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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대통령이나 위정자가 아니고 언제나 힘없는 민초들이었다. 짓밟히고 억압 받는 민초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는 그래서 더욱 고귀하지만, 그 가치를 만들어낼 때까지 걸어온 시간은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걷는 이들이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투쟁이고 억센 손을 하고 있는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고난의 길을 걷게 했을까.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그녀들을 고난의 길을 걷게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그녀들. 그녀들은 '일터의 광우병'이라고 하는 비정규직이었으며, 목숨을 건 투쟁을 1030일째 하고 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 중에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우리는 정규직을 소망한다!"

 

그녀들을 만나러 간 것은 역시 소통 불가인 이명박 정부를 향해 촛불을 한창 들던 지난 14일 오후였다. 이병렬 노동열사의 민주시민장이 끝난 후여서 가슴은 어느 날보다 답답했다. 송경동 시인의 안내로 찾아간 곳은 서울 금천구 가산동(옛 구로구 가리봉3동)에 있는 기륭전자.

 

소문으로만 듣던 기륭전자 투쟁의 현장은 겉으로는 평온했다. 그러나 투쟁 현장에 나부끼는 펼침막과 깃발, 투쟁 구호와 단식 투쟁을 알리는 문구. 경비실 옥상 위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는 노조원들과 옥상 주변에 둘러쳐진 철조망. 교도소 담장 만큼이나 높은 기륭전자 철대문. 굳게 닫힌 대문만으로도 사측과 노조가 현재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이 날로 투쟁 1026일째, 단식투쟁 4일째를 맞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 그녀들의 긴 투쟁 역사를 한두 페이지 글로 설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그녀들을 만나고 난 후 나는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며칠 동안 그 사실을 어찌 전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녀들의 투쟁을 두고 한국여성노동운동사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긴 투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는 수식어는 그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것이야 짧을수록 좋은 게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녀들은 1026일이라는 전무후무한 투쟁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대체 왜 그녀들은 투사가 되었으며 생존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지간한 남성들도 일찌감치 나자빠질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은 기륭전자 200여명의 해고 노동자 중에서 40여명. 그 중에서 10여명이 단식 투쟁에 나섰다(투쟁 1030일을 넘긴 18일 현재 단식투쟁 8일째 계속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죽음으로 비정규직이 사라진다면..."

 

기자가 찾은 날은 이미 30일간에 걸친 단식 투쟁을 한 차례 한 이력이 있는 몸들이라 몹시 힘들어 했다. 말을 걸기조차 미안한 일이었지만 몇 가지 물었다.

 

"1000일을 넘는 투쟁으로 우리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다. 우리의 죽음으로 비정규직이 사라진다면 기꺼이 죽어줄 것입니다."

 

기륭전자노조 연대담당인 유흥희(39)씨가 버썩 마른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며 말했다. 힘든 표정이 역력하지만 그녀의 투쟁 의지 만큼은 단호했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그녀는 기륭전자에서 일한 지 3개월만인 2005년 9월 말에 해고당했다. 회사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를 달았지만 일방적인 해고였다. 노조가 결성된 것은 2005년 7월 5일.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는 파견근로자 250여 명 중에서 200여 명이다. 

 

당시 그녀가 받은 임금은 월 64만 1850원. 잔업과 특근 등으로 법적 노동 시간인 40시간의 배인 80시간을 넘게 일해도 월 1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세상은 흥청망청 돌아가도 그녀들의 삶은 언제나 주름 투성이었다.

 

"회사는 우리를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노조를 만들게 된 것이죠."

 

그녀들이 기륭전자에서 일하게 된 것은 인력회사를 통한 파견근무. 말이 파견근로자이지 실제로는 인력회사를 통한 노동자 거래였으니 노예 시장과 다름없었다. 회사는 생산 라인엔 파견근로자를 둘 수 없음에도 법을 어기면서까지 어린 여성들을 사들여 3개월 혹은 6개월씩 부려 먹고 해고했다. 그렇게 해서 기륭전자는 엄청난 흑자를 이룩했다.

