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 여름 첫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 17일 밤 9시, 창원공설운동장 야외주차장에 1000여명의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16일부터 1박2일간 서울에서 노숙투쟁을 벌인 이들이 노숙을 이어가기 위해 모인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경남건설기계지부(지부장 김근주)는 당초 창원 충혼탑 앞에서 17일 밤을 샐 작정이었다. 그런데 창원에는 이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급히 비를 피할, 1000여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지도부는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창원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창원실내체육관 내지 창원컨벤션센터를 노숙 장소로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창원시청 관계자로부터 들은 대답은 '안 된다'였다.

 

창원실내체육관에서는 다음 날 다른 행사가 열리고, 창원컨벤션센터는 은행 등이 들어서 있어 안된다는 것. 이에 건설 노동자들은 곧바로 창원시청으로 버스를 돌렸다. 이흥석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등 지도부도 창원시청으로 달려갔다.

 

이후 건설노조 지부는 창원시로부터 창원공설운동장을 사용해도 좋다는 답을 얻었다. 이에 건설 노동자들은 지붕이 있는 운동장 야외주차장에 메트리스를 깔고 지친 몸을 눕혔다. 이들은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뒤늦게 채우기도 했다.

 

한 건설 노동자는 "실내체육관이며 컨벤션센터 지을 때 건설 노동자들이 했을 것인데, 집 지어 놓고 꼭 필요해서 한 번 쓰자고 했는데 그것도 안된다니…"라며 울분을 토했다.

 

지역 17곳에서 대규모 공사 맡아

 

이들은 진해신항만공사와 남해고속도로 확장공사, 거가대교(부산~거제)공사, 국도25호선 공사, 하동·합천·창원 등지 국도 확포장공사 등을 하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이다. 건설노조 경남건설기계지부에는 17개 지회가 있다. 큰 규모만 세었을 때도 17곳에서 건설공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주로 15톤 덤프트럭을 몰고 도로며 항만, 택지조성 등 토목공사를 맡고 있다. 관급공사도 하지만 민간업체의 공사도 하고 있다.

 

덤프 트럭은 경유를 사용한다. 최근 폭등한 기름값 때문에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것. 화물운수 종사자들은 정부로부터 기름값 보조비를 받는데, 이들은 제외되어 있다.

 

8년째 덤프트럭을 몰고 있다는 한 노동자는 "어민도 면세유를 준다, 화물 노동자들도 주니까 우리도 달라는 게 아니라 워낙 힘드니까 요구하는 것"이라며 "오죽했으면 차를 세워놓고 노는 게 낫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진해신항만공사의 경우 자기 덤프트럭을 몰고 가서 하루 받는 대금은 29만원. 그것도 하루 작업 시간이 10시간이다. 한 노동자는 "휴일도 없다"면서 한 달에 30일 동안 일하는 게 예사라고 했다. 요즘은 하루 29만원을 받아봐야 기름값으로 65~70% 정도 들어간다는 것. 타이어 교체에다 정비, 보험료, 지입료 등을 주고 남는 돈은 하루 3만원선. 한 달 내내 일해 봐야 100만원 벌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10년째 덤프트럭을 운전했다는 한 노동자는 "힘들다"며 "일을 해봐도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머리가 희끗한 그는 "이 나이에 왜 노조에 가입해서 머리띠 두르고 하겠느냐"며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건설 현장 부조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오래 전부터 이야기 해왔는데, 정부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계약서라도 제대로 썼으면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한 노동자는 "계약서라도 제대로 썼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대개 정부·관공서나 민간업체가 공사를 발주하면 시공하는 업체가 원청이 된다. 화물 운수와 마찬가지로 다단계 구조인데,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있고 거기에 또 재하청을 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 탓에 임대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

 

임대계약서와 관련해 노동자들은 많은 말을 쏟아냈다. "우리 도장도 업체에서 관리한다"거나 "실제로 얼마에 계약이 되는지 우리는 모른다", "계약서 내용이라도 한번 보자고 하면 보여주지도 않는다", "따지면 다음부터는 일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노동자는 "원·하청업체에서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른다"면서 "짐작할 뿐이지만, 비자금 조성한다는 말도 있고, 업체에서 발주처 등에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노동자들한테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영수증도 우리가 일한 업체에서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업체로부터 받을 때가 많다"면서 "그것은 세금 탈루뿐만 아니라 비자금 조성 의혹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된다"고 말했다.

 

관급공사가 오히려 단가 낮아

 

건설 노동자들은 일을 하다 다치면 치료에 들어가는 보험료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차량이 넘어지거나 접촉, 또는 과적으로 사고가 종종 난다. 이들은 모두 운전자보험과 차량(자손)보험을 드는데 대개 월 10~12만원선이다. 사람이 다치거나 차량이 파손되더라도 자기가 들어놓은 보험으로 충당한다.

 

한 노동자는 "업체에서는 운전자보험이나 차량보험을 들지 않으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면서 "머리 좋은 건설 대기업들이 이상한 다단계 구조를 만들어 노동자들만 손해를 보도록 해놓았다"고 말했다.

 

8년째 덤프트럭을 운전한 50대는 "건설회사만큼 비리가 많은 곳이 없을 것"이라며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정경유착이 제일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개선된 측면이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금계산서 하나 없는 데가 건설 현장 아니었느냐"고 덧붙였다.

 

김근주 지부장은 "관급공사를 많이 하는데, 정부뿐만 아니라 도·시·군청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면서 "건설 현장에서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는 데도 관청에서는 공사를 발주만 하면 그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급공사가 민자사업보다 더 대금이 낮다"면서 "관청에서는 최저입찰제를 하다 보니 공사금액이 실제 금액보다 엄청나게 낮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노동자들한테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건설노조 경남건설기계지부는 18일 창원 일대에서 거리행진을 벌이며, 왜 덤프 트럭을 멈추었는지를 알릴 예정이다.


태그:#건설기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