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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 선봉장인 어청수 경찰청장의 유임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촛불집회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경찰이 곧바로 지난 주 비폭력 집회를 이끌었던 스님·목회자·사제들까지 잡아들일 수 있다고 천명한 것을 보니 말이다. 어 청장은 게다가 수배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종교시설(조계사)이 치외법권 지대가 아니다"라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런 어 청장을 유임하면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국가 폭력의 정당화이다. 공포정치를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29일 새벽 서울시의회 골목에서 비폭력을 주장하면서 누웠던 '눕자 행동단' 100여명을 전경은 방패로 찍고 진압봉으로 마구 때리면서 군홧발로 짓밟고 지나갔다. '군홧발 여대생' 사건으로 줄줄이 문책을 당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한 여성이 이날 전경에 밟히고 곤봉에 마구 구타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하지만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이번에는 사과 한마디 없다. 이날 경찰 폭력으로 무려 3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찰은 '폭도' 운운하면서 되레 큰소리다. 이쯤되면 공권력이 아니라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경찰력'이다. 한 경찰이 저잣거리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팼다면 그걸 공권력 행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집단적으로 시민들을 팼다면 그건 조폭과 다를 바 없는 행태다. 어 청장은 이렇듯 공권력을 야만적 국가폭력 도구로 추락시킨 장본인이다.   

 

또 어 청장은 지금 신 공안정국의 돌격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주 시국미사, 시국기도회, 시국법회를 통해 '비폭력 촛불' 기조가 유지되고 있어 경찰 폭력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경찰은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촛불을 조여오고 있다. 광우병대책회의 상황실을 군사작전하듯 압수수색하고, 구속시킨 진보연대 관계자에게서 발견된 철지난 문건 한 개를 들이밀며 북쪽과의 연계설마저 언론에 슬쩍 흘리고 있다.  

 

이뿐인가. 경찰은 동네에서 촛불 전단지를 붙인 시민마저 연행했다. 두달동안 거리에서 잡아들인 연행자만도 1000여명이 넘는다. 아이들 손을 잡고 촛불을 든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에 최루액을 타겠다고 엄포를 놓는가하면, 운동화를 신고 진압봉을 든 '백골단'을 부활시켰다. 사실상 5공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그의 유임을 통해 이같은 공안정국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경찰은 지난 주말 서울광장과 태평로 일대에 켜진 40만개 촛불이 평화적으로 시위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안 돼 서울광장을 봉쇄조치 했다. 40만개의 비폭력 촛불이 청와대와의 소통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에 지하철 역에까지 전경을 배치해 광장으로의 출입을 통제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이다. 

 

이런 어 청장을 청와대는 유임시켰지만, 촛불을 든 시민은 그를 유임시킬 마음이 없다. 지난 5일 촛불집회 현장에 등장한 그의 '현상수배 전단지'가 그 증표이다. 촛불시민들에게는 이제 조소와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촛불이 켜진 이유가 무엇인가?  대다수 국민의 뜻을 무시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이다. 경찰이 누구인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민이 고용한 사람이다. 경찰이 해야할 일은 국민들과 대통령이 제대로 소통할 수 있도록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호하는 일이다. 

 

2008년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폭력이 난무하기를 바라는 이가 과연 있는가? 끝까지 비폭력을 외치며 자신들의 뜻을 평화적으로 표현하려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째서 자신들이 고용한 경찰들에게 구속되고 짓밟히고 위협받으며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래서다. 어 창장은 차라리 자진사퇴하라. 그것이 임명권자인 '불통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조금이나마 국민과 소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이다. 또 경찰폭력에도 불구하고 5일 모인 수십만명의 시민들에게 마지막 남은 충정을 전할 수 있는 길이다. 어 청장은 국민들에게 마지막 예를 다한다는 심정으로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이것이 오만에 찬 '소폭개각'으로 청와대에 쏟아진 비난을 그나마 주워담을 수 있는 길이다.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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