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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오후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기자회견을 한 뒤 청와대 방향으로 3보1배로 진행하다가 경찰에 막혔다.
 6월 28일 오후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기자회견을 한 뒤 청와대 방향으로 3보1배로 진행하다가 경찰에 막혔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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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무르익던 지난 4월부터 한여름이 된 지금까지 내내 거리에 있었다. 일종의 '주거불명자'였다. 주로 갔던 곳 중 한 곳은 구로2공단(현 디지털산업단지) 뒷골목 변두리에 있는 기륭전자 앞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이 1067일째 노숙중인 농성장이었고, 또 한 곳은 시청과 광화문 네거리 주변이었다.

낮 시간을 배회하던 곳은 기륭전자 앞이었다. 몇 가지 일들을 거들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나는 고마웠다. 나는 주로 여기서 밤 10시경까지를 보냈다. 광화문처럼 거대하고 역동적인 촛불은 아니었지만 기륭에서도 날마다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5월 14일부터 시작했으니 광화문 촛불보다는 적지만 근 60차가 넘은 듯하다. 역량도 안되는 조그만 지역, 비정규 투쟁 현장에서 날마다 문화제를 연다는 것은 호사였다. 미안해 하며 늘 와주던 동료 민중문화예술인들에게도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모두가 87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이야기하지만 비정규노동자들은 늘 외롭다. 그들의 투쟁을 외롭게 버려두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히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행복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스님들이,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의 신부님들이,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 목사님들이, 영화인들이, 미술인들이, 민교협의 교수님들이, 민변의 변호사님들이, 70년대 민주노조 선배님들이 함께 해주었다. 

이런 분들과 함께 하는 기륭문화제가 끝나면 가능한 몇 사람씩이 모여 쏜살같이 광화문 네거리로 달려갔다. 광화문은 우리에게 또 다른 힘을 주었다. 촛불다방에서 차를 얻어 마시고, 다인이 아빠네에서 컵라면을 받아 출출한 배를 채웠다. 손을 내밀면 어디에서나 생수가 쥐어졌다.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고 새벽 기차놀이를 했다. 그리그리 출렁이는 사람들 물결을 따라 떠돌다 보면 금세 새벽 5시가 되고, 6시, 7시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숨자고 나면 다시 기륭으로 나가봐야 할 시간이었다.

기륭전자와 광화문 촛불과 함께 한 5, 6월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기륭비정규분회 노동자들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기륭비정규분회 노동자들
ⓒ 기륭비정규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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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4월과 5월과 6월이 가고 7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동안 기륭여성비정규노동자들은 2번의 고공농성과 8일간의 사회공동행동, 1045인 하루동조단식단 청와대 진격 투쟁, 연대미술전, 국회개원날에 맞춘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농성과 셀 수 없이 많은 집회 시위를 거쳤다. 그리곤 오늘 7월 24일, 무기한집단 단식 44일차를 맞았다.

요구는 단 하나, '직접고용 정규직화'다. 정규인생이 되는 일은 과거 노예들이 평민 신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기륭비정규 여성들은 2005년 당시 불법파견노동자로 62만1850원을 받았다. 문자로 해고당하고, 잡담했다고 해고당했다. 애를 낳을 수 있는 새댁이라는 이유로 3개월 계약을 강요당했다.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그 단순한 요구를 위해 1065일째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죽는 것 빼놓고 다해 봐야 했다. 철탑에도 오르고, 크레인 위에도 오르고, 다리에 매달리고, 때론 동맥을 끊고, 그러다 정말 목숨을 끊은 이들도 있었다. 기륭 김소연 분회장도 이제 정말 목숨을 걸겠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싸워서도 못 이기면 다른 비정규노동자들이 어떤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싸우겠냐고 한다. 

여하튼 제2의 지율 스님이라도 되겠다는 건지 피골이 상접한 채 집회 때마다 하얀 소복을 입고 공장 1층 옥상 위에 나와 앉아 있는 두 여성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핑돈다. 기륭여성노동자들 곁에 있다 보니 나도 전염되어서인지 시시때때로 눈물이 난다. 그들이 5월 11일 새벽 6시 50분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비정규철폐연대가'를 부르며 시청 조명탑 위를 오를 때, 5월 26일 다시 새벽 6시 30분 구로역 30m CC카메라탑을 오를 때, 다시 6월 10일 오후 다섯 시 목숨을 걸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공장 1층 옥상을 오를 때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경찰이나 구사대 침탈을 걱정할 때, 침탈당하지 않을 물품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을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면서도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을 때 울컥했다. 그렇게 강인한 척 하더니 단식 35일차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열 살 딸내미를 찾아가며 울던 조합원 어미의 눈물 앞에서 수천만년 흐른다는 눈물의 강이 내 마음 속으로 서늘히 흘러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어라도 해야겠기에 주변 사람들과 참 많은 일을 하기도 했다. 일상의 대부분이 이런 투쟁의 연속일 조직 노동자들과 노동 관련 단체들, 그리고 지역 사회단체 회원들의 헌신은 따로 얘기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연대해 주었다. 종교계 분들과 몇몇 사회단체 분들은 세 번에 걸쳐 무례한(?) 방문과 점거에 함께 해주기도 했다. 한번은 공장 진입이었고, 한번은 민주노총 방문이었고, 한번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농성이었다.

