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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많이 발전했다. 높고 빽빽한 것 밖에 모르던 도시가, 도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녹지도 조성하고, 디자인 서울이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도시 미관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때문인가? 아직도 서울의 가치를 의심하는 이들을 일깨워주려는 듯, 하루가 멀다 하고 집값이 오르고 있다. 도심 한복판 종로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온 필자도 서울을 좋아한다. 눈을 감고 떠올려본 나의 고향 서울은 관광책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멋진 풍경 사진의 이미지처럼 꽤 살기 좋은 곳이다.

내 고향의 이면, 구룡마을

구룡역에서 찍은 타워팰리스 사진
▲ 긴생각을 위한 짧은 여행의 시작점, 구룡역 구룡역에서 찍은 타워팰리스 사진
ⓒ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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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금만 돌아보면 서울은 상당한 모순 덩어리다. 당장 서울역에 가서 KTX 역사와 지하철 서울역에 모여 있는 노숙자들만 보아도 서울의 이면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가본 곳도 이러한 서울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장소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 초라해 보이는 구룡마을의 모습은 서울의 모순성을 상징하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한 번쯤 들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곳을 방문하게 된 최초 동기는 학교 수업의 보고서 작성이었다. 방문 전 열심히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가난한 동네, 주민등록 안 되는 주민들, 소유권 분쟁 등의 기사가 주된 내용이었다. 

내가 찾아 본 내용들을 간단하게 이력서로 정리해보았다.

이름(본명) : 포이동 266번지 (본명 : 포이동 200-1번지)
생년월일 : 1981년 12월생
규모(주민): 2000여 가구 (4000여 명)
편의시설 : 구멍가게, 공동화장실(퍼세식), 주차장, 공중전화기 
특이사항 : 주민들이 주민등록에 등재 되어있지 않음, 집마다 토지변상금이 부가되어있음 

낯선 곳에서 만난 친구들

사전 지식도 충분히 갖추었으니 이제 탐방 시작이다. 간단한 구룡마을의 이력서를 머리에 넣고 가는 나의 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막상 마을에 도착하고 나니, 마을 모습과 주민들에 대한 사전지식은 큰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에 나 자신이 위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위축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마을을 돌았다. 마을 전체를 한 바퀴를 돌고나니 조금 여유가 생기는 듯 했다.

오밀조밀 사이좋게 모여 있는 마을의 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를 낯설게 보는 것 같던 주민들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을에 대한 이것, 저것 들을 알아보기 위해 마을 어르신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도 잘 몰라"는 말들만 반복하신다.

외지인을 경계한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을 한 번 둘러보고 돌아간다는 게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을 어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만났다.

"얘들아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에 "아저씨는 누구세요?"라고 묻는 아이들은 내 수첩에 있는 케로로 스티커에 관심을 보였다. 상이 있는 놀이는 재미가 배가 되는 법이다.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케로로 스티커를 걸고 달리기 시합을 했다.

별것도 아닌데 흥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 학교랑 공부방이랑 어디가 재밌냐는 둥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금세 해가 뉘엿뉘엿한다. 오랜만에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아서인지 내가 더 재미있게 놀았다. 문득 '가난한 동네에 산다는 것'은 '내가 종로구에 산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봤다.

해가 저물어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 약수터에 가보고 싶었기에 꼬마 친구들을 남겨두고 마을 약수터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이 이쪽 길이 맞나요?"라는 질문에 "응 그쪽으로 가는 길이 맞는데, 저녁엔 산에 올라가지 말어. 얼마 전에도 누가 산에서 목메 죽었어"라고 답해 주셨다. 호기심보다는 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약수터의 걸음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이 특별한 한 가지 이유, '불안한 행복'

이런저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행복함이 깃들어있는 평범한  마을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행복'이라는 점에서 이곳은 서울의 다른 장소들과 중요한 차이점을 지닌다.

1981년 12월 강제 이주된 넝마주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룡마을은 85년까지 자활근로대라 불리는 이곳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85년 이들이 강제 해산한 이후 정부는 이들을 무단점유자로 간주하고 거주주민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89년부터는 매년 토지변상금을 고지하였는데 가구당 최소 5000만원 이상에 해당하는 고액으로, 이 때문에 비관하여 자살한 마을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오늘도 자신들의 행복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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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빛 씩씩함으로 피어난 행복과, 언제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구룡마을식 전원주택 .
ⓒ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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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실제, 두 얼굴의 서울에 대해

이제 서울이 갖고 있는 장소의 이면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장소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공간이다. 즉 담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담아낼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소가 아니다.

이러한 장소의 의미에서 새로운 장소의 개념인 '영역'이 파생된다. 영역은 소유를 담아내는 장소적 개념인데, 이러한 소유는 부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장소는 영역화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배타성을 포함하게 된다. 여기에 '디자인 서울이다', '코스모폴리탄이다'라는 개발의 논리가 더해져 영역에 대한 약육강식이 정당화된다.

구룡마을은 포이동에 대한 주민들의 점유권과 개발의 논리가 맞서고 있는 지역이다. 개발의 논리의 기저에는 사유재산권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가 있다. 구룡마을이 위치한 지역은 국가 소유의 땅이기에 이를 개발하는 것은 소유권자인 국가의 권리이고, 소유권자인 국가의 허락 없이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불법 점유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합법적인 사회운영의 원리를 논하기 이전에 최초의 문제 발생에 대한 정부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이 일의 순서일 것인데, 해당 기관들은 개발의 논리와 사유재산권의 논리를 들어가며 이들의 불안한 행복을 방조하고 있다.

화려한 이미지의 서울, 그 이미지 자체는 분명 진실도 거짓도 아닌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기에 성급하게 서울의 화려함에 우리의 행복감을 이입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나의 고향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품을 떠나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짧지만 생각은 길었던 새로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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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논리와 사유재산권으로 빛바랜 정의’ 이곳은 누구를 위한 장소일까? .
ⓒ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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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구룡마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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