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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골목 어귀 곳곳에 '뉴타운 관리처분인가'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관리처분은 재개발 절차의 마지막 단계로 주민들의 이주와 건물 철거가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조합은 8월 말까지 이주하라고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고 주민들은 늦어도 내년 초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후텁지근한 마른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초, 이곳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아현동 골목을 찾았다.

아현동은 골목길의 성지다.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을 통해 아현동 주민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 아현동 골목길 아현동은 골목길의 성지다.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을 통해 아현동 주민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 조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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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도심개발로 밀려온 사람들

아현동은 말 그대로 애고개, 아이고개다. 옛날부터 사대문 안에서 죽은 아이들 시체를 이곳으로 옮겨 매장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도심개발이 이뤄지면서부터다. 갈 곳 없는 서민들이 이곳까지 밀려온 것이다. 그리고 40여 년 후, 꼬불꼬불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을 따라 억척스런 그들의 삶도 뿌리를 내렸다. 65세 김상철씨도 그 때 이곳에 들어온 아현동 1세대다.

"내가 여기서 30년을 넘게 살았어. 그 때는 먹을 것도 없었지. 저기 당인리에서 풀을 뜯어다 밀가루 반죽하고 멸치 2마리에 소금 넣고 끓여 먹었어. 수도도 없어서 물지게 지고 저 밑에 굴레방다리에서 떠다 먹고 말이야. 그때부터 여태 청소일도 하고, 경비일도 하고 어머니가 종이 팔아 온 돈으로 먹고 살면서 86년에 지금 이 집을 산 거야."

김상철씨가 사는 곳은 염리동 24-3번지. 바로 옆에 24-1번지와 24-2번지가 한 집으로 붙어 있다. 그 바람에 이 세 집 앞으로 배정된 아파트 분양권은 단 1장. 다가구주택의 경우 입주권이 세대별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김상철씨는 대책위를 따라 구청이고 시청이고 돌아다니며 데모도 하고 재판도 걸었다.

결국 입주권은 받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내내 불편하다. 이 입주권으로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2억 원 이상의 돈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상철씨는 끝내 집을 팔기로 하고 다른 데 전세라도 얻어 이사 갈 채비를 한다. 그리고는 뉴타운 사업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시울을 붉히며 노여워한다.

"뉴타운이 어떠냐고? 남대문 태워먹은 사람 알지? 그 사람 남대문을 왜 태웠어? 지금 내가 동대문이라도 태우고 싶은 사람이야! 왜 그런 줄 알아? 멀쩡한 내 집을 뺏기게 됐으니 그렇지! 내가 어디로 가? 산으로 가, 바다로 가? 나라에서 갈 데는 만들어 놓고 개발을 해도 해야지!"

날이 갈수록 집주인과 조합의 횡포는 심해지고

입주권을 받아도 추가비용에 엄두를 못내 떠나야 하는 영세 집주인도 문제지만 세입자들이 더 문제다. 지난 2003년 세입자로 이곳에 온 김완숙씨는 조합에서 집주인들에게 보낸 공문을 보여주며 침통하게 말을 잇는다.

"솔직히 뉴타운 시행으로 집값은 왕창 뛰었고 그게 다 집주인들 주머니로 들어갔잖아요. 3년 전만 해도 평당 천만 원 했던 것이 지금은 3~4천만 원까지 뛰었어요. 근데 여기 집주인들 다 세입자 전세금 끼고 집 샀지, 누가 자기 돈만 갖고 산 사람 어디 있나요? 다 세입자들 피 빨아서 재산 불리고 이제 와서 쫓아내고 있는 거죠."

김완숙씨는 현재 집주인에 의해 명도소송까지 당한 상태. 몇 달 전부터 세입자 대책위를 만들어 활동하자 집주인이 빨리 집을 빼라며 소송까지 걸어 놓은 것이다. 그나마 대책위 활동도 지난 6월 22일 이후로는 정지다. 조합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폭력을 행사해 모임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여기 용역 깡패들의 무법지대예요. 아무리 깡패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녀도 경찰은 이권개입이라며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요. 아니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이 그래요?"

붉은 페인트로 '철거'라고 쓴 사무실 앞으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 철거용역 사무실 붉은 페인트로 '철거'라고 쓴 사무실 앞으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 조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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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편법과 불법으로 무시되는 세입자들의 권리

김완숙씨가 보여준 공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세입자를 두고 있는 조합원께서는 책임지고 신속하게 세입자 이주대책을 마무리해 주어야 합니다. 세입자 이주는 전체 조합원의 이익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조합원께서는 가능한 빨리 세입자들을 내보낸 후 그 사실을 조합에 통보해 주셔야 합니다."

사실 집주인에게 세입자 이주는 그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세입자에게 지급되는 주거이전비가 조합의 돈, 즉 집주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개발 현장에는 세입자들에게 지급되는 돈을 줄이기 위해 갖은 편법과 불법이 동원된다.

현행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 시행규칙 제54조(주거이전비의 보상) 2항에는 주거이전비 지급 대상자를 사업인정고시일 당시 3월 이상 거주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합은 정비구역지정 공람 3월 이상 거주한 자로 그 자격을 제한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사업시행인가일까지 계속 거주한 경우에 한하여 받을 수 있다며 대상 세입자를 더 줄인다. 이곳 아현 뉴타운에서도 주거이전비를 받을 수 있는 세입자는 정비구역지정 공람 3월 이전부터 사업시행인가일까지 거주한 자로 제한된다.