미술인들은 현장에 천막미술관과 1000일 기원촛불탑, 그리고 미술가 70여명이 함께 참여해 미술사에 기리 남을 모자이크 걸개그림을 만들어주었다. 7천만원짜리 조각 작품을 현장에 설치해주었고, 전국을 돌며 작품을 모아 기륭과 KTX, 코스콤, GM대우, 뉴코아-이랜드, 재능교육 등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 기금 마련 미술전을 열어 주었다.

기륭전자는 승리한 투쟁? 단언은 이르다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 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5명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10일 오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홍준표 원내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 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5명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10일 오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홍준표 원내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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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여성비정규직 투쟁과 광화문 투쟁은 결과를 떠나 승리한 투쟁들이라고 말들 한다. 과정의 아름다움과 투철함,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 이미 우리의 인간적 존엄과 영예를 확인시켜 왔다는 판단들이다. 하지만 아직 평가와 단언은 이르다. 2008년 기륭 비정규여성 투쟁과 광화문 촛불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두 개의 촛불은 조금 더 타올라야 한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아직도 첨예한 대립 속에 있고, 광화문 촛불들의 최소 바람이었던 쇠고기수입 재협상은 대국민사과니, 추가협상이니 하는 립서비스 속에 묻히더니 모든 소통을 단절한 채 고시 강행, 공권력 투입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정권이 선택함으로써 '민주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오만하고 폭력적인 정권 퇴진' 이외에 어떤 해결방안도 가능치 않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아 있다.

그 끝이 어떻게 결판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주변의 우려에도 끝까지 목숨마저 내놓고 투쟁하겠다는 기륭여성노동자들의 완강함과 잃을 게 없다는 기륭 자본의 완강함 중 어떤 완강함이 승리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린 지금 안전지대로의 전술적 후퇴가 아닌 그런 백척간두의 전략 지점으로 서서히 그러나 완강하게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속으로 이번 주가 가기 전에, 단식이 45일차를 넘기 전에, 기륭전자 여성들이 더 혹독하고 가혹한 마음을 먹기 전에, 모든 이들이 심신을 쉬러가는 이 여름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1065일을 끌어 온 '직접고용 정규직화' 싸움이 승리로 확인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 7월 25일 진행하기로 한 '기륭비정규투쟁 1067일! 집단무기한단식 45일차! 투쟁 승리를 위한 사회공동행동'이 그간 서로의 노고를 위무하고 모든 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희망의 날로 바꿔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넉 달 함께 해 오던 나도 이렇게 지치는데 200일이 훌쩍 넘은 코스콤, 400일이 다가오는 뉴코아-이랜드, 광주시청비정규직, 800일이 넘은 KTX, 그렇게 그렇게 7년이 넘기도 했다는 하이텍알시디코리아와 시그네틱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엄혹한 시간들을 버텨 올 수 있었을까? 그들의 묵묵함에 고개가 절로 수그려진다.  

현재 김소연 분회장은 해결되지 않으면 살아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사회적으로 공언을 한 상태다. 난 그런 약속은 전술로서만 유효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지키지 말라고 말한다. 대신 우리가 싸워서 이겨 내려올 수 있게 해보자고 한다. 그럼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청원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견결한 투쟁만이 새로운 국면을 연다.

이제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고 싶다

7월 25일 금요일 오후 1시에 청와대 앞 사회각계 45인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후 4시부터 구로2공단 변두리에 있는 기륭전자 앞에서 기륭비정규여성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위한 사회공동행동을 하자고 사회 제 단체들과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날만큼은 외로운 기륭 사람들 곁에서 1박을 해주고 그들이 1067일 동안 한번도 빼놓지 않고 진행했다는 아침출근 선전전까지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우리들의 훈훈한 연대의 마음으로 기륭동지들이 더 극한 마음을 먹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정말 이젠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 별 말도 아닌 말, 기륭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고용되어 다시 기륭자본의 생산력 향상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는 말. 그 정도의 말도 무슨 혁명이 되는 이 못된 사회, 병든 사회. 꼭 그 '기쁜 소식'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 결국 광화문 촛불과 수많은 투쟁들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하는 일이겠지만 하나의 투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아름다운 연대를 실현해 가고 있는가가 우리가 결코 끌 수 없고, 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며, 희망일 것이다.

아, 그런 기쁜 날에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송경동 기자는 시인으로 기륭전자 투쟁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기륭비정규분회 홈페이지 / http://cafe.naver.com/kiryung.cafe)



태그:#기륭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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