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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에 반대하면 공권력으로 엄단하겠다는 것은 국가폭력이자 독재적 발상이다. 촛불집회 원천봉쇄 같은 방법으로는 이명박정부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자처하는 것밖에 안 된다. 5년 내내 국민과 싸우다 실패한 정권으로 막 내리게 되면 한나라당이 가만히 있겠나. 이명박정권은 보수 세력에 의해 먼저 버림받을 가능성이 있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박원석(38)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국민적 촛불항쟁에 이명박정부가 자충수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아직도 정확히 요점 파악을 못한다는 점에서 '아마추어 정권'임에 틀림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27일 경찰로부터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된 박 실장은 시민단체 활동가로는 처음 '수배생활'을 하게 됐다. 시민단체 활동가를 구속하고 긴급체포에 나선 것은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박 실장 스스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시국사범으로 도피생활 할 줄이야"

 

<오마이뉴스>는 지난 29일 오후 서울시내 한 연구자의 작업실에서 박 실장과 만났다. 열 살배기 아들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일렁였다. 참여연대 창립부터 14년째 시민단체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 실장은 시국사범으로 도피생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허허롭게 웃었다.

 

그는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전국 170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보수언론과 이명박정부가 반미좌파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배후조종세력인 양 포장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박 실장은 "두 달간 800명 가까이 연행된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정말 기록적인 일"이라며 "대한민국은 이명박정부 들어 경찰국가가 됐다"고 개탄했다.

 

이명박정부가 더 이상 국민적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다면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에 의해 버림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박 실장은 "이 정도의 정치위기를 맞고 있다면, 한 편으로는 강하게 대응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론 합리적 대안이 필요한데 이 정부는 그 고민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박원석 실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긴급체포영장이 신청됐다.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없던 일이다. 국민대책회의는 1700여개 전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됐다. 내적 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생활협동조직·학부모단체·종교인단체·환경단체·여성단체 등이 총망라됐다.

 

국내 보수언론과 이명박정부가 대책회의를 반미좌파로 밀어붙이면서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배후조종세력인 양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 무엇이 지금과 같은 위기를 불렀다고 보나. 

"이명박정부가 정치위기에 처한 것은 정부불신 때문이다. 야당과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고, 시민사회 의견수렴도 없었다. 협상 뒤에 일방적으로 장관고시를 했다. 매우 형식적인 절차를 통해 이 문제를 일단락 하고자 했다. 기본적인 민주적 의견수렴의 절차, 합의절차를 무시하는 데서 오는 국민적 불신이 있다.

 

지난 20년간 형식적 민주주의가 발전되고 외형적으로도 정착됐다. 국민들에게는 법 제정이나 정책검증, 견제와 감시, 건전한 비판 등에 굉장히 익숙하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민들에 비해 훨씬 덜 열려 있다. 성장한 의식과 변화를 무시하고 있다. 이번 집회는 비단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로부터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것뿐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반민주적 정권의 과거회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 이번 촛불문화제는 이름없는 수많은 중고생과 인터넷카페 회원들이 주도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진행된 촛불집회와 국민저항에 대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국민대책회의가 이 집회의 배후이고 선동가였나? 현재까지 맥락을 볼 때 근거없는 얘기다. 국민들은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시청앞 광장에 모이지 않았다.

 

이 정부가 벽창호처럼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공권력이나 폭력 이외에 다른 해결책을 쓰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분노하는 거다. 국민이 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는지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촛불의 진원지를 찾고, 음모가 있으려니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보를 독점하고 자의적으로 호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민주주의가 정착됐다. 과거처럼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여론을 맘껏 호도하기 어렵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깨졌다. 대통령의 중국 순방 직후 첫 일성이 '촛불은 어디서 무슨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였다. 2000년대 국민들의 민주적 의식과 참여에 반해 정권은 70~80년대식 사고에 젖어 있다."

 

 

보수언론 '폭력 프레임'과 시민저항, 시위대의 돌출행동

 

- 폭력적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왜 그런가.

"정부와 경찰에게 책임이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경찰폭력이 본격화 됐다. 정부는 그 이전의 촛불집회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엄단한다고 엄포도 놓았다. 지난 31일부터는 청와대 인근에서 시민들이 곤봉과 군홧발·방패에 맞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보수언론이 촛불시위를 선두에서 왜곡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입장을 정부가 받아 강경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강경진압 중에 빚어진 시민저항을 다시 폭력으로 몰고 있다. 지속적으로 '폭력 프레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대책회의는 시종일관 평화시위를 주도했다. 비폭력 저항을 통해 시위의 순수성을 확고히 보일 때 승리한다고 설파해왔다. 물론 일부 시위대의 돌출행동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조직적으로 준비된 폭력인가? 절대 아니다. 경찰폭력을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감정적으로 돌출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시민들은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방화하려던 시민을 대책회의가 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국민은 청와대를 점거하겠다고 한 일이 없다. 행진을 가로막는 것에 분노한 시민들이 밧줄로 전경버스를 끌어내렸지만 이것은 지금까지의 경찰폭력에 비할 수 없다. 경찰은 누워서 맨몸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을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때리면서 밟고 지나갔다. 이걸 보면 이명박정부는 폭력진압을 통해 이 시위를 잠재우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 어린이나 노인, 여성, 국회의원 가리지 않고 연행했다.

