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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

 

1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뿐만 아니라 관련자 모두를 집행유예 처리했다. 법정을 빠져나오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하지만 삼성 비자금 및 경영권 세습 문제를 오랫동안 추적했고 문제제기를 해온 이들은 법원 판결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앞서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이 전 회장에게 징역 7년과 벌금 3500억원을 구형했을 때도 "사익추구를 위해 법을 위반하고 회사에 수천억 손해를 끼치고 수천억의 세금을 포탈한 기업인 범죄에 대해 온정적인 구형을 했다"고 비판했던 이들이었다.

 

김상조 교수 "결론 짜맞춘 듯 재판 이뤄져"

 

이날 양형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했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교수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이 제3자 배정이 아니라 주주 배정이었고, 이는 주주의 재산권 문제라고 판단한 재판부의 논리는 삼성 측의 주장과 똑같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발행 혐의는 스스로 손해액을 계산해보니 50억원이 넘지 않아 공소시효(5년)가 만료됐다는 판단 역시 믿을 수 없다"며 "미리 결론을 짜맞춘 듯 재판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선 특검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데다 재판부 역시 우리나라 재벌의 지배구조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을 갖추지 않은 채 협의한 법논리만으로 사건을 다뤘다"며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유죄에 대해 무죄를 선언한 판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이 다 무너진 것이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같은 판결이 굳어질 경우 밀실에서 그룹총수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재벌의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나 형사처벌은 요원해질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재벌의 바뀌지 않는 지배구조로 인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엄청날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는 "끊임없이 문제가 됐던 이재용씨의 에버랜드·삼성SDS 주식 취득과정에 대한 삼성의 주장에 좀 더 힘이 실리게 됐고, 삼성생명 차명계좌 등도 알뜰히 다시 챙겼다"며 "결국 삼성의 미래가 이번 판결을 통해 탄탄대로가 됐다"고 한탄했다.

 

또 "결국 이 같은 판결의 근본적 원인은 조준웅 특검팀이 자신들의 구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조사를 하거나 법리 및 증거 등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이번 판결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이미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허태학·박노빈 사건이 뒤집힐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 교수는 "허태학·박노빈 건의 경우 당시 재판부는 제3자 배정을 인정했는데 이번 재판부는 이를 적법한 주주 배정으로 판단해 사실상 앞서 판결과 배치되는 논리를 내놨다"며 "대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될지 봐야겠다"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 "단 한 사람 위해 대한민국 전체를 바보로 만드는 쇼 그만하자"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의혹 등을 세상에 알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쇼도 만날 뻔한 스토리로 반복되니깐 지겹다"며 "이제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대한민국 전체를 바보로 만드는 쇼는 그만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김 신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은 쉽게 이야기해서 60만원을 1억원으로 뻥튀기해 자식에게 준 것인데 이 전 회장은 그를 '행운'이라고 했고 재판부는 그 '행운'을 축복해준 것"이라며 "이제 우리 사회의 공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모든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 불신을 승복시킬 수 있는 권위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용철 변호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늘은 정말 말하기가 힘들다,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어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그:#삼성특검, #이건희, #김용철,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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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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