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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이명박? 마릴린 명박!

사실 이명박이라는 정치인이 누군지 모르고 살았다. 그가 현대건설 사장일 때도, 국회의원일 때도, 심지어 서울시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버스노선 개편과 청계천 복개사업 추진 당시에도 서울시장 이명박이라는 사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당시의 나는 그저 기타와 로큰롤에 미친 듯이 열광하는 스무살 재수생이었다. 내가 그를 관심 있게 보기 시작한 것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미국의 록스타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다.

미국의 록커 마릴린 맨슨과 이명박 대통령. 나는 그를 마릴린 명박이라 부른다.
 미국의 록커 마릴린 맨슨과 이명박 대통령. 나는 그를 마릴린 명박이라 부른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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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은 나에게 큰 웃음거리였다. 사춘기 시절부터 마릴린 맨슨의 노래를 즐겨 들어온 나는, 그 사실을 안 이후부터 이명박이라는 사람, 아니 '이명박의 얼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마릴린 명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필 교회의 장로라는 사람이 안티 크리스트 슈퍼스타를 외치고 몰몬교의 성경을 찢어발기는 가수를 닮다니….'

그러한 아이러니를 가진 그의 얼굴이 가끔은 측은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떤가? 그의 얼굴이 내 얼굴도 아닌데 말이다. 그의 존재는 나에게 큰 웃음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었다. 그뿐이었다.

처음 본 마릴린 명박, 실망스러운 강연회 그리고 등록금 정책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된 후,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우리 대학교에서 강연회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드디어 마릴린 명박의 얼굴을 실제로 보는구나' 싶어 어린애처럼 들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강연은 앞으로 1년여 간 펼쳐질 한나라당 대선 경선 레이스의 첫 일정이었다. 

하지만 강연은 그의 얼굴이 주는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망스러웠다. 가난한 뻥튀기 장수 소년이 현대건설 사장이 됐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저 자신이 쓴 자서전을 한 번 더 반복하는 인상만을 풍겼다. 다만 지금에 와서 당시의 상황을 회상해 보면, 현재 이명박 정부의 정책 노선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던 발언들이 떠오른다.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등록금 폭등에 대한 방안을 갖고 계시냐"고 묻자, 그는 "장학금 제도를 확충하겠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등록금이 오르는 현실에 강력한 정부 정책이 필요 했음에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 등록금의 책정 권한을 더 자율화해야 한다고 했다.

등록금이 오른다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에 대해 그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의 경우 등록금이 비싸지만 그만큼의 기부문화와 장학금 제도가 발달되어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러한 기부분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국가의 역할을 몇몇 자선사업가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들이 혀 끝에서 맴돌았지만, 수천명의 청중 앞에서 그것을 말하기란 너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결국 내 질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배신 당한 등록금 반값 정책, 열 받아 거리로 뛰쳐나오다

2007년 8월. 그는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누르고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 경선에서의 승리 직후, 수많은 민생 공약들이 이명박 진영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이른바 '반값 등록금' 공약도 있었다.

약 2조원 가량의 장학생 기금을 마련하고 사병의 월급을 인상해 그 인상분이 대학생의 통장으로 저축되게끔 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실질적으로 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내 주위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20대들이 이러한 이유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하지만 집권한 이후,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인수위에서 교육에 대한 새 정책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을 때에도 대학 등록금에 대한 사안은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참여연대가 한나라당에 보낸 등록금 정책 관련 질의서는 사실상 묵살되었다.

급기야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겠다는 것이다"라는 변명이 한나라당 일각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분노했고, 급기야 3월 28일 전국의 대학생들이 서울시청 앞으로 모였다. 그 움직임 속에는 나도 있었다. 살면서 생전 처음 시위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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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시위로 정부의 태도가 바뀌리라는 일말의 희망들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부는 백골단(체포전담반) 300명과 시위대 참가인원의 2배가 넘는 1만 4천여 명의 전투경찰 병력을 시위 장소에 투입했다. 시청 광장을 둘러싼 전경 버스는 시민들로부터 시위대를 철저히 격리시켰다.

"전경 버스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알기나 할까?"

행진을 할 때에도, 청계광장에 머물러 마무리 집회를 할 때에도 우리의 목소리는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만 남았다. 길게 늘어선 폴리스라인은 시민들과 학생들간의 소통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들과 학생들간의 소통마저도 철저히 가로막았다.

대국민 성명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이 대통령 자신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들을 비춰봤을 때, 과연 그는 소통의 부재에 대해 반성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제발 올챙이적 생각 좀 하시라

통합민주당이 내놓은 등록금 상한 법안은 결국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이 법안이 통과가 될까?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신용불량자 신분에 허덕이고 자살을 선택하는 친구들을 막을 도리가 없다. 이건 사실상 국가의 직무유기다.

나는 이 대통령에게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등록금 통제 정책이 없었다면, 이 대통령은 과연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을까? 새벽 같이 나가서 수산시장 아르바이트로 가까스로 학비를 벌어온 대통령이 왜 대학 등록금 정책에는 인색할까?

6.3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반대 시위로 인해 체포된 청년 이명박이 재판을 받는 모습
 6.3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반대 시위로 인해 체포된 청년 이명박이 재판을 받는 모습
ⓒ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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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분연히 나간 이유가 누구의 선동을 받았기 때문일까? 대통령 외에 거리에 나온 그 수많은 학생들 역시 좌파에 의한 선동으로 인해 거리로 나섰던 것일까?

정작 이 대통령 자신은 가난한 집안 출신에 가까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마련했고, 굴욕적인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에 분연히 나섰던 사람이 아닌가? 그는 왜 이렇게 모순된 행동들을 연발하고 있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배신하는 정책들과 조치들에 기가 막힐 뿐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달리 없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면서 사는 방법 뿐이다. 제발 개구리가 됐으면, 이제 올챙이적 생각 좀 하고 사시라. 대통령 자신의 모순된 생각과 행동이, 전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등록금 집회부터 최근의 미 쇠고기 수입저지 촛불 문화제까지, 이제 그만 좀 쉬고싶다.


태그:#이명박, #마릴린 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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