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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KIKO(Knock-in knock-out; 통화옵션상품)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KIKO는 본래 외환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하여 가입하는 상품입니다. 특히 외환리스크 관리를 할 줄 모르는 기업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상품입니다. 그런데 어제 MBC 'PD수첩'에서는 바로 이상품에 가입하여 엄청난 손해를 입은 사례들을 취재하여 보도하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KIKO의 본질적 특성

KIKO는 그 상품이 지니는 본질적 특성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환율을 기준으로 약정한 후 환율이 내려가서 입게 되는 손해는 보전해줍니다. 그러나 특정한 범위를 넘어서 환율이 더 내려가면 자동으로 녹아웃(Knock-out)됩니다. 바로 계약이 자동 무효처리되는 것입니다.

'PD수첩'이 들었던 예처럼 기준환율이 950원이었다고 하면 특정 범위내인 920원까지는 환율이 움직여도 가입자의 리스크는 없습니다. 그냥 950원에 그냥 교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920원 이하로 내려가면 계약이 자동해지되어 리스크 헤지의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환율이 올라가는 경우 특정한 범위 내에서는 발생할 이익을 포기해야 합니다. 또 범위를 넘는 환율 인상이 발생하는 경우 차액을 모두 가입자가 물어야 합니다. 이부분은 기회이윤을 포기하는 것과 함께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녹인(KNock-in)은 바로 가입자가 상품판매자인 금융기관에 물어줘야 하는 엄청난 위험입니다.

다시 위의 예에서 살펴봅니다. 기준환율을 950원이라 하면 980원까지는 환차익을 포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크게 문제가 안됩니다. 문제는 980원을 넘어버리면 모두 가입자가 상품을 판매한 금융기관에 배상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외환시장에서 일어난 급격한 환율 변화는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중소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외환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서 금융상품에 가입했는데 엉뚱하게 불필요한 외환리스크를 가입자가 떠 안은 꼴이 되었습니다. 이 상품의 본질이 문제입니다. 범위를 벗어난 환율변화가 발생하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가입자에게 유리한 부분은 녹아웃으로 무효가 되어 버리고, 가입자에게 불리한 녹인의 경우 끝까지 모두 가입자가 물어내야 하는 원천적 불공정 상품입니다.

정부의 어설픈 시장개입

이명박 정권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과 차관의 외환시장에 대한 태도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환율이라는 것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저개발국처럼 폐쇄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경우라면 고정환율제나 준고정환율제를 채택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극도로 개방된 경제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경우 함부로 시장의 자율을 해하는 일을 저질러선 안됩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중에 하나가 바로 외환시장에 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한 부분입니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하여, OECD에 가입하기 위하여 정치적 동기로 환율을 묶어두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절로 올라가야 할 환율을 별로 있지도 않은 외환보유고를 쏟아부어서 묶어두려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엄청난 재정상의 문제는 물론이고 외환보유고가 바닥나서 국가부도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강만수씨는 경제부처 차관이었습니다.

2003년 양극화로 인하여 내수시장이 극도로 침체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헌재 장관은 시장에서 달러를 엄청나게 많이 사들였습니다. 환율을 올려서 수출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보유외환의 평가차액과 외평채 이자 등으로 10조원의 국고를 낭비하였습니다. 그리고도 시장의 환율 하락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 당시의 외환시장 담당 실무자가 최중경 전 차관입니다.

지난 참여정부 5년간 환율이 끝없이 하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은 그리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수출은 5년간 약 3배로 증가하였습니다. 환율을 조작하여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역효과는 매우 큽니다.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강만수 장관은 취임 초부터 환율이 부정적하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달러값이 올라야 한다는 발언을 강경하게 쏟아 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역적자 등으로 점점 환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시장에 불을 지른 행위입니다. 정부의 개입의지가 시장에 알려지면서 환율은 빠른 속도로 올랐습니다. KIKO로 인하여 문닫게 된 중소기업들은 상당부분 정부당국의 책임입니다. 물가상승의 압박도 절반은 바로 환율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 버린 상황에서 이번에는 외환보유고를 시장에 쏟아부어서 환율을 내리려고 합니다. 잠시 내리던 환율은 개입이 끝나자 또 다시 치솟아 올랐습니다. 시장개입이라는 것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입의 효과가 끝나고 나면 오히려 더욱 강한 탄성으로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일이 옳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국제신인도가 추락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강만수 장관의 책임이 큽니다.

금융기관의 잘못

중소기업들의 경우 금융기관과 동등한 지위에서 거래하기가 어렵습니다. 은행이 거래기업의 생명줄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요청하는 신상품 가입권유를 뿌리치고 버티기는 어렵습니다. 노골적인 꺾기의 관행도 문제지만 꺾기가 아닌 것처럼 가장하여 거래하는 행위는 단속도 어렵습니다. 그러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KIKO의 약정을 맺은 경우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또 약정시 범위를 벗어난 환율변동이 발생하는 경우에 대하여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환율의 하락폭이 커서 녹아웃되는 경우는 아마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녹인이 발생하는 경우 리스크에 대하여는 그리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가입자가 자신의 리스크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 해당 금융기관은 매우 큰 귀책사유가 있습니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점차 달러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환율의 하락보다는 상승의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한 시점에 이 상품의 판매를 본격 시작하였습니다. 금융상품의 특성을 기업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으며, 외환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데에도 전문성이 더 높은 은행들이 예측을 잘못하고 거기에 기반하여 상품가입을 권유한 부분도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원천적으로 가입자에게 불리하고 불공정한 상품을 판매한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은행이 스스로의 리스크는 없이 높은 수수료 수입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거래기업들에게 강권한 사례가 있다면 은행이 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리스크를 거래기업에게 권유한 것은 대단히 큰 잘못입니다.

중소기업을 죽여서는 안된다

KIKO로 인하여 부도위기를 맞은 중소기업들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위험한 상품에 가입한 스스로의 책임도 분명히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정부와 금융기관에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에게 모두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수익구조가 양호하고 건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로 인하여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상당부분 책임을 져야 옳습니다. 외환시장에 실질개입이건 구두개입이건 관계장관의 잘못된 발언으로 중소기업을 망하게 만들수는 없는 일입니다.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건전한 중소기업들이 죽어가는 것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철저히 감사를 시행하여 잘못된 상품권유나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면 은행이 모두 책임을 지는 것이 옳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직원들에 대한 강력한 징계도 필수적인 일입니다. 은행의 수수료 수입을 위해서 건전한 기업들이 희생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선 피해기업에 대하여 피해금액 이상의 저금리 여신지원을 실시할 것을 제안합니다. 금융감독원이나 정부에서 책임한계를 규정해주는 때까지 기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은행의 책임이 큰 사례가 발생하면 법정에서 책임이 가려지기 전이라도 스스로 손실보전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직원이 사기꾼이 되고, 금융상품의 판매가 사기가 되고, 금융기관이 사기집단이 되면 자본주의 경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습니다. 행위에 적합한 수준의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금융기관만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보루가 될 수 있습니다. KIKO사태를 바라보며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경제주체들에게 심어줘선 안될 것입니다.

물론 가입한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치하거나 방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가입자에게 손실액을 모두 보전해주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큰 잘못을 저지른 주체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잘못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체가 책임을 전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당한 일입니다. 정부와 금융기관들의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KIKO, #외환리스크 헤지, #강만수, #최중경, #불공정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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