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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군산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초딩'
 지난 토요일에 군산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초딩'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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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끼리 촛불문화제에 온 '초딩'들. 예뻤다.
 아이들끼리 촛불문화제에 온 '초딩'들.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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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비가 내리지 말았으면…."

2일 어제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오후부터는 건드리지 않아도 쏟아질 기세였다. 일 끝나고 집에 오니까 아이는 소파에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발로 까닥까닥 박자까지 맞추고 있었다. 

평온한 저녁이었지만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평일이면, 아이가 잠들 때까지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켜지 않는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180분, 하지만 컴퓨터를 켜 버렸다. 서울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있었다.

장대비 속 촛불 문화제, 아이의 일기

눈앞이 흐려지고, 콧물이 나왔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었다. 아이는 공부방에서 일기를 쓰고, 그 옆에서 나는 책을 읽었다. 아이가 캐릭터 스티커 좀 사면 안 되냐고 조르다가 삐치는 틈을 타서 아이 일기장을 펼쳤다.

비온 날

저녁에 비가 올 줄 알았다. 태권도 갈 때 비가 아주 적게 왔다. 하지만 태권도가 끝날 때는 멈추었다. 그리고 피아노로 갈려고 했는데 또 비가 왔다. 그래서 우산을 가지고 와서 갔는데 비가 그쳤다.

집에 와서 오마이뉴스로 서울에서 하는 촛불문화제를 보았다. 비도 오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나는 비가 오면 끈적끈적하고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고 등등 그래서 싫다.

나는 비가 그치면 좋겠다.

서울 사람들이 걱정된다. 

스티커 타령과 학교 운동장 땅파기에만 열을 내는 아이 마음 한 자락을 들춰 보니, 정의로운 아이가 있었다.

내가 감격하는 사이에 군산에도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쏟아졌다. 그 때 입에 '걸레'를 문 아이가 튀어나왔다.  

"엄마, 벼락~ 쥐박이한테 갔으면 좋겠다."

아이는 비오는데도 촛불문화제를 하는 서울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는 비오는데도 촛불문화제를 하는 서울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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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바른 아이가 싸가지 없게 구는 사람은? 

아이한테 사람들에게 인사 잘 하고, 상처 주면 안 된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우리 아이를 3년째 돌봐주는 분은 처음에 아이가 '싸가지' 없어서 몇 번이나 관두려 했단다. 물어도 대답을 않고, 밥을 차려 주면 짜증부터 내고, 같이 길을 걷다가도 몇 번이나 사라져 버려서 애 먹었다고.

학교 들어갈 때까지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였지만 성품은 괜찮게 키웠다고 여겼는데 아이에게 벌써 내가 모르는 얼굴이 있었구나. 충격이었다. 나는 아이를 상대로, (일관성 없게) 부드러웠다가 격해졌다를 되풀이했다. 결국에는 매를 들어 진압했다.

아이는 지금 인사를 잘하고 성정이 밝다. 돌봐주는 '고모'에게 하는 말도 물론 예쁘다. 그렇게 공들여 왔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전조 증상은 있었다. 대통령을 말할 때 호칭을 떼고 말했다.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명박이'가 재수 없고 짜증난다고 했다. 어느 밤에는 잠결에도 '똥침' 놓는 저주를 걸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학교 급식을 아주 조금씩 먹는 '투쟁'을 혼자서만 하고 있다. 우리 아이는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햄버거를 먹지 않은 '달인'이다. 놀이학교를 거쳐, 유치원,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조직생활 9년차, 간식으로 들어오는 햄버거가 많았다. 그러나 끝내 저항한 '똥고집' 강제규 선생이다.

그런 아이에게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쇠고기를 들여 오라고 허락해 준 사람들은 대접 안 해도 되는 존재인가 보다. '싸가지' 없게 굴어도 된다는 판단이 은연중에 선 모양이다. 우리 아이보다 몸집도 크고 급식도 맛있게 먹는 반 친구들은 '벼락 맞는다'보다 더 센 말도 쓴다고 했다. 

국민들에게 '욕' 먹지 않고,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에게 '욕' 먹지 않고,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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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어찌 못하는 '의인'이 된 아이

따뜻한 물은 마음을 풀어준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다 씻은 아이를 목욕탕에서 붙잡고 있었다. 

"완소제굴, 미국 소고기 때문에 누구도 다치면 안 돼. 아까 벼락 칠 때 네가 한 말은 쫌 그래. 말이 씨 된다는 속담 알지? 진짜 그러면 무섭잖아."

아이는 딴청을 부렸다. 샤워기로 나를 공격하며 물대포 맞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안 좋지. 근데 물대포 쏘기 전에 분위기가 엄청나게 더 무서워. 심장이 터질 것 같거든. 엄마도 대학교 다닐 때 맞은 거라서 생각 잘 안 나. 물이 너무 차가웠어. 그래서 춥고, 기분 나쁘고, 성질 많이 났지."

자려고 누웠을 때는 커튼까지 뚫고 들리던 빗소리가 잦아들어 있었다. 

"엄마, 김솔 알지?"
"어."
"김솔을 토요일 날 촛불 문화제에서 만났잖아. 그런 데에 안 올 줄 알았는데 만나니까 좋더라. 오늘 교실에서 마주쳤거든. 우리 둘이 친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아, 이것은 우리 아이 최초의 동료애나 동지 의식인가. 비 오고 천둥 치는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막말을 쓰기도 하는 아이지만, 이제는 엄마라고 힘으로만 굴복시키지 못할 '의인'이 된 거다.   

왜 쇠고기 재협상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보는 아이들.
 왜 쇠고기 재협상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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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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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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