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중소기업에는 두 가지 중요한 화제가 있다. 하나는 지난 11일 중소기업인들이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 촉구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18일 중소기업중앙회와 무역협회가 'KIKO 등 환헤지 상품 피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더해 최근 금리 인상으로 중소기업의 이자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현재 중소기업은 원자재 가격 폭등, 환헤지 파생상품 손실, 이자부담 가중이라는 3중의 덫에 갇혀 대단히 심각한 경영악화구조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원자재가격 폭등, 이를 가중시킨 고환율 정책

중소기업에 가장 먼저 타격을 준 것은 원자잭 가격의 폭등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지만 대기업들이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지난 10년간 원자재인 철스크랩(고철)과 선철(쇳덩어리) 가격은 각각 190%, 121% 올랐지만 대기업에 납품하는 주물제품 가격은 20~30% 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2월 29일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회원들이 납품단가 현실화를 내걸고 납품중지 파업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중소기업인들은 '납품단가 연동제'를 법제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 하도급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반영을 명시한다 ▲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부당한 하도급 대금의 결정 유형'에 '원자재 가격 변동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를 추가하여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한다 ▲ '중소기업 원가계산 센터'를 설립하여 원자재가격 변동에 따른 가격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납품단가와 관련된 분쟁조정 기능을 부여한다 등이다.

즉, 대기업과의 교섭에서 동등한 위치를 확보할 수 없는 중소기업을 위해 납품단가에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도록 명시하고 강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 초기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은 중소기업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환율이 낮았기 때문에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을 환율이 완충시켜주었다. 그러나 3월부터 고환율이 시작되면서 달러표시 수입가격보다 원화표시 수입가격 상승률이 7% 이상 더 오르더니 6월에는 환율에 의해 수입가격 추가 상승분이 무려 17.5%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미 32.5% 오른 달러표시 수입가격 상승률을 49%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고환율이 담당한 것이다.

최근 수입물가 상승률 추이(한국은행),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이 실시된 3월 이후 수입물가 상승이 가파라지고 있다.
 최근 수입물가 상승률 추이(한국은행),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이 실시된 3월 이후 수입물가 상승이 가파라지고 있다.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환헤지 파생상품(KIKO)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

한편 지난해부터 은행들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상당규모의 통화옵션 상품, 즉 환헤지 파생상품을 판매했다. 환헤지 파생상품이란, 주로 외화 결재를 하는 수출기업들이 급격한 환율변동에 대처하고자 달러와 같은 외화 통화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설계된 통화옵션(KIKO, Snowball), 통화선도거래, 통화선물거래 상품 등을 말하며, 여기에 환변동보험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들이 은행과 계약한 통화옵션상품, 특히 그 가운데 하나인 KIKO 상품으로 인해 심각한 손실을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통화옵션 상품인 KIKO를 보면 환율이 일정범위 안에서 오르내리면 미리 정한 계약환율로 달러 환전을 할 수 있지만, 정한 범위의 최고한계를 넘어갈 경우에는 시장 환율보다 훨씬 낮아진 계약환율에 계약금액의 2~3배 이상의 달러를 팔아야 한다. 특히 계약금액 정도의 손실은 환손실로 취급할 수 있지만 물량이 2배로 늘어난다는 규정 때문에 나머지 외화는 직접 시장에서 매수해 은행에 매도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 폭이 훨씬 커지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08년 2월까지 KIKO 상품 계약을 맺은 대부분의 경우 환율상한선을 950원선으로 보고 계약을 했다. 그런데 3월 이후 새 정부의 고환율정책으로 인해 환율이 일시적으로 1020선까지 폭등하는가 하면, 2/4분기에도 좀처럼 980선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4분기 KIKO 손실액은 총 2조 5천억 원으로 추산되고 이 가운데 중소기업 손실액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1조 6천억 원, 그리고 대기업이 9천억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환율변동추이를 보면 1/4분기 손실액은 오히려 적을 수 있고 2/4분기 손실액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와 업계에서는 2/4분기 환율급등으로 인한 평가손실 규모가 1/4분기의 2배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은행에 유리하고, 기업에 불리한 KIKO

KIKO 이외에도 수출보험공사에서 발행하는 '환변동 보험' 상품을 구입한 중소기업들도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환변동 보험은 계약환율보다 환율이 떨어지면 보험공사로부터 환차손을 보상받지만, 환율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차익은 수출보험공사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2008년 들어 6월 말까지 수출보험공사가 기업에 지급한 보험금은 357억 원이지만, 반대로 기업으로부터 환수한 금액은 2222억 원이나 되었다. 환수금에서 보험금을 뺀 금액인 1865억 원은 결국 기업의 손해 금액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100여개 중소기업이 환변동 보험에 가입했고, "환율 인상으로 수입 단가는 올라간 반면 수출에서 거둔 환차익은 모두 환수 당해 일부 영세업체는 파산하기도 했다"는 것이 중소기업 중앙회 관계자의 주장이다. 코스닥 등록기업들도 영업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환손실로 인해 순이익이 33.98%나 감소했다.

