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17일 장면 1: 하오하오(좋아 좋아)

 

거리: 36km, 해발: 2400m 

 

생각지도 않은 침대에서 편안한 잠을 자서인지 몸이 개운했다. 밖을 나가 보니 차가운 공기가 폐로 파고든다. 순간적으로 한기가 느껴졌다. 만약에 어제 야영지에서 잤다면 얼어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약간의 기념행사가 열렸다. 참가비 일부와 기부금을 모은 돈으로 이곳 학생들에게 학용품과 책을 전달하는 행사였다. 어린이는 미래의 자산이다. 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비록 오지일지라도 그 어린이들은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갖게 되리라.

 

 

한바탕 요란하게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선으로 이동을 했다. 출발 지점에는 온 동네 주민이 다 나온 것 같다. 화려한 복장의 무희들도 나와서 위구르 지역 전통 댄스로 축하 공연을 해준다.

 

사실 이곳 사람들의 얼굴은 완전 서양인이다. 중국이라고 믿어지기 힘들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중국은 전형적인 대륙 국가다. 그들의 식욕은 끝이 없어 지구상 모든 사물도 모자라 항상 주변의 나라와 땅을 먹어 치우려 한다. 아직도 위구르 자치주는 티벳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열망으로 중국 정부와 끝없는 마찰이 벌어지는 지역이다.

 

우리가 달릴 코스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마주보고 있다. 혹시 모를 돌발사태에 대비해서 각 참가자들은 자신의 여권을 휴대해야 한다. 무슬림 사회라는 지역 특성과 민감한 국경 지대라는 위험 요소가 행동의 주위를 요구한다. 

 

그래도 오늘은 축제의 날! 많은 이들의 환호 속에, 김성관, 강번석, 조경일, 이동욱, 최명재, 임덕찬, 송경태, 홍현분, 박미란, 송기석, 정수철, 김철홍, 김주한, 유지성, 강수동, 박상연. 총 16명의 한국 참가자들은 완주를 위한 일 주일간의 대장정에 나섰다. 그리고 2명의 자원봉사자 이혜령, 조이, 미디어 팀의 안병식이 우리의 모험에 동행했다. 

 

원래 오늘은 워터 크로싱(Water Crossing)으로 계곡을 따라 강을 건너고 이리저리 굴리는 코스인데, 폭우의 여파로 계곡 옆 비포장 길을 달리는 안전한 코스로 변경이 됐다. 오 마이~!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온다. 처음 시작부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첫날 시각장애인 송경태님의 도우미를 맡았다. 예전 사하라사막 대회를 같이 참가한 경험이 있기에 안내자 역할은 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 해발이 기본 2000m를 넘는 고산 지대이기에 컨디션 조절에 많은 신경이 쓰였다.

 

첫 번째 체크 포인트까지는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는 여유를 보이며 달려갔다. 코스 주변은 깎아지듯 가파르고 메마른 고봉들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이어져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 옆의 강물은 소용돌이 치는 급물살로 보기만 해도 빨려들 것 같은 기세로 윽박지르고 있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험해도 처음에는 모든 게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많은 참가자들과 인사도 나누고 모두가 서로에게 축복을 나눠준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 계속적인 언덕들의 연속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의 경치는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바쁘다. 송경태님에게 주변의 풍경을 설명하는데 어떠한 미사용어를 사용해서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를 가다 보니 오늘의 하이라이트, 100m 이상 되는 강물을 흔들 다리를 통해서 건너는 코스가 나왔다. 다리 입구에서 한 번에 두 팀 이상 건너지 말라는 주위를 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다리의 발판이 나무로 되어 있다. 다리에 오르는 순간 흔들거리는 느낌에 섬찟함이 몰려온다. 송경태님과 균형을 유지하며 천천히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동네 아이들이 다리를 흔들고 있다. 이 노무새끼들이… 욕이 절로 튀어 나온다. 

 

 

다리를 지나니 마을이 나온다. 아름다운 색깔로 포장된 밀밭 길을 거닐며 마을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살라말리쿰, 게파하리, 미야미야, 함두릴라, 인샬라. 꾸이스." 무슬림 지역인지라 중국에서도 아랍어 인사가 먹힌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서도 흔들다리를 건너 강 옆의 절벽을 타고 가는 코스가 나왔다. 가뜩이나 바닥의 자갈과 험해진 코스로 송경태님의 진로에 방해가 되는데 절벽에 붙어서 가야 한다는 끔찍한 현실에 서로 할말을 잃었다.

 

절벽에 달라붙어 게걸음 걷듯이 한발 한 발 바위에 올리고, 끌고, 잡고, 붙들고… 휴~! 꽤 많은 시간이 걸려서 천신만고 끝에 위험 지역을 벗어났다. 중간 중간에서 도움을 준 현지 스태프와 참가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차 잘못하면 강물에 빠져 천길 나락의 길로 들어서는데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송경태님과 내가 과연 그 절벽을 빠져 나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더 이상의 위험 지대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한결 여유로워진 발 걸음을 유지한 채 세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했다. 약간의 휴식과 물을 보충하고 마지막 남은 4km를 위해서 다시금 힘을 냈다.

 

계곡을 따라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비포장 길을 가는데 어느 순간 멀리서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송경태님과 함께 고생했다는 격려 속에 두 손을 높이 들고 골인을 했다.

 

기록은 7시간 43분 5초. 절벽에서 까먹은 시간이 너무 많았다.

 

덧붙이는 글 | 20007년 6월 17일부터 23일까지 열렸던 고비 사막 마라톤대회 참가기입니다.


태그:#마라톤, #사막, #중국, #고비사막, #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