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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

 

브랜드 아파트 광고 문구가 아닙니다. 정말 집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는 공간입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과 스타일이 반영된 집은 주인과 집이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네모 반듯한 단지 안에서 층층이 같은 위치에 비슷한 크기의 텔레비전을 들여놓고 사는 우리네 주거문화에서는 그럭저럭 형편따라 평수따라 사는 곳이 정해지기 마련입니다만, <집을 생각한다>를 읽고 약간의 용기를 내어 집에 자기만의 숨을 불어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쓴 <집을 생각한다>는 주택전문 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에 대한 답을 차분히 적은 에세이 입니다. 열두 가지 주제어로 집에 대해 생각해보는 이 책은 크기나 두께에 비해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게 되는 흡인력 강한 책입니다.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건축가는 원룸으로 기억된다'며 작지만 아늑해 '자기만의 방'다운 집들을 소개합니다. 아름답게 어질러진 주방,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등 우리가 놓치기 쉬운 좋은 집의 조건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 합니다.

 

베르메르의 창이 있는 집

 

채광과 조명에 관심이 많은 제게 12장 '두 가지 의미의 빛'은 짧지만 분명하게 빛에 대한 기준을 한 길 높여줍니다.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의뢰하면서 아주 조심스러운 어조로 "어딘가 베르메르의 그림과 같은 느낌의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는 부분에 이르면, 간판 드문 바닷가 마을에 그런 집을 주문하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깁니다.

 

왼쪽에서 떨어지는 햇빛을 은은하게 받아들이는 창 아래, 책 읽기 좋은 의자 하나만 놓아두고 정오부터 해가 질때까지 느긋하게 연필로 밑줄 그으며 책을 읽고 싶습니다.

 

책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작품 중에는 책 읽는 작은 방과 등 뒤에 책장을 두고 햇빛 아래서 책을 읽는 툇마루가 있는 집이 있습니다. 집 안에 책을 위한 공간, 주인장의 조용한 독서를 가능하게 하는 숨은 공간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서둘러 책과 빛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렸습니다만, 이 책에는 사각형 아파트에 익숙한 '아파트 공화국' 사람들에게는 많이 불편해 보이고, 낭비로 여겨지는 공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정원 끝에 아이들의 놀이만을 위한 나무판자로 만든 집이나, 어지럽게 설계된 주방, 집 안에 그을음이 생길게 뻔한 벽난로 등 우리 시선에 불편해 보이는 시설이 많습니다. 특히 지은이의 원룸 예찬은 넓은 평형 아파트를 갖지 못해 안달이 난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그저 낭만적인 지식인의 배부른 취미 정도로 여겨질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로우의 14제곱미터 짜리 숲 속 작은 집이나, 1949년에 지어진 사방이 유리로 마감돼 화장실을 제외한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는 한번쯤 스스로 유배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멋진 집들입니다. 지은이의 원룸 예찬은 이렇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지은 집이 바로 원룸입니다. 즉 원룸은 '먹고 자는 곳'이라는 주택의 기본 정의에 가장 충실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택 내에 있으면 편리하지만 실제로는 필요 없는 비실용적인 공간을 하나씩 신중히 삭제해나가다 보면, 더 이상 들어낼 수 없는 마지노선에 도달하게 됩니다. 거기에 주택의 원형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31쪽)

 

또 풍경에 대해서는 책의 첫 장을 할애한 만큼 분명하게 좋고 나쁨을 지적합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곳이 도시건 시골이건 상관없이 주변과 유형무형의 관계를 맺는 것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건축물 하나 혹은 집 한 채가 원래의 풍경 안에 사람살이의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적이고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지은 건물 한 채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너무나도 간단히 망쳐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20쪽)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눈여겨 본 7장,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에 이르면 당장 마당 있는 땅집으로 이사가고 싶어집니다. 집을 판단하는 기준에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집인가?', '아이의 심성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집인가?'를 포함시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골목과 동네가 사라지고 사각형 단지만 남겨둘 작정으로 여겨지는 뉴타운이나 재개발정책에 반대하게 됩니다. 먹고 자고 투자하는 곳을 넘어서 우리 아이의 꿈이 자라고, 심성이 키워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살고 있는 사각형 집이라도 어딘가 다르게 바꿔보고 싶습니다.

 

합리성이나 기능성, 편리함이나 쾌적함, 경제성 같은 기준으로 선택하는 집과 가족의 개성과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고르는 집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당장 집을 교체하기 어렵다면 지은이의 취향을 흉내내어 작은 가구 하나에 가족의 오늘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차분히 책을 읽기에 좋은 의자, 술 한 잔 즐기기에 좋은 의자, 편지를 쓸 때 좋은 의자, 무릎에 올라앉은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의자 등 단순한 의자 하나가 생활을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구는 단순히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일 뿐 아니라, 삶을 되새겨보게 하는 또 다른 시점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118쪽)

 

집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지만, 사람을 닮기도 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집을 닮아가기도 합니다. 사람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시간이 갈수록 정이 드는 공간, 집에 대해 지은이의 눈높이를 따라 잠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서울에 골목길과 동네 이발관, 구멍가게 같은 곳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햇빛 잘 드는 땅집이 아파트 담장과 사이좋은 이웃으로 공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요? 가족들 얼굴을 차례로 떠올린 후, 그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풍경'까지 담아낼 수 있는 집을 그려보세요. 그 집이 당신을 쏙 빼 닮은 그런 평화로운 풍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친김에 좀 더 욕심을 부려봅니다. 도시 곳곳에 다르면서도 함께 있을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이 나무의자를 닮은 집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오롯이 자기 개성을 살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테니까요. 

집을 생각한다 - 집이 갖추어야 할 열두 가지 풍경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다빈치(2008)


태그:#집을 생각한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 #건축,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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