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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백만인이 들었다는 촛불이었다. 대도시에서 촛불을 든 민주 시민들이 각각 서울 50만, 광주 6만, 대전 1만 5천을 기록하는 동안,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오점으로 기록되는 독재자 전두환을 낳은 이곳 경남 합천군 '새천년평화의숲'에도 3백여 명의 군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새천년평화의숲'의 법적 명칭은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다. 한때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공원 명칭 변경에 대한 싸움이 결국 지방 권력의 지독한 독선으로 마무리된 결과다. 그러나 많은 군민들과 이 사건을 접했던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가 그런 독선의 결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비록 법적인 명칭은 '일해공원'이지만 누구 하나 이 공원을 그렇게 불러주지 않는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국민의 건강과 맞바꾼 이명박 정부의 사대주의적 정책이 비록 권력의 이름으로 외교적인 협정을 완성했을지는 몰라도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그 협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저녁 8시 '합천지역 광우병감시단'이 주최한 제6회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일해공원'이 아닌 '새천년 평화의 숲' 내에 있는 3·1 독립기념탑 앞에서였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모여 앉은 군민들을 중심으로 노래와 구호가 터져나왔고 이어서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부가 연단에 올라 '미친소를 들여오는 대통령'을 성토했다. 또 가야면에서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정재영씨는 재벌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한미FTA를 위해 농민들의 삶을 팽개쳐 버린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정책을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군민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촛불을 들고 앉아 경청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학교 선생님인 아내와 학생인 딸 둘과 함께 있던 문종갑(43·야로중학교 교사)씨는 합천에서 지금까지 있어 왔던 여섯 번의 촛불문화제에 모두 참석했다.

 

"아이들 급식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시골에서는 대체적으로 학교급식을 직영을 하는 데 반해 규모가 큰 도시학교들은 위탁급식을 합니다. 그런데 직영급식을 하는 학교는 한우를 사용하고 수익만 내면 그만인 위탁급식업체들은 수입육을 사용한다는 기사가 오늘 <경남일보>에 났어요. 이거 가만 놔두면 정말 아이들이 너무 위험해지게 됩니다. 반드시 미국산 쇠고기를 막아야 해요."

 

지금 나와 있는 이 자리가 학생들의 미래를 간과할 수 없는 선생님으로서 소중한 두 딸의 아버지로서의 의무가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양돈업을 하는 이근배(59·남)씨를 만나봤다. 가업을 이은 아들 이귀순(32·양돈업)씨 그리고 아내와 함께 온 가족이 나왔다.   

 

"돼지 값은 올랐지만 사료값이 올라도 너무 오르고 '비즈니스 프렌들리'만 하는 이명박 정부의 한심한 농업정책을 도대체가 믿을 수 없어 이건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입니다."

 

 

경상도 사람 50대 후반이 가지는 정치적 정서가 궁금했다.

 

"보수요? 올해 초까지는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권 들어선 이후로 내 주위에 보수라는 사람 씨가 말라가고 있어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 작년에 표도 줬겠지만 이제는 너무 실망이 커서 99%는 보수 안할 겁니다."

 

도시에 사는 서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땅만 바라보고 사는 이곳 시골 사람들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10%대의 지지율을 확인해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한 분 더 인터뷰를 해봤다. 소를 키운다는 57세 여성 농민이었다. 촛불 문화제는 친구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처음 나왔다.

 

"사료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소 값은 땅 깊은 줄 몰른 세상이요. 한나라당 찍었냐고? 그런 거는 왜 물어 봐요? 다 필요 없고 인자 맨날 나올라네요. 재협상 안 되면 다 죽게 생겼는데 그거 될 때까지 나올라네요."

 

 

밤 9시 20분, 합천군 대병면에서 꿀농사와 밤농사를 짓는다는 젊은 농민이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그는 "오늘 한미 쇠고기 협상의 치명적인 문제들을 민주당에서 책임지고 제기해 온 박홍수 전 농림부 장관이 영면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함께 묵념할 것을 요청했다.

 

9시 40분, 촛불문화제 1차 행사를 마무리하고 거리행진에 들어갔다. '새 천년 평화의 숲'을 빠져나와 가까이 있는 읍내로 향했다. 읍내 중심가에 닿기 전 경찰서를 지나면서 "폭력경찰도 동참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거리 행진 인원은 150여 명이었다.  

 

10시 30분, 50분 동안 합천읍내를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협상무효! 고시철회!" "재협상을 실시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헌법 제 1조' 등의 노래를 불부르며 거리행진를 했다. 사람들은 매주 수요일 '새 천년 평화의 숲' 촛불문화제 행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외진 시골답게 적은 인원이었지만 합천군 '새 천년 평화의 숲'에서 타올랐던 촛불도 2008년 6월 10일 온 나라를 밝힌 백만개의 촛불 중 분명한 한 부분이었다.

 
ⓒ 김지영

태그:#촛불문화제,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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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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