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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김태환 제주지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도내 영리법인 병원 허용 계획을 일단 접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앞서 제주도는 도민을 상대로 영리법인 병원 허용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를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실시했다.

 

제주도의 계획은 만약 찬성하는 쪽이 많이 나오면 국내 영리법인이 제주도에서 영업을 할 수 없는 현행법(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 찬성 38.2%, 반대 39.9%로 결국 그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현재 제주도는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어 외국의 영리병원만 영업을 허용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기대했던 외자유치는 전무한 상태로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에 이르러 있다.

 

의료민영화의 첨병을 자처한 제주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주도는 국내 영리법인 병원 허용 계획을 지속적으로 시도했었다. 그러나 의료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처음 말을 꺼냈던 정부는 계속해서 애매모호한 태도만 취하고 있다. 대신에 당사자인 제주도가 적극적으로 그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여론조사에 앞서 대대적인 홍보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건강연대, 보건의료노조 등 시민단체들은 좋은 점만 부각시켜 객관적 판단 자체를 막는 여론몰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그들의 시도가 무산되기는 했지만 기자회견장에서 김 도지사는 "앞으로 여건이 성숙되면 도민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 영리병원 허용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집요한 야욕을 절대로 꺾지 않을 것입을 시사했다.

 

도대체 이들의 그 집요함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지난 24일 '영리병원, 의료 선진화인가 민영화인가'를 주제로 열린 <100분토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날 토론에서 영리병원 허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입장에서 주로 사용했던 용어들은 딱 세 가지였다. '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 '의료 관광 사업을 통한 외화 획득', '국내 병원의 재정적 어려움 극복' 이렇게 세 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은 틀리지만 의미는 일맥상통한다. 한 마디로 '돈벌이' 하자는 거다. 그들은 영리병원이 무슨 '미다스의 손'처럼 우리에게 황금을 잔뜩 안겨줄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서 영리병원은 '미다스의 손'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손'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것은 국민의료보험 제정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의료보험체계를 완전히 붕괴시킬 것이고 결국에는 몇 몇 주식회사 병원과 거대 보험사들의 배만 불려주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제주도 당국이든 병원 단체든 이명박 대통령이 세워둔 개발주의, 성장주의 원칙에 앞뒤 안 가리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동조하고 것이다. 일단 대기업 중심으로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보자는 불도저식 정책에 정부, 여당, 지자체 할 것 없이 충성을 다 바친다.

 

이런 태도는 객관적인 증거들까지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미국의 영리병원들이 평균 이하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망률도 비영리병원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는 객관적 통계자료를 믿지도 않는다.

 

의료의 본질은 '복지'이지 '산업'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헤게모니 혹은 MB독트린이 '의료'의 본질을 흐린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에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의료복지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의료 복지이다.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어떠한가? 의료를 단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난 3월 25일 보건복지가족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외국은 의료와 관광이 합쳐져 새로운 미래산업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는 최고의 의료진을 갖고 있는데도 잘 안 되고 있다"면서 "이 분야에 과감한 정책을 펴가면 미래의 성장 산업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산업'과 '복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산업은 국가 경제가 활성화 되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써 선진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적절한 정부의 정책과 기업들의 이윤추구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성장하는 분야이다.

 

반면에 의료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추진해야 할 복지정책이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돼선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주식회사 병원은 태생적으로 최대한 수익을 내서 그 수익이 주주들에게 배당되어야 하는 구조를 가진 영리목적의 병원이다.

 

만약 영리법인 병원의 수익의 일부가 의료복지를 위해 투자된다면 한 번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이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더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의료민영화가 되면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서비스 경쟁력은 의료복지 확충을 통해서 해결해야

 

<100분 토론> 말미에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뼈있는 한 마디를 했다. 그는 "정부는 겉으로는 의료민영화는 없다고 말하면서 뒤로는 의료복지예산을 삭감하는 등 꼼수를 쓰면서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의 우려를 잠식시키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하고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하면 될 것을 자꾸 의료복지를 민간자본 시장에 맡기겠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정부의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을 따끔하게 지적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흔히 요즘을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예술이나 문화는 장르 구분이 없어지고 한 매체가 다른 매체를 자유롭게 차용하면서 혹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면서 경계를 지워나간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국가 운영' 측면에서도 포스트모던의 징후를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80년대 독재정권으로 회귀 했다기 보다는 현재로 80년대를 소환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정책에 있어서 경계를 허물고 뭉뚱그려서 일괄적으로 운용하는 전체주의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실은 정부 조직을 개편해 놓은 꼴, 즉 '교육과학기술부'라는 정체불명의 부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두어야 할 곳조차 모호하게 내버려둠으로써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 정부는 복잡한 골목길에서 번지수를 찾지 못하니까 아예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보건 의료 정책에 대해서도 이러한 정부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의료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고 확장되기를 원하는데 복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영리법인 병원을 복지와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국 영리병원의 낮은 서비스의 질과 높은 사망률을 자랑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단체들이 주장한 것처럼 우리가 의료서비스 경쟁력을 갖추고 의료산업으로써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영리병원 설립이 아니라 의료복지를 확충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그:#영리법인병원,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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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땐 영문학 전공, 대학원땐 영화이론 전공 그런데 지금은 회사원... 이직을 고민중인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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