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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촛불진압작전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조중동'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존재할 이유가 있느냐"며 강경 진압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이 정권은 그 '지침'을 신속하게 수행했다.

 

지난 주말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적 진압은 전형적인 '공포의 동원' 전략이었다. 촛불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고, 그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했다.

 

경찰의 촉수는 촛불집회 근거지도 결코 그냥 두지 않았다. 동틀녘 작전이라고나 할까. 월요일 이른 아침, 경찰은 참여연대와 진보연대 사무실에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급습했다. 서울광장은 이미 며칠 전부터 봉쇄됐다. 촛불은 모일 광장도, 그 근거지도 빼앗겼다.

 

그들의 작전은 성공 직전까지 간 듯했다. 신부와 수녀들이 촛불을 지키기 위해 나오기 전까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을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촛불의 수호자'가 될 것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기독교계와 불교계도 잇달아 시국기도회와 법회를 연다. 촛불이 꺼질 듯하자 뒤에 있던 촛불 응원군들이 나선 것이다.

 

살펴볼수록 기가 막힌 촛불이다. 여중고생들이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 그 촛불이 이처럼 크게, 또 이처럼 오래 이어질 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촛불이 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목소리와 문화를 이렇게 꽃피울 것을 알아챈 이도 거의 없었다. 6·10 100만 촛불집회를 정점으로 촛불이 점차 사그라지자 이제는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며 역공에 나선 조중동이나 이명박 정권도 그 진압 작전의 시나리오에 '촛불응원군'은 미처 감안하지 못한 것 같다.

 

사제단 미사 의미 축소·폄훼에 급급한 조중동

 

그래서일까? 오늘(7월 1일) <조선일보>는 경찰의 대책회의 압수수색 사실을 1면에 '촛불 대표기사'라 보도하면서 정작 어제 '촛불'의 하이라이트인 사제단 미사 소식은 3면 귀퉁이에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더했다. 이미 한물간 소식인 30일 새벽의 '거리시위' 풍경을 1면 기사의 주요 내용으로 전하면서 정작 새롭고 뜨거운 소식일 수 있는 어제 사제단의 시국미사 소식은 그 기사 끝에 혹처럼 붙여 놓았다.

 

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바라보는 <중앙>의 시각과 느낌은 5면에 별도로 배치한 사제단 시국미사 기사의 제목(불법집회 봉쇄했더니 사제단 "매일 미사")과 사설에서 잘 드러난다. <중앙>은 엄정한 법집행을 재차 강조한 사설(엄정한 법집행, 늦었지만 당연하다)을 실은 데 이어 사제단에 이어 기독교계와 불교계 등이 잇단 시국 기도회와 법회를 가질 예정인 데 대해 '성직자들이 불법 부추기는 모양새는 안 돼'라는 사설을 별도로 실었다. "종교계 진보단체가 불법 촛불집회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를 우려"했다.

 

<동아일보>는 그래도 사제단의 미사 사진과 기사를 1면에 배치해 면치레는 했다.

 

그러나 이들 세 신문은 사제단이 어제 발표한 성명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을 하면서 그 첫 번째 요인으로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한 것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사제단은 성명에서 보수언론의 폐해를 이렇게 지적했다.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의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중·동으로서는 혹 떼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인 꼴이 됐다. 인터넷에서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여 광고 수익에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는 누리꾼, 사옥에 온갖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물론이고 현판까지 떼어 낸 '과격한 시위대'에 이어 이제는 '사제단'까지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사제단도 '법대로' 엄단하라고 이 정부를 다그칠까? 그러면 이 정권은 또 어떻게 할까?

 

이명박 정권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와대가 검경을 총동원해 강경 진압 작전에 나선 것은 '더 이상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의식에 보수세력의 결집이 절실한 이 정권으로서는 그 협조가 필수적인 조중동의 거의 강압에 가까운 주문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 나름대로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사태가 이렇게 된 만큼 '촛불진압'을 발판 삼아 그동안 구긴 체면도 살리면서 '힘있는 새출발'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고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제단이 그 모든 계산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누구 말대로 세상은 산수가 아니다.


태그:#정의구현사제단, #촛불수호대,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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