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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샤라쿠>겉표지
 <색 샤라쿠>겉표지
ⓒ 레드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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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쯤 전이었다. <훈민정음 암살사건>이라는 소설이 화제가 됐었다. 김재희의 첫 소설인 그 작품은 한글 창제를 둘러싼 모험을 다뤄 ‘한국형 팩션’의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줬었다. 그리고 지금, 김재희는 또 하나의 소설로 그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색 샤라쿠>가 바로 그것이다.

<색 샤라쿠>는 독특한 ‘가정’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 가정은 신윤복이 조선의 스파이였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유명한 화가 ‘샤라쿠’가 신윤복이 일본에서 정체를 숨기고 활동했던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참으로 독특한 가정이다. 도대체 이런 가정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또한 이런 가정에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

<색 샤라쿠>의 시간적 배경은 정조가 다스리던 때다. 소설 속의 정조는 개혁 군주로 옛 백제와 고구려의 땅을 수복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고구려의 땅이야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백제의 땅이란 어디인가? 다름 아닌 ‘왜’였다. 임진년의 치욕을 씻는 것은 물론 ‘왜’를 정복해 강대국으로 나아갈 계기로 삼겠다는 야심을 그가 지녔던 셈이다.

정조를 만나 마음껏 활약을 펼쳤던 김홍도, 그는 소설 속에서 정조의 야심에 적극 부응하는 인물로 나온다. ‘왜’에 밀정을 보내는 ‘우두머리’격으로 나온 것이다. 정조와 김홍도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당시 일본이 상당한 혼란기였기 때문이다. ‘일왕’의 힘은 막부에 의해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있었다. 일왕은 무식한 그들에 의해 권력을 찬탈당하기 보다는 뿌리가 같은 조선과 힘을 합치고자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놀라운 ‘생각’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점점 구체화될 무렵, 일본에서 중요한 ‘문서’가 사라진다. 그것이 공개된다면 정조나 일왕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만한 자료였다. 그리하여 김홍도가 패기만만한 신윤복을 수련시켜 일본으로 보내고 신윤복은 그때부터 화려한 활약을 펼치게 된다. 일본에서 잘 나가는 화가로 명성을 떨치는 것은 물론 그림의 세계까지 확장시키고 스승인 김홍도의 명을 지켜가는 것이다.

이렇듯 <색 샤라쿠>의 줄거리는 기상천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김홍도와 신윤복을 스파이로 가정하고 정조가 일본을 정복하려고 했었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가상은 확실히 놀랍다. 그 놀라움은 선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위가 높다. 하지만 소설이 선정적인 것으로만 구성됐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색 샤라쿠>는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뒤섞어 그만의 정밀한 구성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색 샤라쿠>에 몇 가지 사실들을 혼합했다. 신윤복이 일본에서 활약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물론 시대적 분위기도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였다면 엉뚱하게 여겨졌을 이야기가 이 사실적인 장치들 덕분에 실감이 난다. 또한 아슬아슬하게 허구와 역사를 뒤섞은 솜씨도 재미를 더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윤복을 일본의 유명 화가 ‘샤라쿠’로 만든 것이다.

‘샤라쿠’는 1794년 5월에 혜성처럼 나타나 이듬해 홀연히 사라진 화가다. 그의 그림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것과 확연히 다른데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 활동하던 조선 화가들의 흔적과 비슷한 것이 많다. 저자는 이 시대 정조가 화공들을 비밀리에 간자로 훈련시켰다는 사실을 들어 바로 이 ‘샤라쿠’를 신윤복과 동일한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듣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재주로 이야기를 꾸민 셈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신윤복의 그림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일본에서의 스파이 활동과 결부시켜 이야기한 것도 놀랍다.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이야기를 저자는 능수능란하게 풀어낸다. 저자의 솜씨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정조가 일본을 칠 준비를 했다는 사실 등은 한국인의 정서를 지나치게 건드리는 지라 불편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색 샤라쿠>는 읽을 만한 요소가 두루 담겨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역사와 허구를 절묘하게 혼합해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펼쳐낸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형 팩션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점칠 만한 힘이 충분한 셈이니 기대해도 좋다.


색 샤라쿠

김재희 지음, 레드박스(2008)


태그:#김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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