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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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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사기관이다. 아울러 권력기관이기도 하다. 마땅히 공익과 권력은 정의롭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만에 하나 공익과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담합한다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위태롭게 된다. 그런데 지금 검찰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일그러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기회에 악의적인 사이버 범죄 행위를 반드시 추적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댓글까지 포함해 수사를 확대함으로써 무거운 범죄는 무겁게, 가볍다 하더라도 범죄가 된다면 그에 상응하게 처벌할 것이다."(서울중앙지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수사팀 관계자 발언 15일 <연합뉴스> )

검찰은 소비자 주권운동에 불과한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악의적인 사이버 범죄'라고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재판에 의하지 않고는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처사다. 또한 검찰은 정보사회에서 개인의 요긴한 의사표현 수단인 댓글에까지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탄압으로 비친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검찰, 자기가 포도청인 줄 아나

위 두 가지 사항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검찰 스스로 '국민을 처벌하는 기관'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런 나머지 현대 민주국가의 검찰이 아닌 왕조시대의 포도청이 사용했음직한 언사를 남발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검찰은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이며, 범죄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하는 권한(기소)을 갖는 기관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검찰은 스스로 정체성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처벌' 운운하고 있다.

최근 검찰은 '조중동 광고 안 싣기' 운동을 벌인 누리꾼 20여 명을 출국금지 조치한 데 이어, 15일에는 이 운동을 주도한 카페 운영자들의 자택과 직장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반정부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것도 아니다. 만약 기소되더라도 벌금형 정도의 형량이 예상되는 누리꾼들을 출국금지시킨 것도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한 술 더 떠 이번에는 압수수색까지 감행한 것이다.

검찰은 앞서 촛불집회를 생중계한 인터넷방송 사이트 '아프리카' 문용식 대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을 뿐 아니라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린 MBC <PD수첩>을 상대로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민을 상대로 방영된 공중파 방송의 콘텐츠를 수사 대상에 삼은 일부터가 석연치 않은 일이다. 이에 대해선 보수 성향의 학자들까지 우려를 표명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탄압을 검찰이 앞장섰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참여정부 때 저항하던 검찰들은 다 어디 갔나

8일 오후 2시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 PD수첩 > 표적수사 정치검찰 규탄대회'에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근조 정치검찰 사수 공영방송'이라는 검은 천을 세로로 내걸었다.
 8일 오후 2시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 PD수첩 > 표적수사 정치검찰 규탄대회'에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근조 정치검찰 사수 공영방송'이라는 검은 천을 세로로 내걸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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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고유 권한인 수사권이나 기소권의 힘은 막강하다. 왜냐하면 수사나 기소는 국민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을 심각하게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찰은 주어진 권력을 온전히 공익 실현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 검찰 수사는 법의 정신에 부합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검찰에게 수사권 독립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듯이 지난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검찰은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사하려고 했다. 그 때 천정배 법무장관은 법에 명시된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검찰의 구속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하여 사상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뚜렷하게 제기되던 터였다. 그래서 천 장관은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한 것이었다.

그 때 검찰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검찰은 난데없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일은 수사권 독립을 저해하고 정치 검찰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을 핀 데 이어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오늘의 검찰은 어떠한지 보자. 지난 6월 20일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조중동 광고중단운동 특별단속' 지시를 내린 일과 최근의 누리꾼 검찰 수사는 분명히 인과관계에 있다. 참여정부 때에는 장관이 (수사를 하지 말란 것도 아니고) '불구속 수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도 수사권 침해라고 반발하던 검찰이 이제는 법무장관의 구체적인 수사 지휘까지 받아 즉각 실천에 옮기고 있다.

왜 한국의 검찰은 '합리적인' 정부에는 극구 저항하면서 권위적인 정부에는 속된 말로 '알아서 기는' 것일까? 한국의 검찰은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걸까?

군부독재 시절 한국의 검찰을 가리켜  흔히 '권력의 시녀'라고들 했다. 이 점은 검찰 자신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독재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한국의 검찰은 옛 타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김영삼 정권은 물론 김대중 정권 때까지도 상당 부분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일을 했다.

그들이 판단할 때 참여정부는 권력에 좀 대든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젊은 평검사들까지 대통령과의 토론에서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아무런 불이익도 없었다. 그들은 다만 토론회 자리에서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대통령의 불쾌한 음성과 표정을 목격했을 뿐이다.

참여정부 들어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말은 점차 사라져갔다. 그 치욕적인 말이 없어진 것은 우선 검찰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국정원과 기무사의 기능이 제자리를 찾게 되자 검찰은 명실공히 최고 권력을 가진 수사 기관으로 부상했다. 게다가 그들은 '기소독점'이라는 권한까지 여전히 쥐고 있었다.

이명박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

우리는 이제 검찰이 최소한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일은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검찰은 유달리 재벌에 약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들이 정치권력 대신 경제권력을 선택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아닌 게 아니라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나왔다.

김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수많은 검찰 간부들이 삼성으로부터 뇌물성 떡값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검찰총장도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자 국민들은 '떡찰' 또는 '떡찰총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당시 대선 판도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그러자 검찰은 한나라당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수사에서 보인 태도는 우유부단의 극치였다.

검찰은 또 당선이 확실해지는 이명박 후보의 BBK 수사에서 이 후보에게 면죄부를 주는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것은 차기 대통령과 검찰의 밀월 관계를 예고하는 걱정스러운 사건이었다. 이제 국민들은 지금 검찰에게서 독재시절의 '권력의 시녀' 역할을 떠올리고 있다.

검찰이 8일 '조·중·동 광고 안 싣기 운동' 관련 게시글을 게시한 누리꾼 2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자 누리꾼들이 관련 기사에 비판 댓글을 달고 있다.
 검찰이 8일 '조·중·동 광고 안 싣기 운동' 관련 게시글을 게시한 누리꾼 2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자 누리꾼들이 관련 기사에 비판 댓글을 달고 있다.
ⓒ 인터넷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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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구독 안 하기 운동'은 소비자들의 1차 불매 운동이다. 그리고 조중동에 광고를 싣는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2차 불매운동이 된다. 미국 연방법원의 판례는 1차운동은 물론 2차운동까지 모두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며 따라서 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한다. 현대 들어 표현의 자유는 신체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해졌다.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표현뿐 아니라 자기의 사상을 매체를 통해 전파할 자유까지 포괄한다. 특히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해서는 기존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

검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농심에 고소를 종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는 명백한 과잉 수사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의 과잉 수사라는 것은 곧 권력 남용을 의미한다. 검찰의 수사는 보통 고소·고발이 있을 때 착수된다. 그리고 공익적인 중대한 사안일 경우 인지 수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번 검찰의 누리꾼 수사는 대상 선정부터가 잘못되었다. 검찰이 정당한 수사권을 행사하고 싶으면 지난 총선 과정의 한나라당의 전국구 뇌물 공천이라든지 <조선일보>의 ABC의 부수 조작 등을 마땅히 수사해야 한다.

이번 누리꾼들에 대한 광고주 압박 수사는 검찰 수뇌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아마도 검찰은 그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여겨 더욱 신속하고 강경한 수사를 벌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이는 실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최고 사법기관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정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징조일 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만들어낸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장편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검찰, #소비자운동, #권력의 시녀, #소비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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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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