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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평택항 화물연대 총파업이 시작된 13일, 평택항 컨테이너 터미널은 평소 물동량의 3%(이날 오후 4시 현재)만 처리되는 등 사실상 마비됐다.
▲ 마비된 평택항 화물연대 총파업이 시작된 13일, 평택항 컨테이너 터미널은 평소 물동량의 3%(이날 오후 4시 현재)만 처리되는 등 사실상 마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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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터미널에 하루 1000대가 드나드는데, 오전에 겨우 7대가 들어갔다."

13일 오후 평택 컨테이너 터미널 앞에서 농성 중이던 화물연대 조합원 이현희(48)씨의 말이다. 그는 "평택항이 사실상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평택항의 화물차는 이미 9일부터 멈춰 섰다.

터미널 앞 도로에는 컨테이너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1톤 등 작은 화물차들이 바삐 움직였다. 이씨는 "급하게 날라야 하는 물건의 경우, 사장이 직접 나서 항구에서 바로 컨테이너를 해체해 1톤 트럭 등에 싣고 있다"고 말했다.

비조합원들 파업 대거 동참, 평택항 컨테이너 터미널 마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겉이 번지르르한 지게차 6대가 터미널을 나섰다. 수입된 지게차를 직접 움직여 옮기려는 것이었다. 가끔 컨테이너 차량이 터미널에 드나들면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다 파업하고 있는데 대단하다, 잘 먹고 잘 살아라"라며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이는 작년까지의 화물연대 파업과 다른 모습이다. 작년 11월 파업 때만 해도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비조합원들의 차량을 막아섰다. 컨테이너 차량의 약 25%만이 화물연대 조합원인 까닭에 비조합원들의 차가 움직이면 파업은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만난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터미널 앞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다. 경찰 수백명이 그들을 지키고 섰지만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이씨는 "화물연대 비조합원들이 오히려 파업을 하자고 난리다"며 "비조합원 대부분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평택지방해양항만청 항만물류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평택항 평소 물동량의 40%만 처리되고 있고, 컨테이너의 경우 오후 4시 현재, 하루 물동량 1380TEU 중 3%(50TEU)만 처리됐다"고 밝혔다.

"화물차는 파업하기 전에 저절로 섰다"

"화물차는 저절로 섰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간 13일 오후 평택항 컨테이너터미널 앞에는 멈춰선 컨테이너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다.
▲ "화물차는 저절로 섰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간 13일 오후 평택항 컨테이너터미널 앞에는 멈춰선 컨테이너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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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조합원들은 "화물차는 파업하기 전에 저절로 섰다"며 "일하면 적자인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가만히 있어도 보험료·지입료 등으로 매일 6만원이 나간다, 그럼에도 일하지 않는 게 낫다"고 전했다.

김아무개(32)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얼마 전 평택항에서 경기도 의정부까지 40피트 컨테이너를 나르고 23만6천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24만원 나온 기름 값과 톨게이트비(2만원), 밥값을 모두 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마이너스'다.

오세희(27)씨 같이 차량 할부가 남아있는 상황이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는 작년 3월 대출받아 1억원짜리 스카니아 컨테이너 차량을 샀다. 한 달 벌이가 많아야 800만원인 그는 매달 310만원을 원금과 이자 등 빚 갚는 데 쓴다.

그는 "최근 기름 값이 많이 올라 한 달에 400~500만원은 유류비로 나간다, 여기에 지입료(25~30만원), 보험료(30만원), 유지비 및 수리비(100만원)까지 계산하면 적자다. 밥 굶는 건 예사"라고 말했다.

많은 화물차 운전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빚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손에 쥔 카드만 5장이라는 최용원(36)씨는 한 달 수입이 300~400만원이다. 이 중 빚과 그 이자를 갚는 데 160만원, 차 유지비와 보험료 등으로 140만원이 나간다.

