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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오래된 사진책 하나를 보다가 : 1949년 덴마크 구석구석 삶터를 담은 사진책 하나를 헌책방에서 만난다. 모두 흑백으로 된 사진들인데 보기만 해도 고맙고 즐겁다. 어쩜 이렇게 보기만 해도 즐겁고 고마울 수가 있을까.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느 사진도 억지스럽게 꾸미지 않았고 덧바르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서 담아낸 사진들이다.

 

구름도, 풀 한 포기도, 나무 한 그루도, 풀로 이은 지붕으로 된 집도, 시골집 둘레에서 일하거나 쉬며 아기를 보는 사람들 모습도 포근하구나. 말 두 마리에 쟁기를 달아서 밭을 가는 농사꾼이 보인다. 베어내어 실어 날라 주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나무도 보인다. 고인돌도, 풀 뜯는 짐승도 보인다.

 

이렇게 우리들은 있는 그대로를 살뜰히 볼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껴안을 줄 알면 되는구나 싶다. 사진 찍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나한테는 바로 이런 사진 찍기, 지금 있는 그대로를 내 두 눈으로 보면서 담아낼 줄 아는 방법이 아주 마음에 든다.

 

 

[17] '찰칵' 하는 소리 : 낡은 수동사진기를 좋아하는 분들 가운데에는 ‘찰칵’ 하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는 분들이 퍽 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즈음은 디지털사진기나 손전화 사진기도 ‘찰칵’ 하는 소리를 거의 그대로 흉내낸다. 그렇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 연장’으로만 사진기를 생각할 뿐, 이런 겉모습이나 느낌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찰칵’ 하는 소리에 마음이 쓰인다.

 

요새 나오는 디지털사진기는 거의 소리 없이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도 없이 엄청나게 찍어대는 디지털사진.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진이 우리들한테 보여질는지, 아니, 찍은 사람 스스로 다시 보고 또 보면서 즐길는지.

 

나는 내 필름사진기에서 나는 찰칵 하는 소리를 ‘필름값 올라가는 소리’로, ‘주머니 비어 가는 소리’로 느낀다. 나도 디지털사진기를 쓰는 사람들처럼 온갖 모습을 찍어대며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골라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돈 나가는 소리’인 찰칵찰칵을 들으면서 이 한 장에 내 모든 마음과 내 눈으로 바라본 모습을 담아내는 데에만 애쓰고 싶다. 비록 아쉽고 모자라고 좀 덜 떨어지는 사진을 얻더라도.

 

 

[18] 사진은 무엇을 하는 일인가? : 빛을 찍는 일이 사진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고, 빛을 다루는 일이 사진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직 내가 철이 없고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할 텐데, 빛을 찍거나 빛을 다뤄 보려고 애써 볼 때면, 거의 쓴맛만 본다. 아니면 남이 찍은 사진 흉내내기밖에 안 된다. 그래, 빛을 찍든 다루든 나는 나대로 내 사진을 찍고 내 사진을 다뤄야 하지 않나?

 

나는 빛을 따로 즐기지 않지만, 빛을 구태여 싫어하지는 않는다. 꺼리지 않는 빛이면서, 좀더 좋아하고프려고는 않는 빛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 곳은 빛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어서 형광들 불빛 아래일 때가 잦다. 이런 곳에서 무슨 빛을 찍고 빛을 다루나. 더구나 내가 사진 찍는 곳, 헌책방은 그 작은 형광등 불빛에 기대어 사람들이 책을 보고 즐기고 찾으며 사고파는 곳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책이 자신을 알아볼 임자를 기다리는 곳이다.

 

그러면, 나는 이곳에서는 무엇을 찍거나 다뤄야겠는가. 바로 책이고 사람이다. 책을 보는 사람이며 책을 다루는 사람이다. 빛이야 어떻건 저떻건 여기에 마음쓰고픈 사람들이나 마음쓰라 하고, 나는 내가 있는 곳, 헌책방을 있는 그대로 담는 데에만 가장 마음을 두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다시금 되새기고 다짐한다.

