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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10만이 참가한 6·28 촛불시위는 오늘의 위기 국면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전국에서 백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6월10일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급박한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에게는 다소의 낙관과 일말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촛불의 위력을 보고 나서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 심리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 심리는 이제 말끔히 지워야 한다는 판단이 든다. 촛불 시위를 대하는 이명박 정권의 태도에 확연한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위 군중을 철저히 폭력으로 진압했다. 그 결과 400여 명 이상의 시민과 경찰이 부상으로  피를 흘리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전쟁이나 전투 수준이지 민주국가의 시위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명박 정부는 대미 쇠고기 협상 문제에 관한 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할 의사가 없으며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 버렸다. 이것은 마치 박정희나 전두환 독재정권이 당시 국민이 요구하던 민주화를 실시할 의사는 물론 능력도 없었던 상황과 흡사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폭력 진압과 시위자 엄단 경고밖에는 없었다. 마침 29일 오후 3시 김경한 법무장관 등이 나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는 여지없이 독재정권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촛불집회를 막무가내로 폭력시위라고 단정하고 있으며 시위가담자는 물론 시위를 조장하거나 선동한 자까지 끝까지 추적, 사법처리하겠다고 말한다.

 

6월의 끝, '사산하는 여름'을 다시 만들려 하는가

 

소설가 임철우는 1980년 광주의 시간을 '사산(死産)하는 여름'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소설에서는 괴기스럽게도 '성교하다가 유착되어 버린 남녀가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유언비어로 당시의 상황을 상징화한다. 임철우가 아니더라도 지난 80년대의 역사를 '미친 현대사'라고 파악하는 작가나 시인은 한 둘이 아니다.

 

다행히도 촛불 시위로 인해 아직 죽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뉴스는 섬뜩하게도 물대포를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한 시민, 전경의 군화발에 짓밟힌 여대생, 머리뼈가 깨진 변호사, 두개골이 함몰되었다는 전경 등이 있다고 전한다. 건강을 위해 쇠고기 안 먹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생명의 위기에 처해 있으니 이보다 심한 비극적 아이러니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돌과 쇠뭉치, 소화기 등을 던지는 살인미수 행위를 했고 심지어 부상당한 시민들을 응급 처치하던 의료진마저 연행해 가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비무장의 여성을 4~5명의 경찰이 발로 밟고 곤봉으로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광우병국민대책회의 29일 기자회견 내용)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7월 첫 주간을 '국민승리주간'으로 선포했다.  7월 2일에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결행되고, 7월 5일에는 100만 시민 촛불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강경진압이 계속된다면 부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땀 흘려 민주화를 이루고 국민소득 2만 불을 달성한 나라에서 시위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오늘의 불행이 노골적으로 예고된 것은 지난 24일이었던 것 같다. 그 날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석상에서 "촛불시위 과정에서 경찰도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인명사고가 없었던 것은 큰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경찰에 주문했다.

 

이틀 후인 26일 어청수 경찰청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80년대식 강경 진압을 한 번 써볼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며칠 만에 결과는 어김없이 '80년대 식 강경진압'으로 나타났고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 역시 격렬해졌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격렬해져서 강경 진압을 한 게 아니라 경찰이 먼저 강경 진압을 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격렬해진 것이다.

 

이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임원 두 명이 구속되었고 박원석, 한용진 공동상황실장을 포함 8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29일부터 30일까지 연행된 시민도 100명이 넘는다. 또한 30일 새벽에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진보연대 황순원 민권인권국장을 연행했다.  게다가 경찰은 앞으로의 시위는 더 무자비하게 진압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로 경고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자청해서 반정부 세력을 키우는 짓이다. 우리는 숱한 강압 수사와 인권 유린, 그리고 수많은 수배자와 운동권이 양산되었던 80년대로 결코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권은 앞서 말한 '미친 현대사'를 재현하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벌써 두 달, 집회 횟수만도 50번이 넘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연인원은 어림잡아도 몇 백만이 넘는다. 그 동안 두 차례나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있었고 청와대 수석진 개편이 이루어졌으며 내각진의 개편이 예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촛불의 열기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단적으로 말해 국민은 최근의 쇠고기 추가협상이란 것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뜻 아닐까?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는 일부 언론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계속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앞에 놓인 세 갈래 길

