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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사람연대와 사회당이 함께 주최한 '직접 피켓 만들기' 행사. 시민들이 쓴 재미있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 시민산성에 쌓인 시민들의 목소리 대학생사람연대와 사회당이 함께 주최한 '직접 피켓 만들기' 행사. 시민들이 쓴 재미있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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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은 시민에게, 시민은 깃발에게

벌써 두 달 가까이, 촛불은 물대포에도 장맛비에도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 작은 촛불들이 이렇게 '촛불혁명'이 될 줄은,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도 예상치 못했다. 사실 그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며 이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까 묻곤 했다. 잔뼈 굵은 활동가들에게도 촛불광장은 처음 접하는 공간이었고 학교였다.

시민사회운동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처음엔 경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른 바 '깃발'들이 나타나면 시민들의 '순수성'이 왜곡되고 '조중동'에게 빌미를 준다는 것이었다. 나도 촛불집회 초기에 "깃발 내려!"를 외치는 시민들을 보았다. 하지만 지난 6월 10일, 시민들은 깃발을 향해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하고 외쳤다. 두 달 동안 깃발은 시민에게 다가갔고 시민들은 깃발을 이해했다.

이제 깃발은 시민들이 집회에서 친구와 만나는 약속장소로도 쓰인다. 엊그제 내 옆의 한 여성은 전화기를 들고 말했다. "나 OOO깃발과 △△깃발 사이에 있어. 이리로 와."

시민사회 활동가들, 그들이 이 촛불혁명의 주인은 아닐지라도 촛불 하나 더 켜고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애써온 것은 사실이다. 촛불의 진로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이들 활동가들의 생각은 또 어떨까. 

# 김희선(25) '대학생 사람연대' 대표
"직접 만든 피켓으로 '시민산성' 만들어요!"

대학생사람연대 김희선 대표. 대학생사람연대는 시민이 직접 자신의 피켓을 만드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 시민의 목소리를 피켓으로! 대학생사람연대 김희선 대표. 대학생사람연대는 시민이 직접 자신의 피켓을 만드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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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현관 앞 철제 펜스에는 시민들이 직접 쓴 종이 피켓이 가득 붙어있다. 이를 '명박산성'에 맞선 '시민산성'이라고 부른다. 시민들이 직접 쓴 구호들은 참 다양하고, 재미있고, 통쾌하다.

시민들에게 종이피켓과 펜을 나눠주고 직접 쓰게 하는 이 행사는 '대학생 사람연대'가 시작했다. 호응이 폭발적이었고 지금까지 6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토요일에도 피켓 쓰기를 홍보하느라 바쁜 김희선(25)씨를 만났다.

- 직접 피켓 만들기 행사를 기획한 취지는?
"처음에 촛불집회에 나와 수많은 선전물을 접했는데, 시민들이 하고픈 말은 그 선전물의 요구들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았다. 그 말들을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한 청소년이 쓴 "정부도 리콜이 되나요" 한 40대 남성이 쓴 "조중동을 보느니 야동을 보겠다" 등 기억나는 구호도 많다. 초기에는 광우병 소 먹기 싫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고시 강행 후에는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고, 공공부문 민영화와 대운하 등으로 주제도 다양해졌다. 6월 초부터는 조중동에 대한 비판과 대통령 퇴진의 구호도 점점 많아졌다."

- 일각에선 정권 퇴진을 주장하기도 한다. 촛불집회의 방향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명박 퇴진 구호가 등장했을 때 좀 조심스러웠다. 다양한 의제가 한 사람의 퇴진이냐 아니냐의 문제로만 단순화될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 말할 수 있는 창구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피켓 직접 만들기 행사도 그런 취지이다."

- 촛불집회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요즘 대학생들은 촛불집회 안 나가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고도 한다. 이런 문화가 생길 줄 누가 알았을까? 형식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는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거리에서 직접 표현해도 되는구나, 그렇게 하면 이루어질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시민들에게 생긴 것 같다."