7, 6, 3살 자녀가 있다는 그는 기자에게 "차량 할부, 카드론, 대출, 캐피탈, 카드 현금서비스 등 '빚 돌려막기'로 지금껏 살아왔다"며 "5년 전 동생에게 빌린 500만원을 아직도 못 갚았다, 모두 4000만원의 빚이 남았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운송업체 직원조차도 "화물차 운전자들을 이해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 우선 지입제를 들 수 있다. 지입제란 5톤 이상의 영업용 화물차는 개별등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화물차주가 운송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차 명의까지 이전해주며 운송사업 면허를 빌리는 것이다. 운송업체의 절반은 '페이퍼 컴퍼니'다.

최씨의 상황은 지입제의 폐해를 보여준다. 그는 "차를 팔고 농사를 짓고 싶지만, 내 차인데 팔 수가 없다"며 "얼마 전 한 운전자의 차가 전복돼 화주에게 많은 손해를 끼치는 바람에 화주가 내 차를 포함한 운송업체 명의의 차들을 모두 압류했다"고 밝혔다.

화물차 운전자들의 고통은 무엇보다도 급격한 기름 값 상승에서 비롯된다. 이는 정부의 거짓말과 연결된다. 정부는 지난 8일 고유가 대책을 내놓으면서 경유 값이 ℓ당 1800원 이상인 경우, 화물차 운전자에게 상승분의 50%에 해당하는 유가환급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화물연대 조합원은 "이미 2003년 5월 화물연대 파업 때 정부가 유가 인상분 전액을 보조해준다고 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것 중엔 '표준요율제 현실화'가 있다. 이에 대해 김아무개(32)씨는 2005년 당시 건설교통부의 표준요율표와 자신이 실제로 일하고 받은 4월치 영수증을 내밀었다. 그가 지난 4월 14일 평택항에서 천안까지 40피트 컨테이너를 옮기고 받은 돈은 13만3천원.

하지만 표준요율표 상 그가 받아야 할 돈은 23만7천원이다. 그마저도 경유 값이 지금의 1/2도 채 안 됐던 시기의 요율표다. 김씨는 "매년 요율이 9%씩 올랐지만, 2005년 요율표 대로만 줘도 좋겠다"며 "정 안되면 차라리 미터기라도 달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경배(45)씨가 거들었었다. 그는 "100만원짜리 화물이 있으면 우리가 받는 돈은 32만원밖에 안 된다"며 "상황,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중간에서 무역업체가 50%, 알선 운송업체가 18%를 가져가거나 운송업체 2~3곳이 18%씩 가져간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천막 주변엔 운송업체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과 사이가 안 좋은 한 업체의 사장은 욕을 한참이나 퍼붓고는 떠났다. 반면에 음료수를 사들고 오는 운송업체 직원도 있었다. 박형민 우창물류 관리부장은 "운전자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물류회사가 가장 큰 문제다. 글로비스 등 대기업 물류회사는 자기 차 한대 없으면서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수천억원의 이윤을 남긴다. 그들은 운송업체에 매우 낮은 가격으로 물량을 준다. 대기업 물량이 많으니 어쩔 수 없이 낮은 가격에 계약할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 "죽겠다는 심정으로 나왔다" - 정부 "강경 대응"

한편,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불법행위에 대해선 즉각 경찰력을 투입하고, 운송 거부에 나선 화물차 운전자에 대해선 유가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화물시장 안정화 관계 장관 회의' 결과에 따라, 정부는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일단 군 장비와 인력 투입, 임시 화물열차와 연안 컨테이너 선박 운영, 자가용 카고 유상운송 허용 등의 비상수송대책을 시행하고 나섰다.

하지만 화물연대 파업은 화물연대의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만난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이번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현희씨는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더 잘 알 것이다. 지금까지 누적된 게 폭발한 거다. 죽겠다는 심정으로 나왔다."


#화물연대 파업#화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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