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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80만 원을 들고 일 년간 세계 여행을 했다면 참 믿기 어렵다. 도대체 어떻게 생활했기에 그런 여행이 가능할까 하는 궁금증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여행이 결코 돈 안 쓰고 밥 안 먹는 여행이 아님에 더 놀라게 된다.

 

청년 정상근이 80만 원으로 세계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계기는 호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저축한 덕분이다. 1984년생의 패기는 기껏해야 백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도 장기 여행을 계획할 정도로 용감하다. 물론 고생할 각오는 단단히 갖고 있어야 한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그가 호주에 도착하여 호스텔에 숙소를 정하고 맨 먼저 근처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웬만한 메뉴는 10달러를 넘는다. 요란하게 울리는 배의 꼬르륵 소리를 참으며 숙소에 누우니 눈물부터 앞서지만 일단 장기 여행을 계획한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호주에 도착한 날 눈물부터 앞섰지만...

 

제일 먼저 값이 저렴한 숙소를 구하고 한국 식당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얻는다. 호주에 날아간 지 열흘째, 저자는 오전, 오후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아침, 점심, 저녁은 한국 식당에서 해결하는 생활을 한 끝에 일주일에 약 500-600달러, 우리 돈으로 40-50만 원의 수입을 올린다.

 

한 달에 200만 원이면 한국에서 스물셋의 대학생이 쉽게 벌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노력하면 기회가 생기는 땅, 호주에서 숙소와 식사 비용을 조금만 줄이면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저축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여행 경비를 조금씩 마련하고 영어가 늘자 더 많은 급여를 주는 곳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약 6개월을 고생하니 앞으로 6개월 동안 여행할 경비가 저절로 쌓인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세계 여행은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호주에서는 방값을 아끼려고 여자 네 명과 한집에서 지낸 적이 있는가 하면, 그토록 기대하던 인도 여행에서는 도난 등의 위협으로 노심초사하는 일정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나니 인도라는 세상이 또 다른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눈 여는 것보다 마음 여는 것

 

호주의 문화생활과 바쁜 일상에 익숙했던 그가 인도에 대해 엄청난 실망을 하고 갠지스 강가에 앉아 있으려니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온다. 신에게 도달하고 싶은 인도인들의 간절한 염원을 헤아리지 못하면 갠지스 강은 말 그대로 똥물에 불과하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눈을 여는 것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라는 사실.

 

이렇게 눈과 마음을 열고 세계 각지를 밟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갑자기 방문한 인도의 한 시골마을에서는 결혼식에 초대를 받는 행운이 생기고 북유럽의 도시에서는 자기 집에 그냥 머무르라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젊은이가 씩씩하게 여행하는 것에 감동 받은 노부부는 힘들지도 않은 아르바이트를 시키면서 용돈을 주는 선심을 베풀며 저자를 눈물겹게 만든다.

 

비록 저자처럼 젊지는 않지만 책을 읽는 독자도 괜한 패기와 용기로 세계 여행을 꿈꾸게 된다. 일상에 매여 쉽게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단돈 80만 원으로 일 년간 세계 여행을 했다는 말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가!

 

네덜란드의 커피숍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그냥 들어갔다가 마리화나 연기에 깜짝 놀라는 저자는 이 나라에서 중요시하는 '개인의 자유'를 실감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책임질 수 있는 한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어려서부터 마약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아 미국 등 마약이 금지된 다른 나라보다 마약 중독자 비율이 훨씬 낮다.

 

네덜란드에 머물며 든 생각은 네덜란드를 단순히 마약 허용, 성매매 허용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그들의 철학은 '자유에 대한 존중'이었다. (중략)

 

어떤 가치가 옳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열려 있는 마음은 정말 부럽다. 우리는 생각이나 이데올로기가 조금만 다르면 종종 '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종하지 못할 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모든 문제에 좌, 우가 대치하고 서로를 미워한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들의 몫

 

여행의 시작은 어설펐지만 일 년의 세계 여행은 저자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마지막에서 그는 중동 지방을 여행하며 이슬람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바로잡고 더 자란 자신을 발견한다. 테러의 본거지라고 생각했던 이슬람 국가 사람들이 너무나 소박하고 착한 걸 보면서 이념과 사상에 상관 없이 세상의 모든 이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은 것이다.

 

이집트처럼 멋진 곳에서 열사병에 걸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고생을 하는 내용을 보면 한편으로는 이렇게 힘들게 여행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젊음과 용기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세상은 도전하는 자들의 몫이다.

 

이 책은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거나, 낭만적인 구절을 읊으며 전문가의 사진을 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가 여행에 대한 방법을 알려 주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에게 도움이 된다. 돈이 별로 없지만 멋진 세계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저자처럼 용감하게 길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80만원으로 세계여행 - 영어 울렁증 상근이의 자급자족 세계 여행

정상근 지음, 두리미디어(2008)


태그:#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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