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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이 죽었는데 대왕대비마마(정순왕후)는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드라마 <이산> 마지막회를 함께 보던 둘째 아이가 정조임금의 죽음과 어린 순조의 등장을 보면서 물었다. <장보고>와 <주몽> <대조영>까지 재미있게 보았던 아이인지라, <이산> 방영 처음부터 정조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정순왕후의 최후가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다.

"옛날에는 '수렴청정'이란 것이 있었어. 어른들보다 경험이 적은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판단력이 부족하잖아. 그런데 왕이 어리면 어떻게 되겠어? 그래서 왕실의 최고 어른이 왕을 대신해서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거야. 왕에게 의견을 묻지만 형식일 뿐, 자기 맘대로 권력을 좌지우지 했어. 순조가 저렇게 어리잖아. 그러니까 가장 어른인 대왕대비마마가 수렴청정을 하지. 그런데 너라면,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정조가 아끼던 신하들을 그냥 두겠어?"

수렴청정 4년, 그것이 조선왕조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1권> 겉그림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1권> 겉그림
ⓒ 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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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6월. 정조가 갑자기 죽고 순조가 11세라는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왕실 최고 어른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관례대로 수렴청정을 한다.

정순왕후는 1801년에 어지러운 사회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몇 집을 묶어 감시하는 '오가작통법'을 시행, '사교금압(邪敎禁壓)'이라는 명분으로 신유사옥을 일으켜 천주교도들과 정조의 신하들을 숙청한다. 이가환·이승훈·정약종 등이 처형되고 정약용 등은 귀양을 가게 되고 채재공은 관직을 추탈당한다.

이후 정순왕후는 1805년 창덕궁 경복전에서 사망한다. 정조가 죽은 지 5년 후의 일이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은 실질적으로 4년 가량,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오빠 김귀주를 앞세워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사사함으로써 권력을 잡는 듯 했으나, 정조의 즉위로 물거품이 된다. 이후 정순왕후는 순조가 권좌에 앉자마자 '수렴청정'이란 명분을 앞세워 권력을 잡는다. 하지만, 정순왕후가 끌어들인 세력들의 전횡은 조선왕조 몰락의 시작이다.

정순왕후가 죽고 난 뒤 순조나 헌종·철종은 이들 집권층에게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정조의 치덕과 실용 덕분에 상업은 발달했으나, 민중들의 헐벗음과 굶주림은 극에 달한다. 사회는 헤어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홍경래의 난(1811년)'과 같은 민중·농민 봉기가 끝없이 일어난다.

역사에 '가정'은 허용되지 않지만, 정조의 덕치나 실용이 정조 사후 조금이라도 빛을 발했더라면, 또는 정조가 정순왕후에게 죄 값을 물었다면,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순왕후는 후손들에게 이처럼 심판받으리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의 모습이 역사가 되어 후손들에게 평가된다는 것을 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걸까?

'장열실'과 '흥성대원권'... 옥에 티에요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2권>겉그림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2권>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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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1·2>(파란하늘 펴냄)의 저자 이이화는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가져온 피폐와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 등을 각각의 작은 주제들로 7장에서 설명, 역사적 고리를 연결하여 적고 있어서 전체적인 역사 흐름을 알기 쉽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무엇보다 저자 이이화 선생님의 글을 통해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역사인식과 자긍심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왕조 위주가 아닌, 민중의 생활과 역사적 사건 위주로 기술한 것은 돋보이는 장점이랄 수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2004년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22권'이 완간(한길사)되었다는 정보를 접했었다. 우리의 5000년 역사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서술했다는 그 책이 욕심났었다.

사극을 좋아하는 우리아이들에게 드라마 성격상 흥미적인 요소를 가미할 수밖에 없는 사극으로 알게 되는 역사가 아닌, 믿을 만한 저자의 책을 통해 제대로 된 역사를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사주지 못했다.

이런 아쉬움이 있었던지라 22권을 두 권으로 압축한 듯한, 지난 4월 파란하늘에서 펴낸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1·2>가 솔깃했다. 이런 기대로 아이에게 권한 책이건만, 이 책 참 아쉽다. 

