지에 계속 주워 담았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갈 때쯤 잠깐 비가 왔다.

 

김석씨는 "KBS에 낮부터 지금껏 있었으면 힘들겠다"면서 시원한 커피를 주겠다며 임시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천막은 없었지만 김석씨가 커피와 함께 가져온 우산 속에서 비를 겨우 피하며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옆에서 우리의 얘기를 듣던, "20년째 택시를 운전 중"이라는 전상만(51)씨도 함께 했다. 머리에 '헤드렌턴'을 쓰고 있는 전상만씨. 이유를 물어보니 "폐가 상당히 안 좋아서 촛불 연기를 마시면 안 좋아서 초 대신 '렌턴'을 머리에 쓰고 있다"면서 웃으셨다.

 

쉬는 날이면 이렇게 촛불집회 현장에 나와 새벽 2시까지 촛불을 켜고 얘기를 나누다가 신림동 댁으로 돌아가시곤 한다고.

 

"갈 때 방향이 같으면 집까지 태워다 주기도 해. 물론 무료지(웃음)."

 

힘들게 일하고 몇 안되는 쉬는 날 편히 쉬고 싶을 법도 한데, 불편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끝까지 한 번 해보려고"라며 웃어 보이시는 전상만씨.

 

"사실 전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투표도 쉽게 하곤 했는데, 관심을 갖게 되고 토론회도 택시안에서 챙겨 듣고 뉴스를 챙겨 듣다보니 문제가 정말 많더라고.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이제라도 생각했던 것 실천하려고 나오고 있어. 주말에 휴일이 있을 때는 광화문으로 가고."

 

2주 전에 "10kg이 빠졌다"고 말했던 김석씨는 오히려 그 때보다 밝아보였다.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시민들에게 먹을 것도 챙겨주면서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듯이 웃었다.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안 힘들어. 난 재밌게 하고 있어"라고 대답하셨다.

기자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렇게라도 위안하면서 해야지"라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돌아가는 기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대화하는 2시간여 남짓한 시간에도 속속 KBS로 모이는 시민들을 향해 "나오셨네요"라며 인사하느라 바빴다. 그러는 중에도 지치는 기색 하나 없이 집에 반가운 손님이라도 온 듯 "더운데 시원한 커피라도 드릴까요?"라고 묻던 'KBS 지킴이' 김석씨가 있기에 KBS의 촛불은 오늘도 내일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편은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KBS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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