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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적  석유?

바람이 매섭던 태안의 겨울
▲ 그 해 겨울 태안 바람이 매섭던 태안의 겨울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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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없는 현대문명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 석유로 재배한 음식을 먹고, 석유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석유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인류사에서 석유의 재발견과 화려한 자리 매김은 불과 15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학설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수 억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에너지를 함축했던 이 물질은 분명 인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석유는 ‘자연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고도 했다.

석유! 우리가 쓰는 이 말은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등잔불을 밝히거나 난방용으로 쓰이던 등유를 칭하던 말이었다. 자연에서 바로 채굴된 것이 원유고 이를 온도에 따라 정제하게 되면 휘발유, 경유, 등유, 중유 등으로 정제되고(석유로 통칭) 찌꺼기는 아스팔트가 된다. 그러나 하나도 버림 없이 활용되는 이 신비한 물질은 무한한 것이 아니었고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국가가 이 신비의 자원을 확보하려고 전쟁도 불사한다. ‘대량살상무기 파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었던 미국의 이라크 침략도 결국은 원유 확보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는 것이 보편화된 진실이다.

성난 파도가 생명들의 절규를 전해준다
▲ 생명들의 절규 성난 파도가 생명들의 절규를 전해준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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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자연의 기적’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굴뚝과 차량에서 내뿜는 매연은 대기를 오염시키고 오존층을 파괴한다. 석유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 비닐, 나일론 등은 재활용되지 않는 까닭에 한번 폐기되면 땅속에서 몇 백 년 아니 그 이상을 오염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숨어있어야 한다. 물고기 떼죽음을 일으키는 수질오염의 대부분도 석유 화합물이다. 생태계 자체를 파괴시키는 유조선 원유유출사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많이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파괴 행위보다도 더 큰 재앙을 낳는다. 결국 석유는 현대 인류문명에 찬란한 빛을 비춰주었지만 환경오염이라는 어두운 뒷면도 있다는 것이며, 석유가 가져다주는 생활의 편리와 풍요는 삶의 근원인 환경을 담보한 대가라는 사실이다. 

태안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행렬

태안앞바다에 유출된 원유는 12,547,000리터, 1배럴이 약 159리터니 79,000배럴 쯤 된다. 원유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1배럴에 100달러가량 된다고 하니 대략 80억 원어치의 원유가 유출된 셈이다. 그러나 태안은 값으로 환산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바다에 기대어 살던 모든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원유유출의 책임공방과 안일한 대처 등 대기업과 의 책임회피와 탁상공론으로 그들을 두 번 죽일 때 가느다란 삶의 희망을 준 것은 태안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원봉사 행렬이었다.

의항리 구름포 비경. 군사지역이라 들어갈 수 없었던 이곳은 환경재앙앞에서 철조망을 벗었다
▲ 태안의 절경 의항리 구름포 비경. 군사지역이라 들어갈 수 없었던 이곳은 환경재앙앞에서 철조망을 벗었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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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으로 이어지는 행렬에 신공항하이웨이 직원들이 함께한 것은 겨울바람이 매서웠던 2월 15일. 이미 교회나 봉사단체에서 태안의 실상을 체험했던 직원들이 함께 하자는 제안에 따라 37명의 직원들은 태안의 아픈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해 나섰다. 태안군 의항리 구름포. 군사지역이라서 접근조차 힘들었던 이곳은 기름유출로 인해 임시로 산길을 내었고 피해 현장까지는 철조망을 따라가다가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을 얇은 로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야 했다. 

이미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바위에 묻어있는 원유 흔적만이 이곳에 검은 재앙이 들이 닥쳤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바위 돌을 들쳐 내고 작은 자갈들을 걷어 올리자 이미 깊숙이 숨었던 기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갈과 모래땅을 파면 팔수록 검정색 타르덩어리들과 함께 기름 냄새까지 진동한다. 그렇게 몇 분 작업 후에는 마스크 속으로 들어오는 메케한 기름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바닷바람으로 머릿속을 씻어내야 했다.

겉은 평온을 되찾았지만 파면 팔 수록 메케한 기름냄새와 함께 검은 타르덩어리는 유전을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 유전의 발견? 겉은 평온을 되찾았지만 파면 팔 수록 메케한 기름냄새와 함께 검은 타르덩어리는 유전을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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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기 힘든 큰 돌은 누군가가 보내온 헌 옷가지로 깨끗이 닦아 놓고 기름범벅이 된 자갈과 모래는 마대에 담아 옮겼다. 물이 빠진 간조시간에만 작업이 가능해 구름포에서 다섯 시간 남짓 기름찌꺼기들과 씨름을 했다. 어느 대학에서 왔다는 일행이 근처에 있었다.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와 같이 벼랑 끝 작은 소나무에 의지한 로프를 타고 내려왔을 생각을 하니 마냥 대견해 보인다. 누군가 시켜서도 아니고 어떤 대가를 바라고 온 것도 아닌 순수한 자원봉사의 힘이 태안에서 작은 기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아름다운 행렬에 백만 명이 넘게 동참했다고 한다.  

몇 시간 남짓한 바닷가 기름제거활동은 유출된 원유량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생활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위로한다고 모은 성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다만 성난 파도소리가 대신 전해주는 말 못하는 생명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었고, 편리와 풍요속에 길들여져 지금껏 깨닫지 못했던 환경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다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의 깊은 시름도 조금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잊혀지는 태안 그리고...     

환경운동연합이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보고서를 인용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단일선체유조선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라고 한다. 지금까지 유조선사고의 대부분은 단일선체유조선으로 이중선체는 사고시 기름유출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정유 업체는 추가비용을 핑계로 이중선체의 사용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단일선체를 이중선체 유조선으로 교체할 경우 2005년 기준으로 연간 1천600억원의 추가 수송비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같은 해 4대 정유 업체의 순이익이 3조 3천470억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20분에 1도 안되는 액수라고 한다.

이번 원유유출 사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였지만 책임질 사람이 분명히 있는 인재다. 어느 대기업은 사과문으로 면죄부를 받으려하고 정유사는 보험으로 해결하면 될 일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서서히 태안은 우리의 관심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환경보존에 대한 철저한 의식전환과 방제대처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위험 불감증을 근저부터 치유하지 않는다면, 수익에만 눈이 멀어 이미 선진국에서는 중단한 단일선체 유조선을 고집한다면 제2 제3의 환경재앙은 또 현실이 될 것이다.

거대한 담론들 사이에 잊혀지는 태안. 물론 중요하지만 이번 여름 휴가계획에 태안을 다시한번 생각해봤으면...
▲ 다시 태안이다 거대한 담론들 사이에 잊혀지는 태안. 물론 중요하지만 이번 여름 휴가계획에 태안을 다시한번 생각해봤으면...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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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를 마치고 올라오던 길에 만났던 지역주민들의 어두운 얼굴이 떠오른다. 바다와 갯벌이 삶의 터전 이였을 그 분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오랫동안 희망 없는 바다를 바라볼 것인가. 태안의 상처는 눈앞에 현실이며 그 분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나오기 전까지는 진행중인 아픔이다. 태안으로 향하는 관심과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되겠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여름 태안에 대한 관심이 원유유출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 겨울이야기를 다시 꺼내봅니다. 이 기사는 신공항하이웨이에서 발행하는 하이블레스에도 게재된 기사입니다.



태그:#태안, #석유, #원유유출,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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