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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왕의 정교(政敎)가 밝으시면 비록 풀 언덕에 금을 그어 성(城)이라고 해도 백성들은 감이 이것을 넘지 않을 것이며, 재앙을 씻어 깨끗이 하고 모든 것이 복이 될 것이나, 정교가 밝지 못하면 비록 장성(長城)이 있다 하더라도 재해를 없이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오는 말로 신라 문무왕이 사망 두 달 전인 681년 5월, 왕도 서라벌에 성벽을 쌓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부석사에서 접한 의상이 성 쌓는 것을 반대하느라 올린 편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을 보고 문무왕은 중역을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청와대로 통하는 광화문 대로에 철제컨테이너를 이용해 5m 높이의 철벽을 쌓는다는 암담한 소식이 들리는 아침입니다. 기고만장할 정도로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지 100여일 만에 공권력의 철옹성에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이명박 정부가 측은해지기까지 합니다.

 

지난 3일간 <에밀레종의 비밀>을 읽으며 시시때때로 접하는 촛불시위 장면에 만파식적의 울림 같은 소리가 강하게 덧씌워지던 건 어인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만 가지 파란을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인 만파식적은 '소리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신탁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소리는 과연 어떤 소리일지가 궁금합니다. 촛불 하나가 구심점이 되어 촛불로 밝히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 '소리'이고 여론일지인데,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알고도 외면을 하는 것인지 답답한 날의 연속입니다.

 

아! 동족상잔의 비극이여

 

흔히들 6·25를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간에 총부리를 맞대고 싸운 전쟁이니 동족상잔의 비극이 분명합니다. 그런 민족상잔의 비극이 지나간 6·25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동영상으로 보았던 어느 아버지의 절규, 촛불을 들고 나섰다 진압을 위해 투입된 전경인 아들과 맞닥뜨렸던 어느 아버지의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 진압군으로 나섰다 친구나 아는 사람을 발견하면 '진압이 시작되면 얼른 피하라'고 귀띔을 해주었다는 어느 전경의 심경고백이야말로 동족상잔의 아픔이며 현장입니다.

 

온 국민을 투사로 만들 것인가?

 

고단한 몸일지언정 촛불을 밝혀든 사람들의 표정은 굳건한 투사의 모습입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오순도순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에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엄마, 아빠, 형과 누나는 물론 미래의 당사지인 어린이들까지 촛불을 들고 아스팔트길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 상황. 이명박 정부는 온 국민을 투사로 만들 작정이라도 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촛불을 치켜든 당신들을 감히 'FTA6·29'라 부르고 싶어집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부터 주창한 몰입식영어교육 때문인지 '또 한 번의 6·29를 목표로 하는 전사들'이란 표현으로 언뜻 'Fighter Target Again 6·29!'가 떠오릅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6·29가 무엇입니까? 꼼수가 있었고, 정치적 술수가 있었다 해도 군사정권이 항복문서를 읽듯 6·29를 선언하던 그날은 민중의 함성이 독재의 분수령을 넘어 일말의 민주가 싹을 틔우던 희망의 날이었습니다. 핍박 받고 억눌렸던 민주가 위로 치솟아 도도하게 대하를 이룰 수 있는 시발점이었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세월에 편승해 끼어들었거나, 퇴적물처럼 쌓인 그들만의 아집과 독선을 타파하기 위해 또 한 번 분수령을 넘어야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6·29 선언을 가져 왔던 그날의 함성, 그때의 뜨거움으로 더 이상 미친소가 넘보지 않는 사회, 강부자와 고소영으로 회자되는 그들만의 정치가 팽배해가는 작금의 상황을 끝장냅시다.

 

촛불 민심을 제대로 듣고 이행한다면 비록 광화문 대로에 금 하나를 그어 성(城)이라고 해도 백성들은 감이 그 선을 넘지 않을 것이며, 지금껏 그래왔듯 독선과 아집만을 반복한다면 철제컨테이너가 아니라 철갑탄을 장전한 탱크의 대열이 길을 막는다 하여도 촛불 민심이 형성한 대해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투사의 전투복을 벗겨주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끝낼 수 있는 원동력인 'FTA6·29'들이여! 촛불이 되어 촛불 아래로 모여라. 동족상잔의 비극에 마침표를 찍는 6월 10일이 되도록.

덧붙이는 글 | 의상대사가 문무왕에게 보낸 서신내용과 만파식적에 대한 내용은 성낙주가 쓴 <에밀레종의 비밀> (푸른역사)에서 인용 하였습니다.


#FTA#629#촛불#동족상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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