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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자율화 조치를 발표한 지 3개월이 다 돼가고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4·15 학교자율화조치는 학교 현장에 많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그 변화를 감당해야 할 학생들 대부분은 '괴롭다'는 반응이다. 그것을 보는 교사나 학부모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세 가지 사례를 통해 그 심각성을 살펴봤다.

 

[교사] "생활지도나 인성교육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

 

인천 남구에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과 과학 전담을 맡고 있는 김아무개(34)씨는 교육과학기술부의 4·15학교자율화조치 발표 이후 괴롭다. 5학년 밖에 안 된 반 아이들이 아침 8시 30분이면 학교에 와야 한다. 영어회화 교육 비디오테이프를 20분간 봐야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사실상 0교시라 할 수 있는 교과목 방과 후 학교를 듣기 위해 8시까지 등교한다.

 

또한 지난 6월 25일 사실상 일제고사로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으로 인해 교사도 학생도 모두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부교육청에서는 이 시험을 학생들이 잘 보게 하기 위해 사전에 모의고사를 따로 보기도 했다. 실질적으로는 1학기에 일제고사를 두 번 본 것이다.

 

김 교사는 과학수업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슷한 단원끼리 순서에 상관없이 묶어서 가르쳐왔는데, 이 시험으로 인해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시험 범위가 일괄적인 순서대로 1단원부터 7단원까지 진행되다보니 아직 가르치지 못했던 단원이 포함됐던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학교에선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아이들 대다수는 오후 3시쯤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에서 아이들은 보통 8시까지 수업을 듣지만, 이렇게 시험이 치러지는 기간에는 밤 11시까지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김 교사의 설명이다. 물론 주말에도 학원에 나간다.

 

초등생이 벌써부터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에 시달리고 피곤해하니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도 없다. 심지어 수업이 끝나고 바빠서 교실 청소할 시간도 없다는 학생도 늘고 있다. 학교에서 생활지도나 인성교육은 이미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김 교사는 80년대 교직생활을 시작한 선배로부터 '내가 첫 발령받았을 때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전하며, 4·15 조치는 폐지돼야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스트레스 받는 아이 보면서, 이건 아닌데"

 

인천 부평구에 소재한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최아무개(40)씨는 학교자율화조치 후 아이가 안쓰럽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만 보던 학교에서 자율화조치 후 수시로 시험을 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 시험을 하루에 한 과목씩 보기도 했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인천이 그 전 모의고사에서 꼴찌를 해 교육청에서 성적을 올리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이에 학교장이 시험을 봤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도 밤 11시가 다 돼야 끝나는 학원 수업이 시험 기간이면 새벽 1시까지 이어진다. 아이가 '만날 시험이라서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나도 크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학부모단체 임원인 최씨는 얼마 전 학부모단체 모임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누구 엄마 아들이 이번에 수학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고, 누구 엄마 아들은 과학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다'는 이야기를 학부모들끼리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개적으로는 석차를 공개 안 한다고 하지만 이미 공개된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최씨는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가 안타깝다. 왜 아이들끼리 경쟁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으로 몰아넣고, 불안감을 조성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 "학교자율화 조치가 정말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며, "폐지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최씨는 하소연했다. 4·15조치 후 최씨 자녀의 사교육비는 더 올라갔다.

 

[고교생] "특별히 달라진 거 없지만 너무 힘들어”

 

부평구 소재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인 정아무개(18)군은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다. 오전 8시까지 등교해 오전 자율학습을 하고 8시 30분 수업을 시작해 오후 5시 30분에 수업이 끝난다. 수업이 끝나면 보통 9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원에 가서 11시 50분까지 또 수업을 듣는다. 주말에도 거의 하루종일 학원에서 보낸다. 시험기간이면 더욱 빠듯하다.

 

정군은 "작년부터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됐기에 4·15 조치 후 심화반이 생겨났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 부족한 잠을 학교 쉬는 시간이나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채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4·15 학교자율화조치 이후...학생·학부모 압도적 반대의견 
전교조·참교육학부모회 설문조사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며 4·15 학교자율화조치를 발표한 지 3개월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교사·학생·학부모들은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 위의 3가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4·15 조치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전교조 인천지부와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가 공동으로 최근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4·15 조치에 대한 반대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는 지난 5월 19일부터 6월 10일까지 20일 동안 인천지역 20개 초·중·고등학교의 학생 1571명과 학부모 1318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무응답의 경우 결과에 산출하지 않았다.

 

4·15조치의 교육적 가치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에 학부모의 60.3%, 학생의 56.5%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학부모 21.4%, 학생 12.0%에 머물렀다.

 

두 단체는 "이번 조치가 학교의 자율성을 높이기보다는 이제까지 교육계의 합의로서 존재하던 최소한의 규제마저 사라지게 해, 학교를 입시경쟁의 고통 속으로 더 몰아넣게 될 것임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간파한 결과"라고 밝혔다.

 

4·15조치로 인한 입시경쟁의 완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압도적 다수의 학부모(73.1%)와 학생(61.6%)이 입시교육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입시경쟁의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은 학부모 11.5%, 학생 8.0%에 그쳤다. '사교육비 절감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는 학부모 72.3%와 학생 59.1%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0교시와 심야 보충수업 허용, 영리단체의 보충수업 참가와 사설모의고사 참여 허용, 수능 이후 학원 출석 인정, 어린이신문 강제구독 금지 폐지와 촌지 지침 폐지 등 핵심 쟁점 사항에 대한 찬반조사에서는 모두 과반수 학생과 학부모가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두 단체는 이에 대해 "정부와 시교육청이 추진하는 4·15조치는 실질적인 자율화를 가져올 수 없으며, 학생의 건강권·인권·학습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규제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준별 이동수업(속칭 우열반)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태의 수준별 수업 또는 우열반 편성도 반대한다'는 의견(학부모 40.3%, 학생 47.5%)이 가장 높았으며, '현행을 유지해 영어·수학 등 주요 교과에 한해서만 수준별 이동수업을 운영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는 의견(학부모 31.5%, 학생 21.4%)이 뒤를 이었다. 모든 과목별로 우열반을 편성하거나(학부모 17.4%, 학생 11.6%) 전 과목 합산 성적을 기준으로 완전 분리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찬성의견(학부모 7.7%, 8.6%)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두 단체는 "학부모보다 학생의 우열반 반대 비율이 높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직접 당사자인 학생들이 우열반 편성으로 인해 입을 마음의 상처, 열등감과 자포자기 등 부정적 효과가 가져올 비교육적인 결과를 미리 예견하고 학부모보다 강력히 문제제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교육청과 학교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임을 지적한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린 내용입니다.


태그:#415학교자율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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