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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부터 언론계에는 방송사 혹은 방송 유관기관 사장 선임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 중 하나가 "이명박 후보시절 방송상임특보였던 구본홍 전 MBC 보도본부장이 YTN 차기 사장에 내정됐다"는 것이었다. 

 

YTN 노동조합과 세 개의 직능단체(기자협회·기술인협회·카메라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그 누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회사를 탐한단 말인가"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 이미 지난 4월 14일.

 

표완수 전 사장이 경향신문 사장 공모를 위해 회사를 떠난 5월 초, YTN 이사회가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를 거쳐 새 사장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는데도 '구본홍 내정설'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구체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구본홍 괴담은 현실이 되었다

 

불길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YTN 노동조합은 5월 9일 "구본홍씨가 사추위에 서류를 접수하는 순간, 사전내정설은 현실이 되고 YTN 사추위는 통과의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성명서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성명의 수위를 높였다.

 

"정권교체에 따른 논공행상을 주장하며 한 자리 차지하려는 인사, 시대적 소명을 외면하고 패거리에 의지하려는 부적격 인사는 YTN에 발붙일 수 없다. 그래도 고집한다면 우리는 언론노조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도 했다.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도 5월 13일 나란히 성명을 내고 "언론사 사장직이 정치적 공헌도에 따른 논공행상이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 후보 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는 YTN 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지원사격했다.

 

그러나 모든 우려는 현실이 됐다. YTN 사장추천위원회는 지난 5월 28일 서류심사를 통과한 4명의 후보 중 구씨를 단일 사장 후보로 낙점해 이사회에 단수 추천했다. 다음달 14일 주주총회 때 이사회 안건이 의결되면 구씨는 YTN 새 사장이 된다. 

 

YTN 노조는 5월 9일 성명의 '경고'대로 즉각 비대위로 체계를 전환, 투쟁을 시작했다. 방송독립 투쟁 경험도 전무한 사람들이다. 집회를 취재할 줄만 알았지, 직접 집회를 열고 참석할 줄을 몰랐던 사람들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낮에는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거나 카메라 앞에서 여러 뉴스를 전달하고 저녁에는 사옥 앞에 모여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YTN에서 불고 있는 본격적인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의 중심에 현덕수 YTN 노동조합 위원장이 있다.

 

낮엔 카메라·수첩 들고 밤엔 촛불 들고

 

현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20일 오후 5시 30분 YTN 남대문 사옥 15층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15층 엘리베이터 옆에는 YTN 각 기수별 모임이 붙인 대자보가 빼곡했다.

 

현 위원장의 조끼에는 낙하산 그림에 X표를 한 배지가 붙어있었고 위원장석 옆에는 다음 아고라 '작은별'이라는 네티즌이 격려 차원에서 보낸 대형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네티즌이 대자보에 써준 응원문구 중에는 '윤택남(YTN) 파이팅!'이라는 것도 있었다. 더이상 YTN은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만 알려진 방송이 아니었다.

 

현덕수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벌써부터 'YTN은 이명박 방송이 됐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면서 "콘텐츠가 얼마나 풍부할지 인격이 얼마나 훌륭할지는 몰라도 대선 때 특정 후보의 방송특보를 맡았던 사람이 YTN 사장으로 오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은 "구본홍씨와 YTN은 서로 건널 수 없는 강 양쪽에 있다"면서 사장 저지 투쟁에 집중할 것임을 강조했다.

 

- 기수별 입장표명이 더 늘어난 것 같은데 현재 자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기수가 어느 정도 되나?

"1기에서 6기까지다. 모두 '낙하산 구본홍 사장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노동조합에서 주문하지 않은 자발적인 흐름이다. 오늘(20일)은 5·6기수 외에도 YTN 차장단 74명이 '구본홍 사장 내정자가 물러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 YTN은 방송투쟁을 벌인 경험이 없다. 위원장이 느끼는 '분위기'는 어떤가?

"성명에 동참한 사람이 모두 200명이 넘는다. 노조 조합원이 400여명이다. 현재 6기(전체 12기)까지 냈는데 그 아래 기수들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노조는 이후 투쟁을 어떻게 벌일까만 고민하고 있었는데 각 기수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강력한 힘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노조와 비대위(노조 집행부와 비대위원 8명으로 구성)를 믿고 그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벌써부터 '돌발영상 약해졌다'는 얘기가 돈다, 무섭다"

 

-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사장추천위원회 면접관이기도 했다. 당시 면접관의 입장으로 구본홍씨를 어떻게 평가했나?

"그동안 노동조합이 우려했던 부분만 물어봤다. 대통령 특보를 했던 사람으로서 YTN의 위상과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거였다. 그랬더니 구씨가 '보도 간섭하려고 들어오는 게 아니다, 경영에 힘쓰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경력만 30년이란 분이, 언론사 사장 한 명이 그 언론사 위상에 끼치는 부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방송 메커니즘을 잘 아는 분이 '나는 경영에만 신경쓰겠다'는 말을 하니 얼마나 위선적인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 사장으로 오는 순간 이 문제가 현실이 될 것이다.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명박 방송'이라는 둥 '돌발영상 약해졌다'는 둥 이런 얘기가 돌고 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무서운 것이다."

