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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피었을까요?"

 

집사람의 말은 청운사의 연꽃을 말하고 있었다. 무주의 반딧불 축제의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러니 김제 평야의 너른 들판에 위치하고 있는 청운사의 백련이 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평선 축제가 열리고 있는 김제의 너른 벌판에 피어난 연꽃은 장관을 이룬다. 활짝 피어 있을 연꽃을 생각하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미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고 출발하는 여행도 즐겁지만, 그것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여행이란 낯선 풍광에 취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그런데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고 떠나는 것은 그런 참 맛을 반감시킬 수밖에 없다. 바람 따라 훌쩍 떠나는 희열이 크다.

 

전주를 출발하여 김제로 향했다. 완주군 이서면을 돌아 김제에 돌아서니, 새로운 도로가 뚫려 있었다. 군산으로 이어지는 도로인데, 청하면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예전의 도로와는 달리 잘 닦여져 있어 시원스럽게 다릴 수 있었다. 들녘에는 보리 짚 타는 연기가 그득하였다. 고향을 그리워지게 하였다.

 

청하산 청운사. 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긴 하지만, 산은 아니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산이라고 부르지만, 작은 언덕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김제 평야는 어디를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지평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 아닌가? 그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청운사는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청운사라는 절 이름이 얼마나 고운가? 푸른 구름이니, 얼마나 청아한가? 세진으로 탁해진 마음을 맑고 밝게 만들어주는 이름이다. 무량수전에 모셔진 미륵 부처님의 위치도 독특하다. 정면이 아닌 측면에 모셔져 있어 이채롭다. 거기에다 변주에 적혀 있는 글자가 한자가 아닌 한글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아주 쉽다.

 

절 앞에 펼쳐진 너른 연못에는 연잎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아직 꽃은 피어나지 않았다. 활짝 피어 있을 연꽃을 바라며 달려왔는데, 하얀 꽃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초록의 연잎을 보게 되니 위안이 된다. 거기에다 한 두 송이 피어 있는 수련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실잠자리가 사랑을 하고 있네."

 

앙증맞은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실잠자리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색깔도 선명한 하늘색이 더욱 더 이채롭다. 미물인 잠자리도 사랑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사랑의 마법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가장 빛나는 별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잠자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실잠자리는 연잎 위에서 사랑을 하고 있었고 빨간 잠자리는 하늘 위에서 희롱하며 사랑하고 있었다. 그 색깔이 어찌나 붉은 고추잠자리하고는 종류가 확연히 다르다. 잠자리들의 사랑 행태를 바라보면서 여백의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평야에 위치하고 있는 절은 찾는 이도 없어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비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소란스럽고 꽉 차 있는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라고 하였던가?

 

내 인생에 최고의 날은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날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텅 빈 절 마당에 서서 스스로 길을 묻고 스스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주의 한 가운데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번다한 일상의 피곤함을 한꺼번에 던져버릴 수가 있다.

 

고요가 내려앉아 있는 공간에 서서 기다림의 소중함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초록의 연잎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잠자리들의 모습을 통해 기다리는 시간 그 자체가 바로 행복한 시간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사랑이 있기에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리는 것을 통해 설렘과 함께 기쁨을 만끽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찾지 않는 청운사에서 삶의 행복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니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우주의 주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였던가? 초록의 연잎 향에 취하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김제 청운사에서


태그:#청운사, #별, #여유, #주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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