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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금요일,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는 어김없이 많은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효순이·미선이 6주년 추모식도 함께 열려 그 의의가 더 깊었다. 하지만 이날 서울에서는 촛불 문화제 참여 시민들과 일부 보수단체와의 충돌이 빚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인 불상사를 어떤 언론은 그저 현상을 반전시킬 묘수 정도로 본 것일까?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이를 인용, 미국 쇠고기 문제 수입에 대한 문제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라는 뿌리깊은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왜곡, 게다가 황당한, 케케묵은 색깔론이다. 하지만 '빨강과 파랑, 진보와 보수의 색깔로 나뉜 우리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색깔'의 공포와 파급력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꽤 강하게 남아있나 보다. 그 색깔론으로 인해 '촛불문화제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있다' 라는 일말의 공포를 갖게 된 사람들이 일부 생기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같은 날 열린 대전의 촛불문화제는 이번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의 순수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현장에서 본 대전의 촛불문화제, 그 중에서도 세가지 결정적 장면은 '배후'와 '색깔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던져주었다.

 

[#장면 1] 초심지키는 학생들, '교복에 광우병 위험 스티커 붙이고 다녀요' 

 

 

결정적 장면 하나. 그런 순수성을 확신했던 첫 번째 이유는 초심(初心)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여학생들의 참여로 처음 불을 지폈던 촛불문화재,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첫 촛불문화제의 주체였던 그 여학생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현장에 남아 있었다.

 

학생들이 보기에 정부의 인적 쇄신과 부분 협의를 위시한 처방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다.

 

13일에도 많은 여학생들이 촛불문화제를 찾았다. D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단비(18)는 그런 생각을 갖은 여학생 중 한 명이다.

 

"학교 내에서 미국 소고기 반대 열기는 정말 뜨거워요.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을 해서 오고 싶어도 못 오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저와 제 친구들은 예체능계라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아 촛불 문화제에 왔어요. 저희가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담아 촛불문화제 온 것이에요 "

 

그는 손수 제작한 플래카드를 들고 친구들과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 그는 학교 내 열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교복에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스티커 붙이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요. 게시판에서도 소고기 위험 포스터를 붙여놓고 있고요. 일부 선생님들이 지적을 하긴 하지만 상당수 선생님들은 저희들 생각을 이해를 해 주시는 편이에요."

 

촛불문화제에 관심 많은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촛불문화제 참여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는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당당히 참여한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위험하다며 촛불문화제에는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어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 같아요. 그런 말들에 대한 반항 때문인지, 더욱 용기를 내서 참여를 하는 것이고요. 꼭 보여주고 싶어요. 안전한 소고기를 먹고 싶다는 우리 또래의 바람을, 그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해요."

 

정부가 학생들의 바람에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는 그, 지금 그가 관심있는 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경고문구'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학생들의 신념을 담아 촛불문화제의 순수성은 지켜지고 있었다.

 

[#장면 2] 촛불문화제의 배후는 연인? "서울시청 광장에도 갈 생각이에요!"

 

 

결정적 장면 둘. 촛불문화제는 현장을 찾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학생, 교수, 요리사, 변호사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대전 촛불문화제에서 순수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다양한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들 수 있겠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많은 인파 중에서는 연인끼리 현장을 찾은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오준석(24)·이정화(22)씨는 최근 한 달여 동안 지속된 촛불문화제에 대여섯 번이나 참여했다. 데이트 하기에도 바쁜 연인들이 문화제를 찾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받들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가 많이 났고, 이런 잘못된 일은 광장에 나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것이고요."
 
오준석씨의 말이다. 그는 엉결겹에 사회·정치 문제에 관심이 적었던 여자친구도 이번 일을 계기로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회, 정치 문제에 관심이 적었던 여자친구도 이번 촛불 문화제에는 함께 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어보니 촛불문화제의 배후(?)는 '연인'인 모양이다. 그와 함께 현장을 찾은 이정화씨는 다음과 같이 촛불문화제에 대한 소감을 밝힌다.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적었는데, 현장에 와 보니 소름이 돋을만큼 감동적이네요. 국민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참 아름답네요." 
 
이제 대전 광장뿐이 아니라 서울시청 광장으로 참여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제대로 된 국민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는 연인의 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준석·이정화씨, 그들이 느끼는 꿈의 깊이 만큼이나 촛불문화제의 열기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장면 3] 선생님과 학생의 특별한 만남? "함께하기에 외로워 하지 말자"
 
 
결정적 장면 셋. 바로 계획되지 않는 '감동'이다. 어떤 언론과 단체들은 촛불문화제에 대해 케케묵은 '배후'와 '색깔론'을 주장한다. 계획된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현장에 나가 촛불문화제의 현상을 제대로 살펴봤다면 꺼낼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계획되지 않은 유기적인 시민들의 행동들이 촛불문화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촛불문화제의 순수성을 확신하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계획되지 않는 감동에 있다. 대전 촛불문화제에서도 시나리오(?) 밖의 일들이 있었다. 같은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가 광장에서 만나는 '우연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경아(18)양과 친구들은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가 깜짝 놀랐다. 촛불문화제 현장에 같은 학교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놀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선생님!"
"아니. 너희들 여긴 어떻게?"
"엥? 선생님 이야말로 왜 여기에 계세요?"
"선생님, 추모사를 하기 위해 왔단다."
"네에?"
 
효순이·미선이 6주년 추모사를 하러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는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놀랄 얼굴이지만, 그제야 학생들의 얼굴에 자리잡았던 궁금증이 풀린다. 경아는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의 용기있는 행동에 대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선생님, 마흔이 넘으셨는데 아직 노총각이세요(웃음). 그런데 선생님은, 너희들이 있기에 괜찮다고 하시는 그런 감동적인 분이세요. 항상 사랑스런 딸들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평소에 존경하던 선생님이고요. 그런데 그런 선생님을 이렇게 촛불문화제에서 추모사를 하시다니 감동 백배에요."
 
학생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은 선생님의 추모사는 특별한 감동을 전해준다.
 
"미선이 효순이는 하늘나라에 갔지만 촛불을 든 우리가 함께 하기에 이 순간 결코 외로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에게 촛불의 힘을 알려 준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결코 이 촛불을 꺼트리지 말고 끝까지 싸워서 이기자."
 
함께하기에 외로워 하지 말자는 선생님의 말은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제자들과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 한줄기 감동을 전해 주었다.
 
'배후'와 '색깔론'을 주장하는 그대에게
 
 
13일 대전 촛불문화제에서 본 이 세 가지 결정적 장면. '배후'와 '색깔론'을 주장하는 누군가에게 꼭 보여주고픈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촛불 문화제에 대해 앞으로도 '배후'와 '색깔'를 주장할 것인지 묻고 싶었다.
 
지난 수십 년간 '배후'와 '색깔'을 주장했던 그 누군가의 답은 과연 예일까? 아니오 일까? 아니오라고 답할,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누군가에게 묻는다.
 
혹 그대 자신의 마음 속에 뿌리깊은 편견이 '배후'와 '색깔'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편견들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자라나 자신의 마음 속에 괴물이 활보하게 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제 그 편견의 괴물을 잘라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진실을 바로보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태그:#촛불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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