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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문인들과의 여행길에서 포즈를 취한 안상학 시인(맨 왼쪽).
 동료 문인들과의 여행길에서 포즈를 취한 안상학 시인(맨 왼쪽).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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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의 새 시집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몇 번이고 아름다운 사람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어디 사람뿐이랴. 자칫 눈시울이 뜨거워져 오는 그의 시들은 사람을 닮아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렇다. 소설가 송기원의 말처럼 시인 안상학(47)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전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등을 통해 질박하면서도 결 고운 서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준 바 있는 안상학이 오랜만에 새로운 시집을 들고 인사를 전해왔다. <아배 생각>(애지).

'아배'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영남 방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시집에선 아버지에 대한 안상학의 절절한 그리움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버지-나-자식'으로 이어지는 끊을 수 없는 혈연의 질긴 고리. 시집 제목과 동명인 시의 일부 대목을 옮겨본다.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야야, 어디 가노?/예… 바람 좀 쐬려고요/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댜?/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10년 전 세상을 뜬 아버지와 함께 했던 일상을 이처럼 무심히 말하면서도 행간 사이사이에 애틋함을 심는 넉넉한 재주. 부친과의 추억을 눈물이 아닌 농담으로 떠올리는 시. 그런 까닭에 '아배 생각'은 쓸쓸하고 허탈한 웃음을 부른다. 끝끝내 시인의 가슴 안에 그리움과 슬픔의 이름으로 남아있을 이름 아배.

때론 그리운 것을 그립다 말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구구절절 노래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시인이란 바로 그럴 때 '능청스런 은유'를 사용하는 사람. '아름다운 시인' 안상학은 바로 이 능청스런 은유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착함... 안상학 시가 지닌 힘의 진원지

질박하면서도 결 고운 서정을 보여주는 안상학의 새 시집.
 질박하면서도 결 고운 서정을 보여주는 안상학의 새 시집.
ⓒ 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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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이 아름다운 동시에 '착한 시인'임을 짐작케 해주는 시 '봄 폭설'을 비 뿌리는 흐린 하늘 아래서 읽는다.

강물과 꽃, 돌계단과 물 건너는 다리의 안부까지 걱정하는 선량한 안상학일진데, 아버지 살아생전 미안함과 죄스러움은 또한 어떠했을까. 거기에까지 생각이 이르면 새삼 마음 한구석이 아득해진다.

어제 서울에는 백년 만에 봄 폭설이 내렸다 한다
몸 풀고 서울 가던 강물은 괜찮은지
밤새 꿈속에서 다시 떠나던 지나간 사랑

오늘 아침 내 사는 곳에도 폭설 내렸다
봉정사 돌계단 밑 개미자리꽃은 괜찮은지
월영교 건너 길섶 꽃다지는 어떤지… 

담담하고 평이한 어조로 노래하지만 그 담백함 속에 담긴 내밀한 뜻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시편들. 안상학의 노래는 톡톡 튀는 매력은 없으되 웅숭깊은 맛이 있다. 문학평론가 홍용희는 이를 일러 "꾸밈없는 순정한 시적 미감"이라고 추켜세웠다.

흐르는 세월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든다. 이 명제에 수긍한다면 늙는다는 것이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닐 터. 불혹을 훌쩍 넘겨 몇 년 후면 지천명. 세상사 이치와 진실을 깨달아가는 안상학의 눈빛이 맑다. 그 역시 세상과 사람을 향해 '삿대질 한 번 한 적 없는' 아배의 눈빛을 닮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갈대가 한사코 동으로 누워 있다/겨우내 서풍이 불었다는 증거다//아니다 저건/동으로 가는 바람더러/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다….
-위의 책 중 '선어대 갈대밭' 중 일부.


아배 생각 - 안상학 시집

안상학 지음, 애지(2008)


태그:#안상학, #아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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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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