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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 건물 높이에 80m 팔을 돌리는 풍력발전기의 위용, 대관령에는 이런 발전기가 49기나 있으며 년 50,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
▲ 대관령 풍력발전기 20층 건물 높이에 80m 팔을 돌리는 풍력발전기의 위용, 대관령에는 이런 발전기가 49기나 있으며 년 50,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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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취와 인연

대관령 하면 많은 사람들이 휴양 시설, 넓은 초원과 신선한 목장우유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색다른 여운을 남긴 곰취를 연상하게 된다.

나에게는 야생화 전문가인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환경부에서 오랜 공복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대관령에 위치하는 강원 풍력발전주식회사의 수장(首將)으로 근무 중이다. 바쁜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대관령 주변의 야생화 소식을 카메라에 담고 시 형식으로 주석을 달아 동창회 카페를 통해 친구들에게 전한다. 흔한 야생화들도 이 친구의 손을 거치면 새벽이슬과 같이 영롱하고 귀한 꽃으로 거듭난다.

친구의 초청으로 진행된 '산자령 야생화 답사'의 점심식사 메뉴는 곰취에 싸먹는 돼지 불고기였다. 많은 친구들 틈에 끼어 급히 몇 점 먹어본 것이 내가 접한 곰취와 첫 인연이다. 채취 시기가 지났는지 약간 뻣센 느낌이었으며 그 좋다는 곰취 향도 들뜬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단지 친구의 곰취에 대한 생태와 약리작용의 멋진 브리핑 영향으로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대관령 곰취는 난생 처음 본, 그 때 얼굴만 살짝 보여주고 숨어버린 수줍은 아가씨 같았기에 아쉬움이 더 했는지 모르겠다.

올 봄 두릅과 고사리 그리고 취나물을 산채하여 먹을 때도 곰취가 생각나 몇 번이나 곰취를 구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강원도 양구에 가면 비닐하우스에서 인공 재배한 곰취를 구할 수 있으나 야생 곰취는 구하기 힘든 사실만 확인하였다. 폐를 튼튼히 하고, 혈액순환을 돕고 고혈압에 주효하다면 곰취는 나에게 불로장생 약초가 아닌가? 될 수 있다면 야생 곰취와 인연을 맺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곰취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보다는 잎을 더 잘 알고 있는 식물이다. '취'자라는 글자가 뒤에 붙은 유사한 국화과 식물들을 모두 합쳐 그저 취나물이라고 부르며 먹지만 유독 곰취만은 제 이름을 갖는 제왕 대우를 받는 나물이다.

늦여름부터 하나 둘씩 피기 시작하여 가을에 절정을 이룬 곰취꽃. 최근 대관령에서 촬영한 곰취꽃과 고추잠자리
▲ 곰취꽃 늦여름부터 하나 둘씩 피기 시작하여 가을에 절정을 이룬 곰취꽃. 최근 대관령에서 촬영한 곰취꽃과 고추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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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나물로서 곰취가 맛과 향기 면에서 뛰어나 다른 취나물과는 다른 독보적인 존재이지만 그 생김새가 독초인 동의나물과 흡사하여 인명을 앗아가는 사고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단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산에서 채취하기 위해 곰취를 찾아나서는 일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곰취가 나물로 쓰임새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인지 곰취의 꽃을 알아보는 이는 상상 외로 드물단다. 늦은 여름,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하여 어느 순간 산정의 한 비탈을 진 노란색 꽃잎으로 덮는 장관을 연출하지만 그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뿐 곰취로 알아보지 못한 경우가 흔한 모양이다.

시랑헌에 시집 온 곰취

"형님! 곰취 모종 가져왔어요?"

잡초와 실랑이로 기진맥진된 해거름 무렵, 반가운 손님이 눈이 번뜩 띄는 선물을 안고 시랑헌의 비탈길을 올라온다. 대학 산악부 후배와 조카 정제 군이다. 후배는 10여 년 전부터 지리산 정령치(1172m 고지로 17번 국도에서 약 6km 떨어진 백두대간 상의 봉우리이다) 부근의 산에서 사는 산사람이다.

도로에 접하고 지리산 관광온천단지가 바라보이는 시랑헌이라 해도 저녁 때는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젊은 장년들이 둘씩이나 자리하고 주물장작난로에 구은 돼지고기와 붉은 포도주 잔을 앞에 두고 둘러앉은 산골의 야외식탁은 활기와 낭만이 가득하다.

