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여대생>의 신민아

<무림여대생>의 신민아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곽재용 감독 영화의 특징. 우선 여주인공을 정말 예쁘게 찍는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옥소리, <가을여행>의 이미연, <엽기적인 그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전지현, <클래식>의 손예진 등은 곽재용의 영화에서 청순함과 발랄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신비감을 줬다. 작품을 통해 배우들이 스타로 우뚝 선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또 하나, 곽재용 영화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 너무 단순하다. 그런데 곽재용은 신파로 끝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를 영화 속 연인들의 감성을 중심으로 펼치면서 오히려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보여줬다.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의 성공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로 인해 곽재용은 한국 멜로영화를 한단계 발전시킨 감독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4년 전지현과 장혁을 캐스팅하고 아시아 영화계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의 실패는 곽재용의 능력을 처음부터 다시 의심하게 만들었다. 곽재용이 이 영화에서 한 일은 '전지현 띄우기'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신이 드러나지 않은 연출력 때문에 관객들은 <클래식>의 감독이 정말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의심하게 됐다. 한국 멜로를 진일보시켰다는 감독은 이 영화 이후 '한국 영화를 아시아의 망신거리로 만들었다'는 장본인으로 몰렸다.

그런 곽재용이 절치부심하고 만든 영화가 이번에 소개되는 <무림여대생>이다. 완성한 지 2년 만에 드디어 개봉되는 것이다. <여친소> 이후 2년 만에 완성하고 2년 후에 개봉하는, 도합 4년 만에 관객에게 선보이는 곽재용의 신작 <무림여대생>은 어떤 모습일까?

새롭지 않은 무술 장면, 계속되는 '자기복제'

 소휘(신민아)는 짝사랑하는 준모(유건)를 만나면서 무술을 그만두려고 한다

소휘(신민아)는 짝사랑하는 준모(유건)를 만나면서 무술을 그만두려고 한다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신민아다. 공식대로라면 이 영화는 신민아의 매력이 물씬 배어나게 찍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100% 들어맞았다.

이번에도 곽재용은 여주인공의 매력을 집중 부각시킨다. 여기에 새로운 점은 주인공 소휘가 무술을 한다는 것. 이미 <엽기적인 그녀>나 <여친소>에서 터프한 여주인공(그러다 나중엔 청순가련으로 빠지는)을 선보이긴 했지만 이번엔 제목부터 <무림여대생>이라고 짓고 무술은 물론 아무렇지도 않게 차력을 소화하고 사발로 소주를 마셔도, 망치에 머리를 맞아도 끄덕없는 괴력의 여대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소휘, 그리고 소휘를 연기하는 신민아의 매력을 한껏 살리기 위해 카메라는 소휘의 다양한 표정을 가깝게 잡으며 여주인공의 다양한 이미지를 부각 시키는 데 집중한다.  

소휘는 친구들 앞에서 괴력을 발휘하지만 차츰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 게다가 아이스하키부에 있는 준모(유건)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소휘는 무술인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기로 한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무술을 배운 일영(온주완)이 등장해 운동을 다시 하자고 조르지만 소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림의 적인 흑범이 등장하고 흑범에게 소휘의 아버지가 당하자 소휘는 다시 무술을 시작하고 드디어 무림의 명예를 걸고 흑범과 대결을 펼친다.

<매트릭스 리로디드>, <스파이더맨3>의 무술감독을 맡은 디온 람이 영화에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공은 이미 4년 전에 나온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큰 차이가 없다. 무림 절대고수들의 이야기, 그들이 현세에서 느끼는 어려움 등은 이미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다 나왔다. 그것을 굳이 다시 불러들일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특히 소휘가 무술을 그만둔다고 하자 '젊은 애들이 무술을 이어받지 않으려한다'고 걱정하며 대책을 논의하는 무림 1세대들의 회의 장면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첫 장면과 무척 흡사해 '아류작'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렇지만 곽재용 감독의 중심은 사실 무공보다는 남녀간의 사랑과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 유머에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무술 대결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포기하면서 곽재용이 그리고자 한 것은 뿌리칠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을 지키고 싶은 소휘의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무림여대생>의 유머와 감성은 '자기복제' 수준에 그쳤다.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소휘와 일영이 겉옷을 같이 쓰고 비속을 달리는 모습은 <클래식>과 흡사하다. 준모가 짝사랑하는 여순경(임예진)의 모습은 <여친소>의 전지현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심지어 <여친소>에서 카메오 출연한 차태현이 다시 나오는 모습조차 자기복제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었고 힙합 음악의 마구잡이 등장 또한 집중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4년 전과 업그레이드된 점이 보이지 않은 채 곽재용 감독은 자기 스타일에 안주하며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곽재용의 한계, 제대로 드러났다

 곽재용의 <무림여대생>은 자기복제만 반복됐다

곽재용의 <무림여대생>은 자기복제만 반복됐다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무림여대생>이 실망스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곽재용은 왜 <여친소>가 관객들에게 외면받았는지를 깨달았어야 했다. 사실상 곽재용의 한계는 <여친소>에서부터 드러났다. 지나친 여주인공 띄우기와 유치찬란하기까지 한 대사의 향연으로 점철된 모습은 곽재용에게 분명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여친소>의 실패는 곽재용의 발전을 원하는 관객들의 마음이 반영됐던 것이다.

그러나 곽재용은 오히려 <여친소>의 단점을 감싸안으며 <무림여대생>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는 발전없이 '자기복제'만 반복한 곽재용의 또 하나의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최종 판결은 관객이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작품성에 있어서는 곽재용의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실패작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고지순한 청춘남녀의 로망. 그것은 곽재용이 지금까지 추구했던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다룰 것이 확실한 분야다. 하지만 세월이 바뀌고 젊은 세대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어가는 지금, <무림여대생>에서의 곽재용은 여전히 '과거지향'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4년 후, 한계에 완전히 다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온 곽재용. 부디 이번 영화로 전환점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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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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