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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소원을 적어보세요.

"중학교 교과서에는 우리아빠가 모르는 문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나를 불러 앉혔다. 이런 소원이 어딨냐며 설명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핸드폰을 갖고 싶다', '좋아하는 친구와 짝이 되게 해 달라' 등의 평범한 답변들 속에서 내 소원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긴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우리 아빠는 나와 내 동생에게 무언가 설명하기를 좋아하신다. 딱 떨어지는 답만이 아닌, 그에 관련된 부수적인 설명까지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시나보다. 13살이던 당시, 중학교에만 올라가면 아빠가 모르는 문제들이 교과서에 가득해 더 이상 지루한 설명을 듣는 일은 없을 거라 기대했었나보다.

 

남들보다도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 우리 아빠. 적어도 내가 본 아빠는 그렇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몇 번이고 입으로 되풀이 해보고 "착 달라붙지 않는다"며 메모지를 꺼내 적어두신다.   

 

아빠는 도대체 왜 그렇게 배우고자 하시는 걸까. 여유로운 주말 오후, 아빠와 나는 얼굴을 맞대고 식탁에 앉았다.

 

- 아빠, 아빠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 아빠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벽지로 바른 신문지가 아빠가 보는 유일한 교재였어."

 

아빠는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남 2녀 중 장남인 아빠는 농부의 아들로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다(여전히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사실 아빠는 학교를 다닐만한 사정이 못됐어. 먹고 살아야 되니까. 아버지 도와서 매일 농사일 거들고… 근데 학교에 너무 가고 싶은 거야. 니 고모랑 작은아빠도 있고 쌀 밥 한 끼 먹는 것도 감사해야 할 지경에 책 살 돈이야 있겠어? 벽지로 바른 신문지가 아빠가 보는 유일한 교재였어. 신문에 적힌 글자 보고 한글 익히고 한문을 보면서 따라 써보고… '논에 다녀와라. 고추 밭에 갔다 와라. 소여물 줘라.' 부모님 거들기도 빡빡했는데, 그 시간은 아빠의 유일한 낙이었다, 낙."

 

"5일 동안 안 자도 죽지 않는구나 싶더라"

 

 

"책보자기 알지? 드라마 같은데 보면 나오잖아(안방에서 스카프를 꺼내 오시더니 직접 묶는 방법을 굳이 보여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땐 전부 다 이 가방을 들고 다녔어. 국민학교 입학식 날부터 갖고 다니던 걸 아마 중2 때까지는 계속 쓴 것 같아. 6학년이 되니깐 중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더라.

 

근데 육성회비도 제 때 내지 못해서 졸업도 아슬아슬한 마당에 그 말을 어떻게 꺼내겠어. 농사가 잘 되면 겨우 고추랑 마늘 팔아다가 학비대고 그랬는데…. 근데 내가 우리 담임을 찾아가서 중학교 진급 좀 시켜달라고 하루 종일 매달렸어. 그랬더니 다음 날 선생님이 할아버지를 불러서 설득을 해주더라고 얼마나 고맙던지."

 

당시 마을에서 중학교에 진급한 친구들은 아빠를 포함하여 3명뿐이었다. 먹고 살기 바빴던 그 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기회였나 보다. 마을에서 10리(4km)나 떨어진 중학교에 가기 위해 아빠는 동이 트기 전인 새벽녘에 집을 나서야 했다. 지금도 165cm가 조금 넘는 키의 우리 아빠는 중학교 시절 항상 1번을 도맡았을 정도로 왜소했다. 그 몸을 이끌고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걸어서 학교에 갔다고 한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니 항상 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어. 작은 아빠랑 고모들은 배우고 싶어도 돈이 어디 있어야지… 얘들한테 갚을 길은 열심히 공부하는 거였지 뭐. 너 시험 기간만 되면 하루 밤새놓고 투덜거리고 데려다 달라고 그러지? 지금도 생각나는데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거야. 일반고는 꿈도 꿀 수 없고 충주공전(당시 충주공업전문학교. 지금은 충주대학교로 변경되었다)이라도 가려면 돈은 둘째 치고 성적이라도 좋아야지. 시험 준비한다고 아마 5일 밤을 샜었지. 5일 동안 안 자도 죽지 않는구나 싶더라."