"엄마, 장영실이 맞아? 장열실이 맞아? 우린 분명 장영실이라고 배웠는데 장열실이라고 써있네? 이 사람은 장영실도 잘 모르나봐."
"그 유명한 장영실을 모르겠니? 실수한 거지. 어디 좀 보자."

이렇게 말하고 막상 책을 건네받아 넘겨보니 사사로운 실수라고 넘겨버리고 말기에는 너무나 많은 오타들이 보였다. 흥선대원군과 흥성대원군도 번갈아 적고 있다(2권 58~59P) 역사 인물 이름이 많이 틀렸다. 지적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틀린 것을 옳다고 알게 될 그런 부분들도 보인다.

이이화 선생님의 역사책, 기대가 너무 컸나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내용 중-연도 표시가 잘못된 페이지다. 정조는 1800년에 죽었다. 그런 그를 살려놓았다.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내용 중-연도 표시가 잘못된 페이지다. 정조는 1800년에 죽었다. 그런 그를 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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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1752~1800)의 노비추쇄법 폐지(1778년)를 1801년으로(2권 86P),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시작(1800년)을 1880년으로 적는(2권 87P) 등 연도를 잘못 적어놓은 것도 보인다.

이 책은 큰 주제별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역사적 사건을 한눈에 쉽게 볼 수 있도록 '한국사 연표'를 실어 놓았는데, 9부 '식민지 통치와 줄기찬 독립투쟁'편의 한국사 연표에 '1945년 일본 항복, 한국 해방'이라 적고 있다. '대한독립만세요, 대한민국임시정부였지 한국만세, 한국임시정부는 아니잖아?' 연표를 보다 이런 생각도 불쑥 일었다.

혹은 한국과 대한민국은 같은 나라이니 만큼 그게 그거라,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에서 워낙 풍성하게 발견한 오류(오타) 때문인지 '한국 해방'으로 씀이 마땅한지 '대한민국 해방'으로 씀이 마땅한지, 적절한 용어선택을 위한 편집자의 고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은 본문 중 교과서와 연결되는 것을 '조금 더 생각해 보아요'란 별도 쪽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눈에 쏙 들어온다. 좋은 시도다. 그런데 몇 페이지에서 장열실·흥성대원군처럼 잘못 적고 있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아이가 읽던 책을 잠깐 건네받아 훑어보는 것으로도 이 정도인데 본문은 오죽할까?

잠시 훑어보는동안 눈에 우선 띄는 오류 페이지에만 메모지를 붙여봤다.
 잠시 훑어보는동안 눈에 우선 띄는 오류 페이지에만 메모지를 붙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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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반도의 시작부터 1987년 6월의 민주항쟁까지 다루고 있는지라 6·29 선언까지 짧게나마 언급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역사를 사학에만 가두지 않고 아이들에게 제법 폭넓은 이야기를 알려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여전히 아쉽다. 직지심체요절이나 해인사 팔만대장경, 수원화성과 관련된 부분에서 이들이 세계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란 사실 정도는 알려주는 것이 훨씬 좋을 텐데 이렇다할 설명 한 마디 없으니 말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실수도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말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상품으로 치면 불합격제품이다. 역사관련 책에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관련 유물의 이름, 사건 발생 시기는 책의 알맹이 아닌가!

이처럼 오류가 많은 책은 자칫 아이에게 잘못된 역사를 알게 한다. 올바른 역사 교육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인식과 자긍심을 줄 수 있다. 교과서만이 아닌 이와 같은 출판물을 통한 의도하지 않은 실수도 역사를 잘못 쓰는 일이라는 걸…. 워낙 믿었던 저자의 책인지라 아쉬움은 더 크다.

덧붙이는 글 | 저자의 좋은 글이 정성스러운 책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1권-구석기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2권-조선중기부터 근대까지/저자:이이화/푸른하늘 2008년 4월 21일 펴냄/각권값:11,000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2 - 조선시대 중기부터 근대까지

이이화 지음, 파란하늘(2008)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사 1 -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이화 지음, 파란하늘(2008)


태그:#역사, #이야기 한국사, #이이화,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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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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