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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황홀한 저녁놀,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이곳이 아니면 저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 또 볼 수 있겠어요? 오늘은 강북 산동네에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뒷동산에서 만난 젊은이의 말입니다. 7월 10일, 저녁을 조금 일찍 먹은 후 무심코 내다본 하늘 풍경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어쩌면 하늘이 저렇게 고울 수가 있단 말인가. 부지런히 카메라를 챙겨들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뒷동산 정자 옆 탁 트인 넓은 바위 위에서 누군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전에도 몇 번 만났던 30대 중반의 남자였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돌아다보며 꾸벅 인사를 합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같은 장소였습니다. 그때도 역시 그는 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지요. 사진작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취미로 사진을 찍을 뿐 아직 어느 사진전에도 출품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찍는 사진은 항상 북한산과 도봉산 너머로 지는 노을이라고 합니다. 벌써 수천 장을 찍어 컴퓨터에 담아 놓기만 했다는 겁니다. 오늘도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장면을 좇으며 한참 동안 말없이 수십 장면을 찍었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근처에 사시는 것 같은데 사진 찍으면서 행복하다는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참 뜬금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해가 되었습니다. 해질녘이면 가끔씩 나와 같은 방향과 같은 대상을 잡고 사진을 찍으면서 어찌 통하는 것이 없었겠습니까. 다만 나이 차이가 너무 나고 잠깐 잠깐의 만남이었기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을 뿐이었지요.

 

"나도 이곳에 사는 것이 무척 행복하답니다. 가난하지만 정겨운 이웃들이 있어서 좋고, 특히 오늘 같은 날 저 북한산과 도봉산 위로 펼쳐진 고운 노을을 보고, 또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내 말을 들으며 그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동질성과 유대감이 그를 편안하게 하는 듯 했습니다. 노을은 고운 모습으로 북한산 능선과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운 노을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닙니다.

 

"전에도 몇 번 느꼈지만 오늘은 특히 선생님과 제가 동지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저희 아버님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에게 부모님이 계시지 않느냐고 물으니 양친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계신다고 합니다.

 

"선생님, 오늘 저 아름다운 노을을 보려고 이 동산에 오른 사람은 선생님과 저 밖에 없잖습니까? 같은 자연현상을 같은 시각, 같은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정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것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부모님들도 자신이 노을 풍경에 빠져 카메라를 들고 동산에 오르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젊은이가 부모님을 이해하세요. 너무나 고생스럽고 힘든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 저도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하지만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족관계라는 것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이해관계가 없어도 의견과 가치관의 차이로 갈등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남이라면 오히려 쉽게 이해하고 지나칠 수 있는 일도 가까운 가족이기 때문에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이제 들어가셔야죠? 사모님께서 걱정하실지도 모르는데요."

 

참 사려 깊은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젊은이가 참으로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바라본 북한산 위에는 희미한 노을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노을, #젊은이, #가족,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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