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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동 버스 종점 안에서 뻥튀기 하고 있는 장성렬 어르신의 모습
▲ 뻥튀기 아저씨 마천동 버스 종점 안에서 뻥튀기 하고 있는 장성렬 어르신의 모습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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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요.”

마천동 버스 종점 안에서 뻥튀기 하는 74세의 장성렬 어르신이 지르는 소리였다. 어린 시절에 힘차게 들었던 그 소리에 비하면 낡고 닳은 소리인 것 같았지만 왠지 더 정감이 가고,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어르신, 날마다 이렇게 튀기시나요?”
“그렇죠. 비가 오는 날은 공치구요.”
“하루에 몇 번이나 뻥튀기 하시는데요?”
“대중이 없어요. 손님이 오면 튀기고 없으면 안 튀겨요.”
“자릿세는 없으세요?”
“있는데요, 버스정류소 측에서 그냥 해 주시는 거죠.”
“고맙겠어요.”
“그렇죠.”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장성렬 어르신이 뻥튀기를 한 번 마친 뒤였다. 어르신은 바쁜 손놀림으로 뻥튀기한 쌀과 떡을 봉지에 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뻥튀기한 쌀과 떡이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웠는데, 그것들을 손님에게 건네면서 1만원을 받고 있었다. 어르신은 흐뭇해하면서도 이마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데 여념이 없었다. 

어르신의 얼굴 모습에서 온유함과 겸손함, 후덕함과 진실함을 엿보았습니다. 어르신의 '뻥이요'는 거짓이 아닌 진실의 소리였습니다.
▲ 뻥튀기 아저씨 장성렬 어르신 어르신의 얼굴 모습에서 온유함과 겸손함, 후덕함과 진실함을 엿보았습니다. 어르신의 '뻥이요'는 거짓이 아닌 진실의 소리였습니다.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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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뻥튀기 기계가 아주 컸는데, 지금은 아주 작네요.”
“그렇겠죠.”
“그냥 튀기면 다 잘 나오나요?”
“콩이든 옥수수든 골고루 튀길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죠.”
“그냥 넣으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 아닌가요?”
“너무 마르거나 말랑말랑한 것은 함부로 안 튀겨줘요.”
“한꺼번에 다 넣으면 저절로 튀겨지는 게 아닌가요.”
“튀겨지긴 한데, 깨물면 이빨이 아파서 오래 못 먹어요.”
“그래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서 못 튀기는 것들은 그냥 가지고 가라고 하죠.”
“그러면 손님들이 뭐라고 하지 않나요?”
“뭐, 배가 불렀다는 분들도 있고, 계속 튀겨 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죠.”
“그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래도 손님들을 위해 정중하게 거절하죠.”

장성렬 어르신은 보통으로 장사하는 분들과는 사뭇 다른 분이었다. 나를 대하는 모습이든지 다른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이든지, 그 분은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어떤 손님이든지 겸손함과 온유함을 잃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의 이익보다도 손님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항상 앞서 있었다.

이 속에서 '뻥이요' 하고 모든 것들이 튀겨져 나옵니다. 사람의 속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처럼 말이지요.
▲ 뻥튀기 기계 이 속에서 '뻥이요' 하고 모든 것들이 튀겨져 나옵니다. 사람의 속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처럼 말이지요.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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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그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둘기 두 쌍이 날아오고 있었다. 조금 뒤에는 참새들도 끼웃끼웃 줄지어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들 모두가 뻥튀기 하고 땅에 떨어진 찌꺼기를 주워 먹고픈 이유 때문인 듯 했다.

그래서 어르신은 그것들에게 뻥튀기 안에 남아 있는 부스러기까지 죄다 부어주고 있었다. 먹고 살겠다고 기웃거리는 그것들을 모른 채 하는 게 영영 마음에 걸리는 듯 했던 것이다.

그만큼 뻥튀기 아저씨 장성렬 어르신은 이곳 주민들과 등산객들뿐만 아니라 날짐승들에게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성렬 어르신이 내지르는 ‘뻥이요’ 하는 소리는 동네 주민들과 등산객들은 물론이고, 주위의 미물들에게까지도 사랑받는 소리이지 않겠나 싶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맡은 일터에서 어떠한 일을 하든 소리를 내게 돼 있다. 어떤 사람은 정치인으로서, 어떤 사람은 언론인으로서, 어떤 사람은 교육인으로서, 어떤 사람은 종교인으로서, 어떤 사람은 상인으로서 크든 작든 소리를 내 지른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는 겸손함과 온유함과 후덕함에서 나온 것인지 굳이 그 소리 하나만 듣고서도 환히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지난 삶의 인격을 통해서이다. 누구든지 현재 그가 내지르는 소리에는 지나온 삶의 인격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아무리 그럴듯하게 입에 발린 달콤한 소리로 현혹해도 그것이 ‘뻥이요’ 하는 소리임을 구분할 수가 있고, 아무리 힘없이 쇠잔하게 소리를 질러도 그것이 ‘진실이요’ 하는 소리임을 곧잘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몇 번 까지인지도 말이다.

“하루에 몇 번이나 뻥튀기 하시는데요?”

“대중이 없어요. 손님이 오면 튀기고 없으면 안 튀겨요.” 

그런 의미에서 마천동 버스 종점 안에서 내지르는 뻥튀기 아저씨 장성렬 어르신의 ‘뻥이요’하는 소리는 그저 뻥튀기 하기 위한 장삿속 소리만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는 내가 속한 일터에서 그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온유함과 겸손함, 후덕함과 진실함을 잃지 않아야 된다는 깊은 울림과 떨림의 소리였다.


태그:#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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