2008년 1/4분기 상장법인 영업이익과 순이익 증가추이(증권선물거래소), 중소기업 중심의 코스닥상장업체의 순이익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2008년 1/4분기 상장법인 영업이익과 순이익 증가추이(증권선물거래소), 중소기업 중심의 코스닥상장업체의 순이익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수출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확산일로에 있지만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은 가입한 기업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고, 금융당국도 당사자 분쟁이라며 불개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일부 기업들의 경우 투기목적으로 수출대금을 훨씬 웃도는 과도한 금액을 여러 은행들과 KIKO 통화옵션 거래를 하는 '오버헤지'에 나서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은행이 환헤지 상품의 장점만 강조하고 위험은 거의 알리지 않은 채 가입을 종용한 것은 사실이다.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자부담 가중

여기에 대출금리마저 오르고 있어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원자재가격 상승과 재고 증가로 자금이 필요해진 중소기업들이 대출을 늘리면서 2008년 6월 말 잔액기준 중소기업 대출이 398.8조 원에 이르고 있다. 이는 전체 기업대출의 89%를 차지하며, 전체 가계 대출 376.7조 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포함해서 시중 금리가 급격히 인상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대기업과의 금리 격차를 벌리면서 2008년 5월 7.14%를 기록하고 계속 상승중이다.

중소기업의 대출 확대와 금리 인상은 곧바로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키고, 수익성이 나쁜 기업부터 연체를 가중시키게 된다. 특히 지난 수년간 대기업은 단기 차입금 상환 능력과 이자 상환 능력이 계속 개선된데 반하여 중소기업은 거꾸로 계속 악화되었다. 그 결과 2007년 말 기준 중소기업의 단기 차입금 상환 능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자 상환 능력 역시 2001년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환능력 격차(한국은행), 대기업의 상환능력은 높아지고 있으나 중소기업의 상환능력은 계속 낮아져서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환능력 격차(한국은행), 대기업의 상환능력은 높아지고 있으나 중소기업의 상환능력은 계속 낮아져서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 새사연

관련사진보기


중소기업의 이자상환 능력 저하는 당연히 금융 연체 확대로 이어질 개연성을 갖게 되고, 더 심화되면 금융 부실로 이어지게 된다. 대기업의 경우 연체율은 2007년 말 이후 0.3% 수준으로 하향 안정화되는데 반해 중소기업은 다시 1%를 넘어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유가 급등 등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은행 건전성이 저하될 소지"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대기업·은행 나서면 대부분 문제 풀 수 있어

고환율을 조장해 원자재가격 폭등과 환헤지 상품 손실을 가중시킨 정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납품가에 반영해주지 않고 있는 대기업, 그리고 환헤지 상품 판매에만 매달린 채 중소기업에 대한 사후관리나 관계 형성에 무관심한 은행들은 각각 국민경제를 위해 중소기업 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과 역할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와 대기업, 은행이 나서면 사실상 대부분의 문제를 풀 수 있다.

중소기업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원자재가격 폭등, 환헤지 파생상품 손실, 이자부담 가중이라는 3대 악재에 대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중소기업인들이 요구하는 납품가 원자재가격 연동제 법제화와 환헤지 상품 불공정계약 무효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가 그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중소기업인들이 제시한 해법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환율정책의 실책에 책임을 지는 한편 대기업과 은행으로 하여금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을 옥죄고 있다고 생각하는 출총제 규제나 법인세 부담을 풀어줄 생각보다는 지금 중소기업을 규제하고 있는 세 가지 덫을 시급히 풀어주어야 한다. 대기업은 지금도 충분히 자유롭다. 지금은 대기업을 풀어줄 때가 아니라 대기업과 은행으로부터 중소기업의 규제를 풀어주어야 할 때다.

대기업 노동조합들과 민주노총 등 전국적 노동조합 조직들도 중소기업 회생이 노동자의 최대 현안인 고용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중소기업들의 납품가 연동제를 푸는 데 동참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을 벗어나는 길은 물가관리와 함께 내수기반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내수기반의 안정은 우리 경제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 경기의 활성화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대기업이 살아야 중소기업이 산다'는 접근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살아야 고용도 살고, 국민경제도 살고, 대기업도 산다'는 접근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기사를 쓴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태그:#중소기업, #KIKO, #고환율, #원자재가 폭등, #대출금리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