 

 

[19] 달빛을 보고 별빛을 보면 : 도시에 살면서 밤하늘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딱 한 번 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저한테 ‘좋은 구경 시켜 준다’고 말한 선생님이 꽤나 높직한 건물을 하나 골라잡더니 ‘저기 꼭대기에 올라가자’고 이야기해서 함께 올라간 적입니다. 저는 왜 꼭대기에 가나 했는데, 일본은 높은 건물마다 맨 꼭대기층에는 창가에 찻집이나 술집이나 밥집을 차려 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시마다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마련해 둔다더군요. 그래, 도시 살면서 이런 곳이라도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데, 우리 나라는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 싶었어요.

 

아무튼. 그때 도쿄 한복판 엄청 높은 건물 꼭대기층에 올라와 한국돈으로 치면 꽤나 비싼 술을 한잔 마시면서도 ‘아, 이렇게 한 번쯤 돈을 쓰고 올라올 만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밤하늘이 멋있기 때문이 아니라 밤에도 저 먼 곳까지, 아마 바다가 보이는 데까지일 텐데, 집집마다 켜 놓은 불빛이 밝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닷가 쪽에서는 누군가 불꽃놀이하는 모습도 보이더군요.

 

가슴 짠했습니다. 도심지 밤불빛이 멋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사는구나 싶어서 짠했습니다. 이렇게 다닥다닥…… 모여서 무얼 하고 사나 싶고, 밤하늘에 잘 보이지도 않는 별을 이 사람들은 느끼지도 않겠지, 우리(한국사람)처럼 밤하늘과 밤별을 잊고 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고, 이런 밤모습은 도무지 사진으로 찍고픈 마음이 안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찍어서 남겨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끝내 사진기를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여러 해가 지난 2003년 가을부터 2007년 봄까지 시골에서 지냈습니다. 이동안 밤마다 밤하늘 별을 보는 즐거움을 듬뿍 느낍니다. 그러나 그곳, 시골마을에서 여러 해 동안 올려다보는 별을 헤아려 보면, 이해에 보는 별은 지난해보다 적었고, 지난해에 보는 별은 지지난해보다도 적었습니다. 아마 이제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기만 할 뿐, 늘어나지는 않을 테지요.

 

또한, 이곳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똑같지 싶어요. 나날이 자동차가 늘어나고 공장이 늘어나고 발전소가 늘어납니다. 숲은 줄고 논밭이 줄며 논밭에 키우는 곡식도 ‘돈 되는 녀석’으로 바뀌는 한편, 비료와 농약이 너무도 많이 뿌려집니다. 이러니 땅인들 숨쉴 자리가 있고, 하늘인들 숨놓을 곳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해마다 줄어드는 별을 보면서 외려 별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하나 사라지는 별이 왜 이리도 가슴 짠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달빛 밝은 어느 날은, 밤하늘에 미리내가 아주 흐릿하지만 자취가 조금 보이는 날이면, 사진기에 세발이를 달아서 몇 분쯤 조리개를 열어 놓고 밤하늘을 한 번 찍고 싶습니다. 이 하늘을, 이 별을 찍고 싶습니다.

 

저는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보겠지만 앞으로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 가운데에는 시골에 와서도 ‘별을 100개도 못 보는 끔찍한 일’이 오래지 않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하늘 별을 사진으로 찍고 싶어졌고, 이와 마찬가지로 서울 하늘도 함께 찍어서 “별 하나 없는 이 끔찍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너희들이 살아가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단다. 이런 하늘 아래에서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니? 너희들한테 꿈은 무엇이고 참답게,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무엇이니?” 하고 물어 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오래도록, 새벽별이 잠들고 아침해가 뜰 때까지, 깊이깊이 꿈을 나눠 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말, #사진에 말을 걸다, #사진, #사진찍기,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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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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