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7대국회가 끝나고 18대국회가 열렸다. 명실상부한 제1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에게 축하인사를 보낸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통합민주당은 2008년 5월 29일을 4시를 기점으로 '강한 야당' 아닌 진정한 ‘구경꾼’이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에 관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 강행 발표가 있었던 5월 29일 4시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은 ‘통합’된 국민 뜻을 이어받는데 실패했다. 그리고선 뒷북치듯 뒤늦게 강력투쟁을 외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반발하고 있다. 18대국회는 그런 씁쓸한 모습을 하고 국민께 다가왔다.

 

광우병 논란으로 거듭 국민 비판에 직면해 온 미국 쇠고기 수입 계획이 그대로 관철되었다. 한편, 5월 내내 그토록 국민이 ‘통합’된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었건만 민주당은 결코 실질적인 응답을 하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을 향해 앙탈-표현이 다소 민망함을 이해해달라. 적절한 표현을 찾다보니 그랬다-을 부린 것 말고는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현재로선 막 태어난 당보다 더 나약해 보이는 제1야당이 안하무인식 행동으로 일관하는 새 정부 그리고 여당과 제대로 맞붙을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미안하게도, 18대국회에서 민주당이 들러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통합민주당, 구경꾼 한 번 했으면 됐으니 들러리마저 되지 말라

 

필자는 우선 민주당이 자신들을 지칭하고 표현하는 공식 발언과 주장을 확인하려고 한다. 당 정체성, 그러니까 존재 이유를 공개 선언하는 '전문'과 그것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말하는 '강령'과 '정책'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당의 태생 배경과 그 본질을 파악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에 해당하는 부분을 살펴봄으로써 그 행동반경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체성을 담은 당 '전문' 내용 일부를 살펴보자. 구체적 활동 방향보다는 '우리는 누구이다'를 말하는 선언적 의미가 가능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당의 활동 범위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요즘처럼 큰 사회적 현안이 있을 때는 당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오히려 그때그때 내뱉는 발언들보다 더 큰 무게를 지닌다. 당 정체성은 결국 그 당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가칭)은 항일독립운동의 애국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정신, 4월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온 반독재-민주화정신의 숭고한 가치들을 계승․발전시킨다. 우리는 또한 그 동안 추진해온 정치사회개혁과 경제정의실현, 그리고 남북화해협력의 성과를 계승한다.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구심체역할을 수행했던 민주․개혁․평화․미래세력의 정치적 결사체로서, 서민과 중산층의 권익을 적극 대변하고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며,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진정한 국민의 정당임을 선언한다."(이하, 생략)

 

민주당이 주장한 역사적 정당성은 그렇다 치고,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며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선언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5월 29일 4시라는 상징적인 '마지노선'이 허무하게 스러지기까지 5월 내내 민주당이 보여준 행동은 당 정체성은 물론 강령, 정책비전과도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민주당 두 공동대표의 인사말을 살펴보자. 우선, 공동대표 중 한 명인 박상천 대표 인사말 일부를 보자. 참고로, 박 대표는 민주당 정체성이 중도개혁 성향이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실천 방안을 언급했다.

 

"하나는 한나라당의 권력독점이 가져올 피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권력독점이 권력남용과 부패를 낳고 소외계층보호를 위한 정책은 실종되어 양극화가 심화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중도개혁정당인 통합민주당이 한나라당을 견제하고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대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보수정당이 보수를 견제할 수 없고, 소외계층을 보호해낼 수 없습니다."

 

자, 무엇이 보이는가? 공식발언 중에서도 공식 발언인 당 대표 인사말에서 ‘통합’된 국민의견을 받들 의지가 보이는가? 인사말 내용이야 한없이 좋아 보이지만, 2008년 5월 29일 4시를 전후로 이 같은 당 대표 인사말은 18대 국회 시작과 더불어 ‘자동폐기’(?)될 처지에 놓여있다.

 

다음으로, 또 다른 공동대표인 손학규 대표 인사말 일부를 보자.