- 촛불운동의 문제점이라면?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우리 내부의 폭력에 대해서는 잘 얘기되지 못한 것 같다. 가령 청와대로 가기 위해 몸싸움을 하다가 '여성은 뒤로 물러나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높은 구두 신거나 치마 입은 사람 빠지라고 한다. 물론 청와대로 너무 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유모차 탄 사람, 하이힐 신은 사람, 예비군 할 것 없이 모두 마음은 같다. 이런 문제들은 토론이 필요한 것 같다."

# 김상철(가명·29) '다함께' 활동가
"대중은 보수화되지 않았다, 정권 퇴진운동으로"

다함께 회원들이 시청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집회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맞불' 다함께 회원들이 시청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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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자주 나온 사람이라면 '이명박 OUT'이라는 종이 피켓 한 장 정도는 받아 보았을 것이다. 바로 '다함께'의 피켓이다. '다함께'는 촛불집회 초반부터 가장 열심히 결합한 단체 중 하나이며, 그 열정이 과한(?) 탓인지 일부 시민으로부터 '왜 당신들이 우리를 지도하려 하느냐'는 반발을 사기도 한 단체다. 이날도 정치신문을 팔고 있는 '다함께' 활동가를 만났다. 

- '다함께'는 '이명박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데.
"50여일째 촛불운동이 계속되었다. 쇠고기만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다양한 의제가 결합되어 있다.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만이 퇴진 요구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민들은 이명박에게 충분한 시간을 줬다. 국민 의사를 더 들을 생각이 없는 정부라면 퇴진하는 것이 맞다."

- 정권 퇴진 후 대안은 있나?
"이명박 정부가 퇴진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저항에 부딪쳐 물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후임정부가 되든 촛불의 압력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안을 운동진영이 함께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 촛불의 방향을 어떻게 보는가?
"일각에서 제도정치로 수렴하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촛불운동을 약화시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이 나오자마자 조중동과 정부는 촛불이 곧 꺼질 것처럼 공격했다. 거리의 동력이 없이 제도정치로만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제도정치에 기대할 것이 있는가? 한나라당의 자성을 기대할 것인가, 민주당의 역할을 기대할 것인가? 아직 아무것도 따낸 것이 없는데 제도정치로 수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진보세력이 촛불운동에 잘 적응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대선 이후 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은 대중이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며 정세를 비관했다. 하지만 '다함께'는 단지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 대중은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도 우파인 사르코지 정부가 집권한 후 저항이 확산된 것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언제나 저항의 불씨를 안고 있다.

대중이 우경화했다고 생각한 진보운동가들은 지금 대중의 저항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 운동의 잠재력을 믿지 못했기에 운동의 전진에 불안함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주도성을 발휘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 '다함께'가 시민들을 지도하려 한다는 반발도 있었다. '확성기녀' 사건도 있고.
"좌파가 자발적 시민들의 운동에 참여하면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일부 시민이 계신 것 같다. 그러나 시민들도 촛불집회에 오래 참여하면서 우리 같은 단체가 이 운동에 기여하고 있음을 점점 더 이해하고 있다.

인터넷에 논란이 된 얘기는 경찰 또는 우파적 네티즌이 운동을 약화시키려 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피상적인 문제에 현혹된 분들이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다르다. 회원도 많이 가입했고 후원금도 많이 들어온다. 그것으로 꾸준히 호외를 내고 있다."

# 송주연(27) '나눔문화' 연구원
"촛불이 우리의 희망... 역사적 순간에 여기 있어 감사한다"

나눔문화 송주연 연구원(사진 오른쪽). 나눔문화가 만들어 나눠주는 피켓의 구호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 소에게는 풀을 우리에겐 꿈을 나눔문화 송주연 연구원(사진 오른쪽). 나눔문화가 만들어 나눠주는 피켓의 구호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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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문화'는 얼마 전까지 박노해 시인이 활동하는 단체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촛불 정국에서 '촛불소녀' 캐릭터를 보급하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이들이 운영하는 촛불소녀 인터넷 카페에는 회원이 3천명 이상 가입했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와 같은 '나눔문화'의 구호들은 대중적이고 울림이 있다. '나눔문화' 역시 지난 두 달의 촛불집회에 거의 개근했다.

