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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더 받으시면 안 될까요?

 

"4000원입니다."

 

계산대 앞에서 카페 주인이 하는 말을 내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아니면 그가 빠져있던 성경책에서 아직 현실로 걸어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닌지. 나는 다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손님하고 착각하신 거 같은데요. 저희는 원두커피하고 토스트, 그리고 과일쥬스를…"

"네, 알아요. 그래서 4000원이에요."

 

갑자기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좁고 길쭉한데다가 구불구불하게 생긴 이상한 건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카페에서 어떻게 그렇게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 그제야 벽에 붙어있는 가격표들을 쳐다보게 되었다. 거기 보이는 메뉴 가격들은 하나같이 너무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생과일 쥬스 1000원, 아이스크림 50% OFF, 게다가 향이 거나한 원두커피 한 사발(?)이면 맛있는 잼과 함께 토스트는 달라는 대로 준다. 그리고 3000원. 계산하면서 카페주인에게 사정하고 싶은 가격이다. '조금만 더 받으시면 안 될까요?' 공원의 울창한 나무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처럼 괜스레 정감이 우러난다.

 

전주 삼천도서관에 대해 썼던 내 기사인 '방귀 때문에 출입금지 당할 뻔한 피서지 이야기'가 조금 웃기긴 했나보다. 그걸 보고 손님까지 찾아왔으니 말이다.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맛깔스럽게 쓰는 것으로 유명한 안소민 기자였다. 마침 안 기자도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 그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우리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옆의 이 카페로 들어갔다.

 

 

이상한 건물에 들어선 이상한 카페

 

평소 도서관을 들락거리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던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자판기나 매점에서 사 마시면 되고, 배고플 때면 가까운 집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서관 옆에 붙어있는 이 카페를 나는 그동안 건성으로 쳐다보며 다녔다. 사업을 그만두고 갑자기 전주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카페에 함께 들어가 담소를 나눌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이다. 다만 이상하고 길게 생긴 건물만이 유독 눈길을 끌던 차였다.

 

안소민 기자와 헤어지고 나는 갑자기 이 이상한 카페를 취재하고 싶어졌다. 도대체 '왜 진작 여길 주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참 아까운 카페였다.

 

"내 건물이라 건물세 나갈 것도 아니니 되도록 싸게 받는 겁니다. 즐겁고 편하게들 쉬다가 가시면 그걸로 족한 거죠."

 

카페 사장님인 한승수씨가 털털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참 독특하다. 너비가 4m~5m정도에 건물 길이를 다 합치면 297m나 된다고 했다. 이 이상한 건물은 도서관과 인근 아파트 벽, 그리고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지어졌다.

 

마치 거대한 이무기가 도서관 옆 '맹꽁이 서식지'에서 승천하려고 기어 나오는 것 같다. 이 길쭉이 건물의 반대편 끝은 비어 있고, 중간은 식당으로 영업하고 있으며, 도서관 쪽이 이 카페다.

 

"비행기, 잠수함 레스토랑도 하려고 했었죠"

 

처음엔 도서관에 딸린 건물인 줄 알았다. 아마 이 건물을 보는 사람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도서관 담장 안에서 튀어나온 건물이 바깥까지 길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구불구불하고 길쭉한 건물을 지은 저간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예전에 도시개발을 하면서 구획정리하고 남은 체비지(替費地)를 제가 시로부터 구입했습니다. 좁고 긴데다가 구부러진 땅이라 쓸모없다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걸 구입해서 그대로 건물을 지은 거죠. 재밌잖아요. 꼭 기차같고 말이죠."

"기차… 그렇네요, 정말!"

 

나도 모르게 무릎이 쳐졌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그런 이상한 땅에 돈을 투자하기 위해 선뜻 나서기가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상상력 풍부한 그의 행동을 막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일면 예술가의 기발한 창작력 수준이다. 역시 미술을 전공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가 옛날에 실제로 기차 레스토랑을 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엔 못 쓰게 된 'DC10기'를 구입하려다가 여의치 않아서 구 소련에서 '일류신82'라는 비행기나 잠수함 같은 걸 가져다가 레스토랑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것도 계산을 해보니 물류비가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그냥 기차로 전환했던 거죠. 아마 내가 국내 기차 레스토랑을 처음 해봤을 겁니다."

"아, 그 재미있는 기차레스토랑 아이디어가 결국 사장님이 처음 내셨던 거군요."

 

"그런 셈이죠."

 

 

독특하고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

 

그러고 보니 카페가 다시 보인다. 이상한 건물과 이상한 가격, 거기엔 이 카페의 사장인 한승수씨의 독특하고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숨어있다. 그저 유행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나만의 장사법을 고집하고자 하는 열정. 그 열정을 가지고 고객에게 선뜻 다가가는 것이다. 거기엔 가격파괴나 재미있는 아이디어 등으로 고객을 편하고 즐겁게 할 무기가 들려 있다. 참 아름다운 무기다.

 

마침 근처 '효문여중'에 다닌다는 아이들 예닐곱이 몰려 들어와 아이스크림과 과일주스를 주문하기에 자주 오느냐고 물어봤다.

 

"자주는 못 와도 가끔은 와요. 다른 덴 이렇게 싼 데 없거든요."

 

조금 특이한 '시'씨 성을 가진 솔이와 수미가 말했다.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승수 카페 사장이 가만 있지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 노래방 자주 가니?"

 

뜬금없이 물어보는 한 사장의 말에 아이들이 목청 드높여 '네'라고 하니, 그는 아이들을 상대로 노래방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물었다. 결국 이 동네에 값싸고 건전한 노래방이 없다는 것, 한 시간에 5000원 정도면 아이들에게도 적당한 가격이라는 것, 이런 재미있는 건물에 건전하고 값싼 노래방을 만든다면 그 또한 동네 아이들에게도 환영 받을 수 있다는 등의 결론을 내렸다.

 

"저쪽 비어있는 곳에다가 한번 해봐야겠는데…."

 

한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말하자 수미와 수빈이, 이세리, 박지인까지도 열광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기사에 이름을 다 써넣어준다고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 아이들은 값비싼 이 동네를 떠나 지금까지 노래방을 가고 싶을 땐, 전주시내 중심가까지 다녔다고 했다. 거기나 가야 조금 싸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발상이 독특하십니다. 이런 재미있는 건물에 값싸고 건전한 노래방을 만든다는 것도 참신한 아이디어네요."

"제가 어려서부터 참 떼똥하다(특이하다)는 말을 좀 듣긴 했어요.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들이 자꾸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가 많거든요. 그 중 괜찮다 싶으면 행동으로 옮길 뿐입니다."

 

상행위를 통해 고객과 더불어 함께 즐겁고 유익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한승수씨의 모습은 참 신선했다.  '정말 떼똥하시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쉴 새 없이 오르기만 하는 물가에, 그나마 메마른 인정으로 더욱 비틀어지는 세상이다. 그런 한편에 한승수씨 같은, 고객이 편안하게 찾아와 영혼까지 맑게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마련하기 위해 한없이 연구하는 상인정신을 가진 사람을 발견한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그러나 취재를 끝내고 작별인사를 하자마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성경 앞에 앉는 그의 표정엔 평상심 이상의 그림자도 없이 그저 담담했다. 자기가 가고 있는 '떼똥한 길'이라는 것이 그다지 특이한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주 인터넷신문인 <선샤인뉴스, www.sun4in.com>에도 올립니다.


태그:#수다떠는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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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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