 

한국의 2008년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 해의 반절인 6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오늘의 촛불정국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는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역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통령이 어떤 행로를 선택했는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은 다음 3가지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4·19와 이승만의 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 이후 촉발된 국민의 분노를 전혀 수용하지 않다가 임기 중 퇴진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이후 그는 하와이에 망명하여 생전 고국 땅을 밟지 못하다가 죽고 나서야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일정한 공통점이 있음을 알고 있다. 두 사람 다 통일 문제와 안보 문제를 미국에 일임하는 형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근본주의적 성향의 기독교 장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승만처럼 임기 중 퇴진해야만 하는 시간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5·18과 전두환의 길] 우리가 기억하고 있듯이 5공의 전두환은 계엄령을 내려 시위를 진압했다. 그는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으며 임기 내내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전두환의 재임 기간 동안 수많은 수배자와 시국사범이 양산되었고 그것은 분노와 갈등으로 우리 사회를 한 없이 황폐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의 정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깊은 후유증을 우리 역사에 남겨 놓았다.

 

지금 전두환은 거의 모든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해 있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두환처럼 계엄령을 내리고 공포정치를 실시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또한 그가 모든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다. 다만 최근 나타나는 여러 징후들은 5공의 초기 행태를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불길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 당분간 공안 정국이 조성될 것이라는 예감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 선택은 이 대통령은 물론 국민 전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말 그대로 공멸의 길이 아닐까 한다.

 

[6·10과 노태우의 길] 21년 전 6·10 항쟁은 전두환 정권을 위기로 내몰았다. 당시 노태우는 집권당인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어 있었다. 전두환은 4·13호헌 조치로 5공 헌법을 방어하려 했지만 국민들은 지금의 촛불처럼 꺾이지 않는 열기로 정치제도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6·29선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전두환의 계략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떻든 6·29선언의 주인공은 노태우였다.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고 언론기본법을 폐지하는 등 8개 항에 이르는 혁신 조치로 국민의 요구를 거의 받아들였다. 이로써 5공의 위기는 수습되었으며 이후 그는 민선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은 바로 6·29선언과 같은 세 번째의 길이 되었으면 한다. 이것은 세 번째의 길이자 마지막 길이기도 하다. 이것은 물론 미국과의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필경 이 대통령을 노태우만도 못한 사람으로 대우하고야 말 것이다.

 

재협상을 외면한 채 촛불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한 후 다음 날 장관을 시켜 대국민 경고 담화나 발표하는 방식으로는 사태 진전을 이룰 수 없다. 미국이 북한과의 화해를 이루고 있고 북한은 북한대로 핵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의 변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길을 찾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에게 홀대를 받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민족화해의 재량권을 얻었으며, 노무현 대통령 역시 캠프 데이비드 같은 데에는 가지 않았지만 북미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약속을 부시로부터 얻어내지 않았던가?

 

캠프 데이비드에 가서 부시와 함께 골프 카를 타고 엄지를 추켜들며 우의를 과시한 이 대통령, 뿐만 아니라 그들의 쇠고기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던 이 대통령의 오늘은 어떠한가? 그는 국민으로부터도 외면 받고 부시에게서도 방한 약속마저 부도 맞지 않았는가?

 

이런 기회에 전격적으로 재협상을 선언하고 그 배경으로 촛불민심을 내세우는 전략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채 강경 진압의 궁리나 하고 있다면 더 이상 국민은 이명박 정권을 이성 있는 실체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국민은 이성을 상실한 정권에게 미래를 맡기려 들지도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장편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6`29선언, #전두환,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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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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