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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양화당은 병자호란 후 인조가 거처하던 곳이다.
▲ 양화당. 창경궁 양화당은 병자호란 후 인조가 거처하던 곳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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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최명길이 독대를 청했다.

"신이 벽제로 따라가서 기회를 엿보려고 합니다."

모화관을 출발한 사신은 홍제원에서 점심을 들며 휴식을 취하고 벽제에서 1박하는 것이 관례였다. 사신이 벽제관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화끈하게 접대하고 미진한 부분을 요리하겠다는 뜻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저들이 요구하는 지원병은 거절할 명분이 없고 과인을 들어오라는 것은 공갈로 들린다."
"칙사를 전송할 때 동서의 반열(班列)에 걸출한 조정 인사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뜻을 굽혀 그들을 우대하는데 조정 대신들의 태도가 이런 식이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벌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청나라 사신은 분명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고압적인 태도는 분노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임금은 자존심을 버리고 깍듯이 대접했다. 자신의 생명과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는 세자의 안위를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 그것이 국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나라를 흠모하는 사대부들은 청나라 사신을 벌레 보듯 했다. 백성들은 그들을 원수처럼 대했다. 칙사대접 하는 임금을 못마땅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공통된 정서였다.

창덕궁 정전이다
▲ 인정전. 창덕궁 정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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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인조가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사신은 돌아갔으나 우리가 떠안은 짐은 산적해 있다. 이 어려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경들은 기탄없이 말하라."

"저들이 말했던 입조(入朝)하라는 일에 대하여 신하로서 누군들 우려하지 않겠습니까. 신은 이 일이 올해에는 반드시 없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최명길이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신하의 입장에서 어떻게 군부(君父)를 불측한 곳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적의 수도 심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익녕부원군 홍서봉이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뜻을 굽히고 치욕을 참으면서 원수가 시키는 대로 했던 것은 동궁의 안위를 걱정해서였고 돌아오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이제 저들의 행태로 보아 가망이 없으니 우리 국가라도 보호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영중추부사 이성구가 세자를 버리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여 차선책을 강구자고 제안했다.

"중추부사의 말이 옳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심양에 들어갔다 옥체에 의외의 변고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홍서봉이 맞장구를 쳤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전하께서 머무를 곳을 남한산성과 강화도 중 한 곳으로 결정하여 미리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김류의 생각은 만일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도망갈 곳을 미리 정하자는 것이다.

"강화도와 남한산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기 때문에 정축하성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남의 성지를 이미 수선하였으니 후일의 진양(晋陽)으로 삼아야 됩니다."

부제학 김반이 파천(播遷) 후보지로 영남을 추천했다. 군사적 열세에 놓여 있는 조선의 전략상 중부 이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대부들은 삼전도 항복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금의 항복을 정축하성(丁丑下城)이라 불렀다. 즉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정축년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에 있다.
▲ 수어장대 남한산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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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일을 도모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옛말에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소문나는 것은 위태롭다'고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적국에게 이미 시작했다는 형세를 먼저 보이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승평 부원군 김류가 보안 유지가 급선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일은 철저한 보안 속에 비밀리에 추진하자는 것이다.

"나라가 이 모양이니 죽느니만 못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죽은 사람이 부러울 뿐이다. '바꾸어 세운다'는 말은 공갈에서 나온 것이니 깊이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귀화한 사람을 돌려보내라는 것도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죽음을 무릎 쓰고 돌아온 백성들을 도로 잡아 보내라 하니 어찌 백성의 부모 된 도리이겠는가."

인조가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숙연한 공기가 좌중을 휘감아 돌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인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경이 저들 지역에 오래 있었으니 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자세히 말하라."

임금이 박황을 지적했다. 박황은 가함대신으로 심양을 다녀온 바 있다.

"심양의 사정은 보안을 철저히 하여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마침내 불측한 화가 있을 것이니 일찌감치 대비를 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신이 심양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범문정의 말을 은밀히 전해 주기를 '산성에서 나왔을 때 아들로 바꾸어 세우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망측한 말입니다."

"범문정이 말한 것은 무슨 일 때문인가?"

인조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자신을 폐하고 세자를 세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면 현재 진행형이지 않은가.

"징병에 관한 일을 거절한 이유로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조는 한숨을 놓았다. 군사문제라면 이미 보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신의 의견으로는 저들이 또 군사를 요구하면 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구가 이에는 이로 맞서자고 강경책을 내놓았다.

한판 붙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인조

"이 문제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우리 나라가 저들과 관계를 끊을 계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거취를 뚜렷이 보여서는 안 된다. 원접사 이경증이 저들과 자못 친숙해졌으니 그들이 의주에 도착하여 머무는 날, 그로 하여금 군병의 실제 숫자를 은밀히 묻게 하라."

인조의 얼굴에 의지가 그려졌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최명길이 머리를 조아렸다.

"칙사가 관소에 있을 적에 군사의 수효에 대해 미처 묻지 못한 것이 이제야 후회가 된다."

인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강화도에 토성을 쌓고 병선을 전투용 선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조의 의중을 살피는 데 김류는 동물적인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경의 말이 옳다."

"경기수사로 하여금 거북선을 제조하여 시험해 보도록 하려고 하는데 구선(龜船)은 이순신이 만들어 사용했던 것입니다."

최명길이 거북선 건조를 건의했다.

"시행하라."

조정의 공기는 급선회했다. 반전이다. 이제까지 수동적인 방어책이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의 전환이다. 한판 붙자는 것이다.


태그:#창경궁, #창덕궁, #병자호란, #인조, #범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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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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