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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대보름에 찹쌀로 동그랗게 빚어 만든 '탕 위앤(湯圓)'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대보름에 그것을 먹는 이유는 그 모양이 둥그렇기에 가정과 만사가 술술 풀리기를 염원하는 뜻에서이다. 그런 마음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만두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이 남만(南蠻) 정벌을 하고 돌아올 때 심한 풍랑을 만나자,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밀가루 49개를 바다의 신에게 제사하였더니 감쪽같이 파도가 잔잔해졌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비롯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만두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7살 된 아들과 함께 중국에 체류하면서 곳곳을 여행하며 쓴 조영임의 <아들아, 이것이 중국이다>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야말로 엄마와 아들이 겪은 중국문화의 체험담이자, 여행답사기이다.

 

"산동성 연대(烟台) 대학에서 1년간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살며 부대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셔터를 누르고 옛 문화의 향기를 맡아 보았다." (머리말)

 

그녀는 한국에서 잊고 지내는 단오를 중국땅에서 대통에 넣은 찰밥 '쫑즈'를 맛보고 되살려냈다고 한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단오가 큰 명절 중의 하나로써, 사람들은 그때 창포에 머리를 감거나 그네를 타며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생각을 하며 자신의 전공답게 멱라수에 몸을 던진 굴원의 <어부사>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에 부닥치면서 굴원이 고민했던 탁영탁족(濯纓濯足)의 처세는 내 화두의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오늘따라 새삼스레 찾아든다." (51쪽)

 

한편, 그녀는 아들과 함께 연대시(烟台市) 근교의 봉대각과 장유(張裕)의 술 문화박물관과 해신의 장보고기념탑과 청도, 상해, 항주, 소주, 난경 등 여러 곳들을 불러본 여행기도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7살 난 아이에게 한국인의 의식과 세계 속의 거대한 문화를 깊이 있게 심어줄한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해신의 장보고기념탑과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청도의 해군박물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청사와 노신공원의 윤봉길 기념관도 7살 아들에게 뼛속 깊이 새기도록 했을 것 같다. 그곳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1932년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가 있은 후 임시정부는 부득이 상해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그 씁쓸함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머나먼 타국에서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숱한 고생을 하면서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던 저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내가 있고, 아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222쪽)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분들이 얼마나 피땀 흘리며 싸웠는지 눈에 선하다. 그런데도 현재 일본의 독도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이제껏 까지 대처해 온 부분이 심히 유감스러운 것은 그때 당시의 임시정부 사람들과 달리 너무 안일하게 여긴 까닭은 아닌지 싶다.

 

아무쪼록 이 책은 중국과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가 무엇인지, 중국의 여행기 속에 담긴 우리의 역사의식을 어떻게 각인시킬 것인지, 7살 된 자녀에게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널리 읽힐만한 책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아들아, 이것이 중국이다 - 중국문화기행

조영임 지음, 학민사(2008)


태그:#중국역사, #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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