- 참 열심히 활동하는 것 같다. 
"5월 2일부터 매일 참여하고 있다. 힘들다고 생각하다가도 시민들을 보면 우리보다 더 대단한 것 같다. 사실 시민단체나 정당 활동가들, 그리고 기자들은 지쳤을지 모르지만 시민들은 쌩쌩한 듯하다."

- 이명박 퇴진을 전면에 내걸자는 주장도 많은데.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 퇴진 카드를 섣불리 내서 사람들을 흩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촛불은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 퇴진 후 대안이 당장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앞으로도 과제는 산적해있다. '나눔문화'는 '5년 내내 촛불이다'라고 얘기한다."

- '촛불소녀'를 생각하게 된 배경은?
"5월 2일과 3일에 청소년들이 많이 집회에 나왔다. 그 중 70% 이상이 여학생이었다. 광우병 위험을 계기로 자신의 미래가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마치 예언자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청소년들의 상징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게 촛불소녀다. 촛불소녀 카페를 열었고 지금 3000명이 가입했다. 그 중에서 계속 집회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들 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 청소년들이 청와대에도 가서 게릴라 1인 시위를 했다. 지금 촛불집회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감을 얻고 있다. 우리만 해도 취업 등 온갖 불안에 눌려있지 않았나. 지금과 같은 집단경험을 해본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 희망이 될 것 같다."

촛불집회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
▲ 촛불소녀가 희망이다 촛불집회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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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촛불운동의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에게 광우병 이전에 뿌리 깊은 고통과 분노, 억눌림이 있는 듯하다. 이번 쇠고기 파동은 그 분노를 표출하는 계기인 것 같다. 또 촛불집회 속에서 사람들은 나 아닌 남과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는다. 일상은 팍팍하지만 여기에선 모두가 해방감을 느낀다. 처음 본 사람들도 안아준다. 하루 집회를 마치면 '내일 봐요'하고 인사한다. 이 공동체성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인 듯하다." 

- 개인적으로 촛불운동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나눔문화'에서는 시민들을 인터뷰해서 그분들이 많이 하는 말씀으로 피켓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호응이 좋았다. 시민들이 제안한 구호가 집회 문화를 밝게 바꾸었다. 가령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소에게는 풀을 우리에겐 꿈을' 이런 구호들 참 좋지 않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우리가 먼저 희생해서 사람들을 이끈다'는 생각에 젖기 쉬운데, 시민들을 보며 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뿌듯하다.

하루일정을 마치면 새벽 3시~4시까지 평가를 한다. 그리고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 잠시 눈만 붙이고 또 10시쯤 나온다.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다시 오후 4시쯤 시청에 온다. 정말 살인적인 일정이다. 하지만 가슴이 벅차서 힘든 것도 잊는다. 이 역사적 순간에 함께 하고 있어 감사한다."  

촛불바다를 준비해온 사람들

오늘의 촛불바다가 있기까지 이를 준비해온 사람들, 먼저 싸우고 앞서 탄압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시민사회운동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분명 촛불에 불을 붙이는 불씨 역할을 했다. 물론 그들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달리 보상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촛불의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시민들과 나누는 것 외에는.

이제 '시민사회운동은 외롭고 고된 것'이란 생각은 깨져야 하지 않을까. 바로 촛불 시민들 스스로의 참여를 통해서. 촛불을 평소에도, 언제라도 켜 둘 수 있기 위해 시민사회운동은 '일상적인 시민의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촛불의 역능과 민주주의를 겸허하게 배우는 과정이 앞서야 할 것이다.

오늘도 바삐 시청광장을 뛰어 다니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의식을 갖고 사회에 참여하는 몇몇 사람들의 작은 단체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오준호 기자는 사회당 서울시위원장입니다. http://blog.naver.com/interojh



태그:#촛불소녀, #촛불집회, #사회당,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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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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