 

그 해 겨울 아빠는 충주공전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학비를 보태기 위해서 결국 중학교에 다니던 큰 고모는 학업을 중단하고 오빠를 위해 단양 읍내에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 그럼 아빠는 학교 다니려면 충주에서 살았겠네. 자취하면서 어떻게 지냈어요?

"남자 둘이 밥을 제대로 해먹을 수가 있나 빨래를 제대로 하나, 거의 피난민 생활이었지."

 

"아빠가 그 때 가지고 나온 돈이 12만원이었어. 버스 타고 두 정거장 더 가면 다방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살던 월세 방 같은 데가 있었는데 거기서 광석이 아저씨(아빠의 초·중·고 동창이시다)랑 둘이 살았어. 둘 다 시골에서 오고 몸도 약하고 하니깐 집에 깡패들이랑 형들이 들락거려도 뭐 막을 수도 없고… 비위 맞추고 집 내주고 그랬어. 아무튼 제일 힘든 건 남자 둘이 있으니 밥을 제대로 해먹을 수가 있나 빨래를 제대로 하나, 거의 피난민 생활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배고파서 학교에 잘 사는 애들한테 염치없이 굴기도 하고…."  

 

충주공전 3학년이 되던 해, 학교 선생님은 국비지원 대학입학시험을 아빠에게 제안했고 5학년을 마칠 무렵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벽지로 바른 신문지를 보며 한글을 익혔던 심곡리 '민드기' 마을의 까까머리 소년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대학생이 되었다.

 

- 그럼 아빠는 취직 때문에 캠퍼스 낭만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겠어. 근데 대학까지 마치고 직장도 얻고 나는 아빠가 도대체 왜 그렇게 '배움'에 집착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솔직히 어렸을 땐 엄청 괴로웠단 말이에요. 우리한테까지 강요하는지.

"아빠는 그 하고 싶은 게 공부였는데 가난한 부모 밑에서 그런 환경이 안됐어."

 

우리아빠는 뜻을 알고 싶어서 영어 단어를 물어보면 발음 기호부터 시작해 단어의 생성 배경까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하신다.

 

주말 저녁. 재미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그야말로 성황을 이루는 시간대에 우리가족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인 <도전! 골든벨>을 본다. 그 짧은 한 시간이 얼마나 지루한지 내 몸은 베베 꼬인다. 국가명이 정답인 날에는 지구본을 찾아와야 하고 한자 문제가 나오는 날엔 옥편이 필요하다.

 

우리아빠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또하나의 이유

 

 

"우리 반대로 생각해보자. 너는 돈 벌어서 동생 학교 보내줘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책 살 돈이 없는 것도 아니야.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랑 아빠가 다 사주고 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걱정 없이 다 할 수 있어. 아빠는 그 하고 싶은 게 공부였는데 가난한 부모 밑에서 그런 환경이 안 됐잖아. 그렇게 따지면 사전이 있는데도 영어 단어 공부하지 않는 너를 이해할 수 없고 책을 그렇게 쌓아두고 안 읽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거야.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 속에서 그래도 너랑 용준이 만큼은 아빠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잘 따라와 줬지만 우리 딸이랑 아들이 아빠보다 더 욕심내서 하고 싶은 건 꼭 해낼 수 있는 그런 내 새끼들이 되었으면 좋겠거든."

 

-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을 게요. 제일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제일 쉬운 건가? 음 … 아빠의 꿈은 뭐예요?

"가르치고 싶어. 그게 학생이 되었건, 아니면 우리 아들·딸이 되었건. 사실 가르친다는 게 이것저것 알고 있는 걸 말해주고 싶은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음먹으면 안되는 게 없다는 것도 그때의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한테 말해주고 싶어. 우리 딸은 충분히 아빠의 마음이 전달됐을 것 같고…. 그리고 계속 도전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번 여름엔 플라이 낚시를 배울 거야 베스 낚시도 가고 세상엔 참 할 게 많은 거 같아." 

 

거실에 수북하게 쌓인 플라이 낚시 관련 책들을 펼쳐보며 오늘 밤도 아빠는 설레신다.

 

인터뷰를 통해 또 다른 우리아빠를 만났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자꾸만 생긴다. 장장 2시간동안 이루어진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또 다시 소파에 앉았다. 오늘 우리아빠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덧붙이는 글 | <가족 인터뷰> 응모글


태그:#아버지, #어린시절, #가족인터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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