후배는 요즈음 곰취와 허브농원에 전력을 쏟고 있단다. 앉자마자 곰취 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니 곰취 매력에 푹 빠진 모양이다. 허브농원은 남원시의 장려사업이라 사업비의 절반을 지원받은 모양이나 곰취는 전량 후배 개인사업비로 조성한단다. 많은 지금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데 그동안 이곳 저곳에 돈을 투자해버려 아쉬움이 많단다.

나에게도 지금은 요양이나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목적으로 귀농을 계획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싶은 곳이 생기니까 그 때까지는 최대한 경비를 줄이고 여유자금을 남겨두어야 한단다. 후배는 시랑헌 초기 조성단계 때 방문하여 여러 가지 유익한 조언을 해주고 간 적이 있다. 최근에 시랑헌 부근을 지나가다. 일부러 시랑헌에 들러 산 전체를 둘러 본 모양이다. 그리고 위쪽 고로쇠나무 숲을 최적의 곰취단지조성 후보지로 눈여겨 봐둔 모양이다.

가져온 곰취 모종을 그곳에 심어보고 잘 자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잔다. 집사람은 그것도 좋으나 시랑헌을 올라 다니는 길섶 도라지 밭 옆에 심어 곰취를 자주 보면서 친해지고 싶단다. 벌써 곰취가 사랑스러워지는 모양이다. 곰취는 시랑헌 길섶 도라지 텃밭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후배가 시랑헌에 곰취밭 조성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가져온 곰취모종.
약 30포기 정도를 가져왔고 시랑헌 오르는 길섶에 심어졌다.
▲ 곰취 후배가 시랑헌에 곰취밭 조성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가져온 곰취모종. 약 30포기 정도를 가져왔고 시랑헌 오르는 길섶에 심어졌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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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시랑헌에 올라오는 길에 야생화 화원에서 구입한 여러 종류의 화초 중 한 종류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잎을 뜯어 냄새를 맡아본다. 후배 행동이 이상하여 나도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봤으나 저녁 식사가 시작되고 유쾌한 대화가 계속되면서 잊고 있었다.

후배가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형님! 형님 댁에 아주 고급 허브가 자라고 있는 줄 아세요?" 하면서 정색한다. '으~잉 그럴 리가'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온천지역의 허브찜질방을 다녀오면서 묻혀온 허브 향을 못 잊어 하는데 시랑헌에 허브가 있다니 그것도 고급종이.

시랑헌에서 자라고있는 허브, 그 이름이 사뭇 어려워 사올 때는 알았지만
금방 잃어버린다. 이름표를 붙여놨지만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 허브와 허브꽃 시랑헌에서 자라고있는 허브, 그 이름이 사뭇 어려워 사올 때는 알았지만 금방 잃어버린다. 이름표를 붙여놨지만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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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따라 조금 전에 눈여겨 본 화초에 다가가 잎을 따서 코에 가져가니 허브찜질방의 진한 허브 향에 비해 옅으면서 부드러운 허브향이 나를 휘감고 돈다. 모종 단가가 너무 비싸 3구루 밖에 못 샀지만 집사람도 그것이 허브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다시 식탁으로 올라와 나와 집사람, 후배 그리고 정제 넷이서 포도주 잔을 부딪치며 시랑헌 훗날 모습을 미리 만들어 본다. 편백나무 숲의 산책길, 고로쇠 수액, 군밤을 그리고 여기에 녹차를 그려붙이고 곰취와 허브를 달아본다. 내가 손수 지을 퓨전 중목구조 집(한옥의 단점을 보완하고 서양의 전통 중목구조 건축양식인 팀버프레임 건축의 장점만을 취한 건축으로 설계 중이다). 소박한 정원 사이에 끼워 넣어본다.

지리산 고지의 서늘한 냉기는 밤이 깊어지면서 무더위를 지워버린다. 시랑헌의 훗날 모습이 에테르 기운으로 형상화 되어 주위를 둘러쌓고 있는 환상에 빠진다. 대화는 익어가고 웃음소리는 외딴 산골짜기 따라 멀리 퍼진다.


태그:#곰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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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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