 

 

 

벌금냈으니 이젠 끝났다는 기륭전자, 현재 건물 매각 추진중

 

파견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 불법임이 드러나 회사는 벌금 500만원을 냈다. 회사는 그것으로 죗값을 했다며 당당했다. 그녀들이 받은 고통이나 상처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는 식이다. 그녀들은 참을 수 없었고, 긴 투쟁을 선언했다. 막상 투쟁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오래 지속되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회사 대표도 수차례 바뀌었다. 교섭 대상자가 바뀔 때마다 한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번번이 실망만 컸다. 지난 봄 기륭전자의 최동열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어깨동무 한 채 중국 방문길에 나서기도 했다. 대타라고는 했지만 중소기업 대표로 함께 간 것이다. 노조원들은 '노조와 협상도 하지 않는 그런 자가 어떻게 중소기업의 대표 자격이 있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답답했다. 사측이 문을 닫아 걸고 있으니 문제를 풀 방법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죽을지라도 그냥 죽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조명탑 고공 농성이었다. 그녀들은 5월 1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하이서울페스티발 행사에 쓰이는 16m 높이의 조명탑을 기습 점거했다.

 

앉을 자리도 없는 조명탑에서의 고공 농성은 죽음을 불사한 일이었다. 사안이 중대했는지 방송 카메라가 왔고, 기자들도 몰려들었다. 그녀들은 오세훈 시장 면담을 요구했으나 불발로 그쳤다. 대신 노사정 3자 교섭을 하기로 합의하고 9시간 만에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측과 교섭에 나섰지만 회사는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는지 시간만 끌었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다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5월 26일, 그녀들은 구로역 앞에 있는 CCTV 철탑으로 올라갔다. 35m 높이의 철탑은 새들도 집을 짓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녀들은 물도 먹지 않은 단식을 시작했다. 죽어서 내려가겠노라 선언했다. 철탑 아래에선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동지들이 힘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살아서 좋은 세상 만들어야 하지만 세상은 그녀들의 외침을 무시했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비명도 들렸다. 죽음 따위는 두려워 하지 않기로 했다.

 

단식 또 단식... 이젠 죽음 뿐이다!

 

그 일로 다시 교섭이 시작되었다. 고공 단식 농성 14일 만엔 윤종희 조합원이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몇 차에 걸친 교섭으로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조건을 일부 수용하기로 했다. 이제야 긴 투쟁이 끝나는가 싶어 나름대로 마지막 교섭에 대한 기대도 했다. 그러나 회사는 24명의 부장·차장 중에서 23명이 그녀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고 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우릴 해고할 때도 부장·차장들 의견 듣고 했더냐?"

 

단식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항변이다. 결국 교섭이라는 것이 철탑 고공 단식농성을 풀기위한 계책이었을 뿐이었다. 기륭전자는 현재 회사 건물 매각을 추진 중이다. 아주 떠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막장이다. 노조는 교섭이 결렬된 지난 6월 10일 마지막 투쟁을 선언했다. 이제야말로 모두 죽자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대한민국 890만 비정규직을 대신해 목숨을 내걸었다.

 

그녀들은 교섭이 결렬된 다음 날인 11일부터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을 점거하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기륭전자는 건조물 무단침입이라며 퇴거 요청 공문을 노조로 발송한 상태지만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공권력이나 구사대, 용역 깡패들을 투입할 것에 대한 나름 비장한 대비책도 마련했다. 함께 죽을 용기 있으면 오라는 것이다.

 

함께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가 병원으로 후송된 이아무개(29)씨는 지난 봄 결혼한 새댁이다. 98학번인 그녀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등록금 때문에 몇 차례 휴학을 하기도 했다.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 빚(250만원)을 갚기 위해 지난 2005년 기륭전자에 왔다가 해고되었고 투사가 되었다.

 

그녀들에게 삶의 끝은 기륭전자 정규직이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겠단다. 그녀들이 지닌 소박한 꿈 하나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이던가. 모두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사이, 그녀들은 조금씩 죽음의 길을 향해 걷고 있었다. 

 

 


태그:#기륭전자, #비정규직, #일터의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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