 

"단지 견제론만으로 국민들에게 우리에게 지지를 호소하지는 않겠습니다. (중략) 아울러 우리는 통합이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에 묻혀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국민들이 염려하는 바 혹여라도 통합민주당이 특정지역에 편중되고 특정지역에 안주하는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자, 이번엔 또 무엇이 보이는가? 지난 17대 대선 때부터 사실상 민주당 핵심 구호로 삼아온 ‘견제론’이 여전히 위태롭게나마 자리잡고 있는 걸 보니 다소 씁쓸하다. 게다가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에 묻혀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에는 차라리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5월 20일 4시’가 이 같은 실소의 이유를 뒷받침해준다.

 

이유야 어찌됐든, 민주당은 사실상 지난 정부 여당과 다름없는 당이다. 그런 당이 이제 18대국회 제1야당이 되었다. 두 공동대표 인사말은 물론 당 전문에서 보듯, 이제 우리는 민주당에게서 온 몸으로 울려대는 ‘진짜 발언’을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중도인지 아닌지, 개혁인지 아닌지 또는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해볼 때가 되었다.

 

통합민주당, 국민 '통합' 운운하기 전 '통합'된 국민 뜻을 가슴에 새겨라

 

지난 17대 대선에 이어 18대 총선까지 연달아 ‘패배’의 쓴잔을 맛 본 여당 출신 제1야당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두 번의 고배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5월 내내 뒤뜰에서 거닐기만 했다. 5월 내내 국민들이 앞장서 밝은 촛불을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전혀 동참할 뜻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 위생조건에 관한 장관 고시 강행이 발표된 이후, 민주당 누리집 곳곳은 수없이 많은 비판글들로 도배되고 있다. 자유게시판은 물론 당원 토론방 역시 아쉬움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비판글들로 가득차고 있다.

 

장관고시 강행 발표에 이어 동시다발적으로 민주당을 향해 터진 비판들 내용을 보면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는 이제라도 민주당이 진정성있고 유의미한 참여를 해주기를 바랐고, 또 어떤 이는 이제와서 민주당이 국민 뜻에 동참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며 격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지금 당장은 민주당에라도 안타까운 국민 마음을 풀어놓고 싶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여당 출신에 이제는 제1야당인 민주당을 향한 묘한 국민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국민 뜻에 제때 부응하지 못한 민주당은 사실상 세 번째 고배를 마신 셈이 되었다. 장외투쟁이든 뭐든 이미 세 번째 고배를 마신 뒤의 행동일 뿐이다. 물론, 18대국회가 막 열린 마당에 벌써 물러나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민주당이 어떤 당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게다.

 

국민은 5월 내내 예비 제1야당 민주당 대신 '야당 목소리'를 내주었고 그것은 그만큼 민주당의 의미있는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국민은 사실상  할 일을 다했다. 제1야당 민주당이 답할 차례다.

 

통합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3가지 과제 

 

필자는 5월 29일 4시를 전후로 대한민국 국민이 안하무인격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와 여당에게 '쓴잔'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 이제 드디어 '쓴잔'을 마시고 만 국민은 그래도 제1야당인 민주당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묘한 기대를 보이고 있다. 어쨌든 민주당은, 믿거나 말거나, 민주화 정부 10년 경력을 지닌 제1야당이 아닌가 말이다.

 

만일, 민주당이 이 시점에서 국민 여론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여기서 더 한층 높은 수준으로 '진짜 제1야당'이 되려할지 모른다. 민주당을 아예 제쳐놓고서 말이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민주당 스스로 상상해볼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 일어난다면, 지금 같은 촛불문화제 수준을 넘고도 남을 게다. 물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미 국민들이 보여주었으니 굳이 더 말하지 않겠다.

 

그래서, 통합민주당에게 굳이 몇 가지를 충고하고 싶다. 미국산 쇠고기 위생 조건에 관한 장관 고시 강행이 발표된 것과 동시에 당 누리집이 각종 비판글로 도배되다시피 한 마당에 부디 이 글을 심각하게 생각해주기 바란다.