"지난 두달간 800명 가까이 연행됐다. 60일이 채 안 되는 상황에서 보자면 정말 기록적인 일이다. 물론 과거 군사독재 정권 때는 하루에 1000명도 연행됐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국민이 지난 20년간 좀체 보지 못했던 일이다. 경찰국가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전 세계가 한국적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인가 우려함직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이나 국민들에게 사과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거리에서 촛불 든 시민들은 대통령과 소통할 대상이 아닌가. 혹시 이 대통령은 거리의 시민을 폭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지난 20일 정부에 정권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어떤 성과가 있나.

"지난 6·10 선언문에 담긴 표현은 재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정권퇴진도 불사하겠다는 것이었다. 말의 의미는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20일까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권퇴진을 하겠다고 이해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만큼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재협상을 촉구한다고 이해했다.

 

정부가 최근 1주일간 고시 강행과 추가협상에 대해 홍보했지만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반발이 더 많은 것 같다. 국민적 요구를 외면하고, 아예 입을 틀어막기 위해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가 이 정도의 정치위기 상황이 되면 한편으로는 강하게 대응하더라도 다른 한편의 합리적 방책이 필요한데, 그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과 정권 사이의 타협은 점점 없어지고, 대치만 전면화 되는 양상이라 안타깝다."

 

- 반미구호가 나올 법 한데 안 나온다.

"국민들은 반미구호로 촛불의 순수성이 왜곡되고 색깔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한 본능적 경계심을 갖고 있다.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나올 상황이지만 안 나온다. 조중동과 이 정부만 명백한 근거 없이 공작하고 있다. 또 이번에는 미국이 직접적인 가해자라고 볼 수 없다.

 

주권을 가진 정부가 미국 앞에서 국민 의사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린 점에 대한 1차적 분노가 있는 것이다. 미국이 강대국의 힘을 통해 정부를 압박한다면 당연히 미국에 대한 반대여론이 있겠으나, 이번에는 정부가 먼저 국민세금으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광고를 내는 식으로 스스로 주권국가임을 포기한 데 대한 반감이 더 크다."

 

 

"운동사회 향후 방향 좌표 설정해야 할 시점"

 

- 명망가들의 사회적 역할도 필요해진 국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번 촛불은 자발적 시민이 먼저 나섰고, 시민사회운동이 한발 뒤처져 있다 따라갔다. 뒤에서 지원하고, 시위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솔직히 시민사회도 이 새로운 현상에 어떻게 조응해야 할지 몰라 다소 주춤거린 면이 있다. 1700개 단체가 대표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전처럼 투쟁을 지휘하는 지도부가 아니다.

 

과거처럼 사회원로가 나선다고 해서 대표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자발성에 기초한 직접민주주의, 집단지성이 과거 계몽적 지침이나 지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분위기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어떻게 향후 국민승리를 확인할 것인지 운동사회가 고민하고 좌표를 설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60일째 지속되는 이 촛불집회, 어떻게 결론을 맺게 될 걸로 보나.

"국민의 요구사항이 추가협상에 충분히 반영됐나? QSA프로그램은 미국 수입업자가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보냈다고 하면 KS마크 찍듯 찍어 보내는 거다. 여과 없이 받도록 돼 있다. 광우병특정위험물질이랄 수 있는 뇌·척수·머리뼈·내장·등뼈·사골·꼬리뼈 등이 모두 수입된다. 명실상부 검역주권도 포함하지 않았다.

 

정부는 할 수 있는 제스처 다 했으니 지금부터 정부정책에 반대의 입장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권력으로 엄단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국가폭력이자 독재적 발상이다. 5년 내내 거리에서 국민과 이렇게 대치할 텐가. 우리 국민이 폭력과 권위주의·독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공권력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열망을 누를 수 없다. 계속 이렇게 대응한다면 이명박정부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자처하는 것이다. 국민과 불화하는 정권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결국 5년 내내 시간을 허비하다 끝내 실패한 정권으로 막을 내리게 되면 한나라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명박정권은 보수 세력에 의해 먼저 버림받을 가능성도 있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도 계속 민심이반 하는 정권과는 한배를 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끝내 보수언론도 이명박정부를 버릴 것이다."

 

- 민주정부 10년간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대됐지만 제도화된 것은 많지 않다.

"정권의 국정운영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상황이다. 지난 10년간 정치적 반대자를 이렇게 탄압한 적은 없다. 국정원, 검찰 등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켰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에서 일거에 역행했다. 경찰은 말할 것도 없다. 검찰도 공안검찰로 즉각 회귀했다. 정보기구도 마찬가지다. 결국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늘어난 국민적 욕구를 어떻게 제도로 반영할 것이냐, 지방자치를 넘는 수준에서 국민소환제는 불가능한가, 국민발안제는 안 되나, 헌법상 국민투표 요건을 가다듬을 필요는 없나 따져볼 일이다. 정치권이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이 싸움은 국민이 이긴다. 먼저 포기하고 먼저 지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맨몸으로 저항하면서 많이 다쳤다. 비폭력 평화시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할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비폭력 평화저항으로 맞서야 한다. 때리면 맞고 물대포 쏘면 목욕하는 식으로 묵묵히 전진할 때 국민이 승리한다고 본다. 이것은 세계역사에서 검증된 바다."


태그:#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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