 

- '24시간 뉴스전문채널'의 특성이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근거로도 작용하는 것인가?

"당연하다. 국민들이 알다시피 YTN은 24시간 동안 보도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각종 사안의 시시비비를 특정 사안에 치우치지 않게 잘 전달하고 분석하는 기관이다.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언론사란 말이다.

 

그런데 구본홍씨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방송상임특보를 했다.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한 방송전략을 구상하고 전달했던 사람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불편부당함과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언론사 사장으로 들어왔을 때, 스스로의 가치관, 대선 당시의 구체적 행위 등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가. 절대 없다. YTN의 위상과 정체성에 위배된다.

 

또 한마디 덧붙이겠다. 대선당시 언론특보 방송특보 했던 사람들, 이 분들은 정치해야 한다. 국회의원 하든지 아니면 정책기관 들어간다든지 해야 한다. 이건 지극히 상식 아닌가. 그런데 다시 언론사로 오니 자꾸 '언론장악' '언론통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 새 정부 들어 한국방송광고공사·아리랑국제TV 등 이른바 '낙하산 사장'이 안착한 곳도 있다.

"이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 뭔가. 인사 문제 아닌가. 언론사 낙하산 사장을 내리는 문제도 그렇다. 소통의 문제다. YTN 내부 200명 넘는 직원들이 반대하는데 결국 온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비롯해 기수별로 성명까지 내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사장으로 와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집이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30개월 이상 안 된다, 위험물질 안 된다, 검역주권 내줘선 안 된다. 그런데 그런 것 다 무시했다가 한 자리수 지지율 대통령 됐다. 구본홍씨도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명을 재촉하는 것밖에 안된다고 본다. 또 방송사와 방송 유관기관은 사장 선임으로 인한 위상·정체성 이런 부분에서 크게 다르다."

 

"구본홍씨와 YTN, 건널 수 없는 강 사이에 있다"

 

- YTN 경영기획실에서는 적법한 절차였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우리도 절차 자체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는다. 그런데 YTN 지분을 공기업이 과반 점유하고 있는 것은 바로 기업의 이윤 추구보다 공공재 성격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주요 인사 역시 공공성 실현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있어야 하는 방송사다. 정권의 입김이 작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량한 관리자가 들어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는 꼴이다."

 

- 어쨌든 사추위 절차를 거쳐서 결정됐는데, 이렇다면 사추위 구성이나 형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 않나?

"현재 사추위는 이사 5명과 사원대표 1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사는 여러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외부 중립적 이사로 출범시켜야 한다. 본격적으로 사추위에 대한 논의가 된다면 보도와 경영의 분리, 편집권과 경영의 분리를 실현해 낼 수 있는 사장이 올 수 있는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

 

- 그렇다면 노조나 비대위는 어떤 사람이 YTN 새 사장으로 적합하고 보나?

"이미 노동조합과 직능단체들이 밝힌 바 있다. 미디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 경영 기반 마련에 대한 복안과 실행력을 갖춘 자, 출신과 경력을 배격하고 능력에 따른 인력 운영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춘 자, 정치적 중립과 공정 방송 원칙을 고수하면서 사회 공기로서 YTN의 위상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자 등이 우리가 생각하는 요건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이 정부가 너무 무모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알다시피 YTN에도 기자들이 가장 많다. 기자들은 보수적인 집단들이다. 그런데도 조합원들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너무 무모하게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아무리 풍부하고 인격이 아무리 훌륭해도 필요없다. 우리는 구본홍씨의 정치적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우리와 구씨는 건널 수 없는 강 양 쪽에 서 있다고 본다."

 

 

"기자들이 반성하고 있다, 현장으로 가자고"

 

- '다음 아고라' 중심의 네티즌들도 결합하고 있는 양상인데,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을 하면서 내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올 법 하다.

"처음엔 6명의 네티즌들이 YTN 앞에서 촛불을 들었는데 요즘은 50명 정도 오신다. 내부 젊은 기자들 사이에도 자성의 목소리 많이 나오고 있다. 꼭 논조 문제가 아니라 24시간 전문 뉴스채널 YTN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적극적으로 보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나 반성이 있다. 현장을 중시하자는 의견들이다. 이번 사태가 YTN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 구조 자체로만 보면 정부에서 YTN을 압박하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는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수시로, 또 다양한 방식의 대응들이 들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공기업 지분을 민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근간은 철저한 시장 논리 아닌가. 그런데 거듭 강조하지만 YTN의 지분구조가 공기업 위주로 구성된 것은 개별 기업의 이윤 추구가 아닌 공공성 기반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 청와대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후 투쟁 일정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가?

"지난 9일부터 청와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0일부터 촛불집회에 집단적으로 참가했고 17일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씩 저녁 집회를 열고 있다. 사태해결때까지 집회는 계속한다. 다음 주에는 언론노조 등과의 연대 투쟁을 확대한다. 23일부터 언론노조 위원장과 다른 방송사 노조위원장 등이 청와대 1인 시위에 나선다."

 

 - 마지막으로 조합원이나 국민에게 한 마디 한다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YTN의 투쟁에 결합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 또 공정방송에 대한 스스로의 결의를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YTN 시청자와 국민들에게 YTN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평가할 수 있는 시금석일 수도 있다.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태그:#현덕수, #YTN, #구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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