 

필자는 앞서 통합민주당이 18대국회에서 들러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큰 선거 두 번 모두 패배했고 심지어 국민 뜻을 이어받는 데서도 ‘실패’했다. 이제 통합민주당이 진짜 제1야당 지위를 실제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선, 민주당은 민주화 정부 10년 세월을 지낸 경력을 발판삼아 국민 뜻이 하나로 표출되는 자리에는 반드시 ‘동참’하는 ‘통합’정신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건 ‘거리정치’를 하라고 국회 밖으로 내모는 게 아니다. ‘현장정치’ 정신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국민들을 민주당 의도대로 '통합'하려는 자세는 버리고 오히려 '통합'된 국민 뜻에 제 때 제 때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또한, 민주당은 현 공동대표 체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다음 지도체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기 바란다. 당 대 당 통합을 통해 탄생한 현 민주당은 과거 열린우리당의 탄생 배경과 허무한 결말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스스로 거부했던 별명인 '도로'열린우리당이라는 별명을 스스로 받아들인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제1야당이 된 민주당은 겉으로야 위치에 걸맞은 대단한 행세를 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두번 연달아 고배를 마시고 국민심판에게까지 '경고'를 받은 민주당은 현 지도부 체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과거 민주당 출신 대표와 한나라당 출신 대표가 어정쩡하게 형성하고 있는 쌍두마차(?) 체제는 민주당 신뢰성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스스로 말했고 상당수 국민들이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민주개혁세력 재결집 요청에 민주당이 이제 합당한 답변을 해주어야 한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어 꼭 짚고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편, 민주당은 한 나라의 경제, 사회, 심지어 나라살림을 좌우하는 정치까지 영향을 미칠 한미FTA에 관한 공식 당 의견을 다시 점검해가야 할 것이다. 5월 내내 국민들이 미국 쇠고기 문제에 집중했지만, 18대 국회에 들어선 이상 국민들은 이제 한미FTA를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또다른 논란에 빠져들 수 있다. 한미FTA를 둘러싼 국민 의견이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미FTA를 비판하는 국민 의견이 상당하는 점과 달리 손학규 (공동)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FTA비준 가능성을 언급하고 다니고 있다. 민주당이 진정 차후에도 국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수 있을지를 놓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하긴, 민주당 '전문'에도 민주당의 정체성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우리는 세계화시대에 능동적으로 부응하여 지속가능한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활동과 공정한 시장질서를 수호함으로써 성장과 분배가 조화되는 선진경제․복지국가를 지향한다. 우리는 또한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다양한 교육과 문화의 강국 건설에 매진한다."

 

민주당은 보수 정당을 표방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보 정당은 더더욱 아니다. '세계화'를 언급하고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한다는 대목은 민주당 당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 자체가 대한민국 국민 뜻과 괴리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과는 다른, 그러니까 국민 뜻을 담아내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야당이 되어야 할 민주당이 (국민 뜻을 담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에 대한 회의가 든다. 안 그래도 연타를 맞으며 비틀거려온 민주당을 보려니 그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18대국회는 한미FTA와 함께 시작한다. 미국산 쇠고기 위생조건에 관한 장관 고시 강행이 결정된 이상 번복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이제 한미FTA 국회 통과를 향한 정부와 여당의 걸음걸이는 더욱 빨라질 게다.

 

물론, 미국 상황도 고려해볼 때 한미FTA의 국회 통과에는 상당히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18대국회는 한미FTA에 발목이 잡혀 수많은 민생법안들이 볼모가 될 가능성이 많다. 현 정부가 (자신들이 추진한 것도 아니면서)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삼으려할 게 뻔한 한미FTA를 놔둔 채 민생현안에 제대로 부응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제1야당 민주당이 18대국회에서 '진짜 야당'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이제 민주당은 '현장정치'를 회복하고 현 지도부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한미FTA에 대한 당 공식 의견을 다시 조율해나가야 할 게다. 이같은 문제들을 제때 고민하지 않고서는 18대국회 제1야당 지위를 누릴 꿈은 애초에 국민에게 내주는 게 나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쉽게도 국민은 다들 바쁘다. 꼭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국민은 참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민주당에게 말한다. '민주당, 이제부터라도 뜨겁게 달아오르시렵니까?'


태그:#통합민주당, #18대국회, #제1야당, #한미FTA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