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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 3명이 서울대 교정을 찾았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3일 오후 4시 30분경부터 서울대 문화관에서 명예박사학위 수여 및 특별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평화와 인권을 위해 일하는 반 총장께서 조국의 실상을 좀 알아달라"며 경찰의 과잉진압 사진이 담긴 피켓을 손수 제작해왔다. 하지만 사복 경찰과 일부 경호원 등이 피켓을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이 건물 구석에 끌려가 강제억류를 당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경찰 막무가내 제지... 건물 구석에 40여 분 간 강제 억류

 

증권사에 근무하는 박종일(32)씨는 이날 근무를 조퇴하고 서울대 교정을 찾았다.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경찰진압 장면이 담긴 피켓도 함께 들고 왔다.

 

박씨는 "UN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세계의 평화와 인권 문제인데, 그 수장을 맡고 있는 반 총장께서 조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며 "대한민국 공권력이 국민을 어떻게 유린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권후퇴 모습이 너무 억울해서 이렇게 피켓을 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아무런 구호도 외치지 않았고, 단지 반 총장이 입장하는 길목에서 피켓만을 들고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씨의 피켓을 본 경찰이 몰려들었다. 곧바로 4명의 경찰이 박씨의 피켓을 빼앗았고, 문화관 건물 주변 구석으로 끌고가 40여 분 동안 억류하기까지 했다. 

 

박씨는 "경찰들이 나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소속도 전혀 밝히지 않았고, 신원을 계속해서 물었으나 일절 답을 안 했다"며 "반 총장이 입장하고 나서야 피켓을 돌려주고 통행권을 열어줬다"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후 4시 20분경에 빼앗겼던 통행권을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되찾게 됐다.

 

<다음 아고라>에서 '아름다운 청년'이란 대화명으로 활동 중인 김수영(44)씨도 마찬가지 상황을 겪었다.

 

김씨는 경찰의 과잉 진압 장면이 담긴 피켓을 가져와 서울대 교정에서 직접 시위 문구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과 경호원 등이 이를 보자마자 김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경호원 등 3명이 갑자기 김씨를 건물 뒤쪽으로 끌고 갔다. 김씨는 "왜 함부로 몸에 손을 대냐"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주위에 있던 서울대 학생들과 시민들이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로 이 장면을 찍으며 항의하자, 그제야 경찰은 무력행사를 멈췄다. 시민들은 "왜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고 끌고 가냐" "체포 영장은 있는 거냐"라고 강하게 반발했고,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 관계자는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 난 잘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린 뒤 다급히 자리를 피했다.

 

'인권 수장' 반기문 눈 가린 '인권 유린' 경찰

 

결국 '피켓 시민'들은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할 수 없었다. 반 총장은 오후 5시경 500여 명의 환영 인파와 경찰·경호원만 만난 채 문화관 중강당으로 입장했다.

 

반 총장이 입장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나 박씨와 김씨는 두 손으로 피켓을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문화관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또한 이들 앞에는 사복 경찰 10여 명이 철통같이 지키고 서 있었다.

 

경찰 사이로 피켓을 높이 들고 서 있던 김수영씨는 "반 총장이 서울대 강연을 온다고 하길래 질의응답 시간에 UN 사무총장으로서 모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 유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초청장이 없었다"면서 "그래서 밖에서라도 알리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인권과 평화를 다루는 유엔의 수장께서 자신의 조국에서 터무니없는 공권력 행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교 휴학 중인 김민수(20)씨도 이날 서울대 교정에 들러 김씨가 제작한 피켓을 나눠 들었다. 김씨는 "얼마 안 있으면 UN에서 세계인권위 회의가 열린다"며 "한국의 '촛불 집회' 현장에서 나온 경찰의 폭력진압 행위를 반 총장께서 인권탄압 건으로 제소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섰다"고 말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서울대 재학생 박아무개(24·자연과학대)씨는 근처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들고 와 '피켓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박씨는 "이들이 주장하는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될 필요가 있다"며 "피켓도 큰 걸로 하고, 위치도 좀 더 앞에서 진행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오후 5시 30분경 강연을 마친 반 총장은 문화관 앞에서 곧바로 차량에 탑승한 채로 서울대 교정을 떠났다. '피켓 시민'들은 물론, 앞쪽에서 반 총장을 환영하던 서울대 재학생들도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김민수씨는 "우리를 못 보고 그냥 지나가신 것 같다"며 아쉬워했고, 박종일씨는 "우리들이 반 총장께 직접 알리기는 힘든 것 같다, 그가 우리의 모습을 기사로라도 접할 수 있도록 기자님들이 잘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태그:#반기문, #사복 경찰, #인권 탄압, #촛불 집회,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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