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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매의 반토막도 안 되는 10%의 시청률.'

'촛불시위라는 사회적 현안을 차용하는 대담함.'

'MBC의 신강균, 이상호 기자가 연상된다.'

 

MBC의 드라마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쏟아지는 말들이다. <스포트라이트>에는 지루한 사랑 이야기도 출생의 비밀도 불륜도 없다.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브라운관을 채우지만 그것은 주인공들이 주목하며 구성하는 피사체일 뿐이다. 결국, '방송기자'라는 직업을 집중 조명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형적인 MBC 드라마다.

 

여기서 잠깐, MBC 드라마는 주변 환경을 바꾸고, 풀어내는 전개 형식을 바꿔도 매번 내지르는 목소리는 똑같다.

 

'기존 사회의 썩은 모습을 조명하고, 그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다. 한없이 정의감이 불타는 주인공이,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인 주인공이. 하지만 그 사회가 당장 변하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고,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있기에 사회가 조금씩 진보한다'는 목소리를.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주인공, 이야기를 풀다

 

<스포트라이트>의 서우진. 당연히 현실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다. 정의감에 불타며,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무식함(?). 거기에 보태지는 고고한 자존심, 그리고 탐구력.

 

사람들은 생각한다. '저런 기자들이 있을까?'.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아성 '삼성'의 치부에 도전했다가 무참히 꺽힌 '이상호 기자' 정도를 떠올리곤 한다.

 

<뉴하트>의 이은성. 더더욱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파벌과 텃새가 심하기로 유명하는 의료계에 지방대를 나와서 집단행동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을 들어가게 되는 그.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도와줘야 하고, 아무리 무시당하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문제는 거기에 실력도 별 볼일 없다는 것, 잠재능력만 뛰어나다는 것.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그를 심정적으로 좋아하며 응원한다는 것.

 

서우진과 이은성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로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데 서우진에겐 지나친 사회적 윤리와 잣대가 드리워지고, 철저한 사명의식만으로 브라운관을 구성한다. 자신의 기사로 인해 해고된 아버지, 선의의 기사지만 피해보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방침에 따라야 했던 선배까지, 그녀에게 고민의 굴레를 드리우지만 그것은 순간, 언제나 뚜벅뚜벅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드라마라면 인간의 희노애락이 적절히 녹아있어 시청자도 공감을 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높은 목적의식이 극 전체를 장중하게 가져가는 것이다.

 

이은성에겐 시청자가 숨을 쉴만한 틈이 많았다. 혼자의 독백을 통해 사람들이 심정적으로나마 동조하거나, 성장배경이나 친구, 동기와의 관계, 그리고 일탈까지.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가미됐다. 거기에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는 매력들이 극의 윤활유 장치를 담당했다.

 

사실 누구나 한번쯤은 서우진과 이은성처럼 살고 싶지 않은가? 그 생각의 틈을 이은성이란 캐릭터는 묘하게 현실적으로 파고 들어간 것이다.

 

 

한없이 무겁고 장중했던 <하얀거탑>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대인의 초상화라는 호평을 받은 <하얀거탑>의 장준혁. 그 분야에서 나름의 실력을 가진 그는 출세와 명예라는 '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때때로 보여지는 인간적인 면모와 허술함이 현실세계와 '꼭 같다'며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특히 의사세계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권력 투쟁이 기존 정치판이나 기업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들은 <하얀거탑>이 의사세계라는 겉옷을 둘렀을 뿐, 실상은 우리 사회 저변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어지게 됐다.

 

좋았던 점은 여기까지. 마니아 층이야 형성됐다지만 시청률이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한없이 무겁고 장중하게 진행되는 극 전개가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주부와 젊은이들을 공략하지 못한 탓이었다. 특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회생활에서 공감가는 내용이 많다는 지적은, 돌려말하면 주부와 젊은이들과는 큰 공감대가 없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좋은 내용의 드라마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길 바라는거니까.

 

드라마로서 어울리지 않는 서술구조의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에게도 분명히 변명거리가 있을 것이다. <하얀거탑>이나 <스포트라이트> 같이 전문직 종사자들의 세계를 조명해서 우리 사회의 추악한 부분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대게 서사적인 구조를 띠지 않는다. 보통은 시트콤처럼 매회를 구성하는 주제가 있고, 한 회가 끝날 때 그 주제도 끝이 난다. 결국 다음 회가 시작될 땐 다음 주제로 이야기가 구성되는 것이다.

 

드라마의 묘미가 무엇인가? 개연성을 가지고 이어지는 이야기, 그 속에 사람사는 이야기를 녹여내는 것이다. <하얀거탑>이나 <스포트라이트>는 매회를 구성하는 뚜렷한 주제가 있다. 당연히 매번 바뀌는 주제에 드라마의 묘미가 살만한 공간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인기있는 드라마들도 극을 끌어가는 이야기는 매번 바뀐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사건이지 그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얀거탑>과 <스포트라이트>는 끊임없이 주제를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활로를 찾아본다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한들 주목받지 못하면 슬프다. 그 목소리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스포트라이트>는 일단 인간 냄새가 물씬 풍겨야 한다. 러브라인을 형성하거나 가족사를 들이대는 것은 나름 반향이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서우진 기자가 자신 본연의 임무를 하는 과정에 겪는 인간 냄새를 가미시켜야 한다. 그래야 조미료 수준의 적절한 인간 냄새가 나지, 잘못하면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 다른 방법은 주제를 가져가는 호홉을 길게 하는 것이다. 한 회나 두 회 정도로 하나의 주제를 끝낸 뒤, 그때까지 벌어진 개인적, 대인적, 조직적 갈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뚝이 같이 일어나는 인간성 없는 서우진이 아닌 서너 회 정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긴 호홉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에 개연성이 더해지고, 시청자도 숨을 쉴 수 있는 틈이 생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에 대해 통쾌한 접근과 적나라한 비판을 하는 것도 좋지만 서우진이 아나운서에 도전했을 때 했던 말처럼 "따뜻한 기사를 다루고 싶다"는 명제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자면 '태안 기름유출 현장'에 르포 취재를 가거나, 미담, 선행, 아니면 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지.

 

MBC의 드라마는 계속 실험을 하고 있다. 드라마에 적절한 주제의식을 가미한, 드라마 시사프로그램 혹은 다큐를 퓨전해놓은 듯한 드라마를 계속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올곧은 소리가 정말 좋은 소리가 되려면 이른바 '흥행'이 되야 한다. 박철민의 '뒤질랜드'처럼 유행어가 있어야 하고, 김민정의 '텔미댄스'처럼 동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 퍼날라져야 한다. <스포트라이트>야 정말 속시원한 기자의 말이 동영상으로 돌거나, 철두철미한 기자들의 귀여운 실수가 캡쳐될만한 여유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MBC 드라마, 더많은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이 실험은 분명 성공하는 날이 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CASTO, #스포트라이트, #하얀거탑, #뉴하트, #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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