세입자들에게 주거이전비를 지급하기 위한 공고문이 거리 곳곳에 붙어 있다
▲ 세입자 주거이전비 지급 공고문 세입자들에게 주거이전비를 지급하기 위한 공고문이 거리 곳곳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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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4인 가구 기준 주거이전비는 655만5468원. 적은 액수가 아니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세입자들이 이 돈에 전세금 합쳐 서울에서 다른 전셋집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다. 뉴타운 대이동으로 이미 주변 전세금이 두 배, 세 배 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대다수 세입자들은 이곳보다 집값이 싼 경기도로 이주해야 한다.

물론 이마저도 어려워 쫓겨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세입자들이 허다하다. 월세 20만 원에 방 두 칸짜리에 살고 있는 한 주부(39)는 부지런히 고철을 정리하며 탄식하듯 말한다.

"여기 뉴타운 해서 사람들이 대이동을 하니까 주위 월세가 몇 배로 올랐어요. 이 옆 염리동 만해도 40~50만 원은 줘야 방을 구할 수 있어요. 그러니 내가 어디로 이사 갈 수 있겠어요. 쫓겨날 때까지 있을 수밖에 없죠."

2005년 10월에 이곳에 들어와 식당일을 하고 있는 황준정(47, 여)씨는 주거이전비는 고사하고 이사비 한 푼 못 받고 쫓겨나야 한다. 조합에서 정한 기준일 이후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는 뉴타운이고 뭐고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와 보니 땡전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게 생겼어요. 투기한다고 들어온 사람들 때문이라는데, 나 참. 돈이 없으니까, 싸니까, 살려고 들어왔지, 전세 4300만 원에 무슨 투기를 해요. 그것도 다 있는 사람들 얘기죠."

"온통 쓰레기 천지에 송장 냄새가 나"

주거이전비 지급 시점도 문제다. 집안 청소에 정화조까지 싹 다 비우고 새로 전입할 주소로 주민등록을 옮겨 놓아야 신청 가능하다. 문제는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 그래서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가구며 쓰레기며 죄다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가버린다. 마을 언덕배기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온통 쓰레기에 송장 냄새가 난다며 몸서리를 친다.

"동네가 온통 쓰레기 천지야. 사람들이 전부 버리고 가. 방 빼고 수도에 가스에 전기까지 끊고 쓰레기 하나 없이 치우고 변소통까지 싹 치워줘야 이전비를 주거든. 근데 사람들이 쓰레기 버릴 돈이 없으니 죄다 그냥 길바닥에 버릴 수밖에. 아주 송장 냄새가 나 죽겠어."

골목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이미 철거가 시작된 곳도 눈에 띈다
▲ 아현동 골목 골목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이미 철거가 시작된 곳도 눈에 띈다
ⓒ 조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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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은 이미 주민들 30% 가량이 이주를 마친 상태다. 곳곳에 공가를 표시해 둔 붉은색 글씨와 덕지덕지 붙은 이삿짐 광고물이 삭막하기만 하다. 지금껏 이곳 주민들이 일궈온 삶의 터전은 이제 다시 그 옛날 아현(兒峴), 아이고개, 아이들의 무덤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무덤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의 역사와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까지 모두 묻히고 있다.

아현뉴타운 개발, 입주자에게 물었습니다 
<참고자료 - 아현뉴타운(3지구) 주민 설문조사>

○ 설문기간 : 2008년 7월 7일~13일(7일간)
○ 설문방법 : 일대일 면접을 통한 직접 설문
○ 참여인원 : 아현동 주민 50명(무작위)
○ 설문자 : 조영권(사회당 마포구위원장)

1.  현재 귀하의 주택점유형태는 무엇입니까?
1) 소유 - 13명. 26%
2) 전세 - 20명, 40%
3) 월세 - 17명, 34%
4) 기타 - 0명, 0%

2. 현재 이 지역에 거주하신 기간은 얼마나 되십니까? (평균 14년 7개월)

3. 현재 진행 중인 뉴타운 사업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1) 매우만족 - 0명, 0%
2) 만족 - 2명, 4%
3) 보통 - 11명, 22%
4) 불만족 - 12명, 24%
5) 매우 불만족 - 25명, 50%

4. 뉴타운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원주민 재정착율과 세입자 대책 문제 - 38명, 76%
2) 부동산 투기와 주택가격 상승 - 8명, 16%
3) 마을 공동체 훼손 - 2명, 4%
4) 기타(낮은 평가금액) - 2명, 4%

5. 귀하는 아현뉴타운 사업이 완료된 후에 재입주 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1) 분양아파트 입주를 통해 재입주할 것이다 - 1명, 2%
2) 임대아파트 입주를 통해 재입주할 것이다 - 4명, 8%
3) 보상비를 받고 타지역으로 이주할 것이다 - 33명, 66%
4) 기타(아직 이주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 12명, 24%

6. 재입주 의사가 없으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입주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 26명, 79%
2) 직장 또는 자녀 교육의 문제 때문에 - 4명, 12%
3) 기타 (아파트가 싫어서 등) - 3명, 9%

7. 귀하는 임대주택 입주자격, 이주비 지급 등 보상 대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1) 잘 알고 있다 - 2명, 4%
2) 어느 정도 알고 있다 - 19명, 38%
3) 잘 모른다 - 29명, 58%

8. 지금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1) 뉴타운 백지화 - 12명, 24%
2) 구청 및 조합의 적극적인 홍보 - 4명, 8%
3) 세입자와 원주민을 위한 주거대책 마련 - 33명, 66%
4) 기타(무이자 이주비 확대) - 1명, 2%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프로메테우스에도 기고되었습니다. 본 기자는 사회당 마포구위원장입니다.



태그:#아현뉴타운 , #아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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