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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방송사 사장의 출근을 저지한 '해외토픽감 소식'

 

<시사인> 고재열 기자의 블로그 '독설닷컴(http://poisontongue.sisain.co.kr/114 )'에는, 지난 21일 아침에 YTN 본사 앞에서 "시민이 방송사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황이 표현돼 있다. 저지했던 당사자였던 '막둥이 YTN 지키미(cafe.daum.net/YTNYTN)' 카페 회원 '고미'는 카페에 이런 글을 게재했다고 한다.

 

"YTN 타워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6시 18분. 제가 도착했을 때는 노조도 시민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구요. 게다가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정문 앞에 걸려 있던 현수막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건물 안 쪽을 슬쩍 살펴보니 로비 주변에 정장을 입은 사람들 몇몇 명이 바쁘게 서성거리고 있더군요.


정문 주변과 로비 내부의 상황을 보니 직감적으로 구본홍의 출근이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문으로 떳떳이 걸어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아서 뒷문과 앞문을 왔다갔다 하면서 상황을 살펴 보았더랬지요.


그러다 6시 20분 쯤이었을까. 화장실을 가려고 중앙 로비를 가로 질러가고 있는데 에쿠스 한 대가 조용히 멈춰서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저거다! 라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본홍이 차에서 내려서 걸어들어오려고 하더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고 이러다가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출근하겠다 싶어서 일단 앞을 막아섰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도 안 났습니다. 그냥 팔짱만 끼고 구본홍이 YTN으로 들어서는 걸 지켜볼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곧 노조위원장님이 제 옆으로 오셨고 제지하는 간부와 힘겨루기를 하다가 옆으로 밀려났습니다. 노조위원장님이 저를 진정시킨다고 몇 말씀 하신 뒤에 다시 구본홍 쪽으로 가서 대화를 하기 시작하셨고 그 이후부터 노조원들이 조금씩 뒷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노조원 한분께서 괜찮냐고 물어오셔서 괜찮다고 답해드린 뒤 조용히 옆에 서서 노조측과 구본홍이 대치하는 상황을 지켜보다 시민들이 옆에 계셔주면 좋겠는데 왜들 안 보이시나 싶어서 회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앞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도 경황이 없었던 터라 앞문에서 송남군을 만난 시점이 구본홍을 저지시킨 다음인지 그 전인지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구본홍은 오전 6시 30분 쯤에 다시 에쿠스를 타고 YTN을 벗어났습니다."

 

구본홍씨는 YTN 노조는 물론 언론의 허도 동시에 찔렀다. 아침 6시 20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출근을 시도했을 줄은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민이 방송사 사장의 출근을 저지했다는 해외토픽감 소식"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침 6시 20분, YTN 노조의 '구본홍 출근 저지'를 취재할 계획을 세운 나로서는 암담한 생각을 하게 한 시간이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나로서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 6시까지 서울역 3번 출구 인근의 YTN 본사까지 찾아갈 자신이 없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22일 오전 0시 30분 경에 도착해서 아예 밤을 지새우기로 결정했다.

 

출근 시도한 구본홍, 노조원과 시민의 한 목소리 "사퇴하라"

 

 

인근 PC방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든 나는 아침 6시에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화들짝 놀라 부랴부랴 계산을 마친 뒤 YTN 본사 앞으로 향했다. 촛불을 든 시민 1명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고, 후문에는 YTN 노조원들이 피켓을 주섬주섬 챙겨오면서 '출근 저지'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무작정 기다리기였다. 정문과 후문을 동시에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오전 7시 40분이 됐을 무렵, "왔다 왔어"라는 소리와 함께 인터넷 생중계팀이 서둘러 후문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반자동으로 뛰기 시작했다. 후문에 도착하니 에쿠스 승용차에서 내린 구본홍 내정자가 고위관계자들을 뒤로 한 채 서 있었고, 그 정면에는 전국언론노조 YTN지부 박경석 지부장이 서 있었다. 박경석 지부장의 뒤에는 노조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간 대화는 동영상을 확인하면 그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YTN 본사 후문 앞에 나타난 구본홍씨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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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퇴 못 하시겠으면 외부에서 업무 보십시오."

 

박경석 지부장의 한마디에 노조원 1명이 목청을 높였다.

 

"물러나라!"

 

그에 뒤이어 노조원들은 "구본홍은 사퇴하라"를 외치기 시작한다. 구본홍 내정자는 말없이 뒷짐을 지고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고생이 많습니다. 지금 YTN은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멉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다 같이 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의 의사는 충분히 표시가 됐다고 봅니다. 여러분들의 충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장으로서' 많은 복안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저와 함께 앞으로 힘을 합쳐서 이 난관을 미래를 위해 극복하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노조원 중 누군가가 구본홍 내정자의 말머리를 끊는다.

 

"저희 돌아가서 일해야 합니다. 빨리 돌아가십시오."

 

박경석 지부장 역시 자르듯, 그리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저희는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퇴를 요구합니다. 복안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듣고 싶지 않습니다. 사퇴하십시오. 사퇴하시기 전에는 YTN 건물 안에 절대 못 들어가십니다. 돌아가십시오."

 

노조원들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물러나시면 저희 YTN 방송 더 잘할 수 있습니다. MB 지지율도 올라갑니다. 용단을 내리십시오."

"할말도 없고 들을 말도 없습니다."

"차라리 주총에서처럼 용역으로 우릴 짓밟아보세요."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외쳤다.

 

"언론은, YTN은 국민의 것입니다. 사퇴하십시오."

 

결국, 구본홍 내정자는 10여 분 만에 다시 에쿠스 자동차를 타고 돌아갔다. 

 

구본홍 탑승한 에쿠스는 YTN의 관용차

 

구본홍 내정자가 돌아가자 YTN 노조원들은 아침 9시로 예정됐던 정리집회를 위해 본사 5층으로 올라갔다. 그 정리집회에서 '앞으로'에 대한 토론을 할 예정이며, 경영기획실과 보도국장실을 항의방문하기로 했다고 한다.

 

박경석 지부장은 "우리 조합원들은 앞으로도 매일 저지 투쟁을 벌일 것이며 이를 위해 70명 단위의 5개조를 짜둔 상황"이라고 했다. 비교적 신사적으로 돌아갔던 구본홍 내정자의 출근 방식에 대해서도 이미 예견한 바 있으며,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소식을 전할 것이 있다면, 구본홍 내정자가 탑승한 그 '에쿠스'는 YTN의 관용차라는 것이다. 게다가, 박경석 지부장은 "구본홍씨가 이미 외부에서 업무를 보고받으면서 결재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리해보면, 구본홍씨는 이미 YTN 사장으로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후보 방송특보단을 동시에 방송사 및 유관기관의 기관장으로 '낙하'시키는 이명박 정부의 대처는, 지금껏 듣도보도 못했던 일이다.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역시나 YTN이다. YTN 임시주총에서 용역까지 동원해 기습적으로 구본홍 사장 내정자의 '임명 동의'를 통과시킨 이후부터는,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력해졌다. KBS도 YTN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지분구조상 MBC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 의미에서, YTN의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은 단순히 YTN만의 문제가 아니다. 22일 아침, 나는 밤을 지새워 기다려가며 10여 분간의 짧은 한 장면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10여 분의 짧은 순간은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과 앞으로가 달린 아주 중요한 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 나는 또 한번의 역사의 현장에 서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위기의 언론독립, #YTN, #구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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