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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땅에 텃밭 일구고, 헌 옷가지로 허수아비 삼고, 햇볕에 빨래와 이불을 말리는 골목집 삶터
▲ 골목집 삶터 빈땅에 텃밭 일구고, 헌 옷가지로 허수아비 삼고, 햇볕에 빨래와 이불을 말리는 골목집 삶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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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구 화수동에 계신 아주머니가 우리 두 식구를 부릅니다. 저녁이나 함께 먹자며 부릅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찾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창영동에서 금곡동을 지나고 송림동을 거친 다음 송현동 너머 화수동으로. 이곳 화수동을 지나면 만석동이고, 더 가면 만석부두가 나오며 인천 앞바다가 펼쳐집니다.

인천 동구와 중구라고 하는 데는 퍽 넓은 데가 메운 땅입니다. 땅이 좁다고 느껴서 메웠을지 모르고, 땅은 안 좁아도 배 닿을 자리를 마련하고 나루터 둘레에 이것저것 짓고자 메웠을지 모릅니다. 착착착 네모나게 틀을 잡아서 공장도 짓고 집도 지으려고 갯벌을 메웠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많이 메운 갯벌이지만, 그래도 넓게 펼쳐진 인천 앞 갯벌. 이리하여 사람들은 영종도 둘레 갯벌을 메워 용유도와 하나로 붙인 다음 공항까지 짓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갯벌은 넓어서 송도 앞에 새도시를 짓고 청라지구에 또다른 새도시를 짓습니다. 참말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갯벌을 새로 메우고 또 메워서 30층도 아닌 50층짜리 새 아파트를 꾸준히 지어야 하는가 봐요.

큰길에서 몇 미터 안쪽으로 들어온 골목인데 무척 조용합니다. 고즈넉한 길을 거닐다가, 등이 다 까진 참새를 만났는데, 고양이한테 물렸다가 살아났을까요.
▲ 송현동 골목 큰길에서 몇 미터 안쪽으로 들어온 골목인데 무척 조용합니다. 고즈넉한 길을 거닐다가, 등이 다 까진 참새를 만났는데, 고양이한테 물렸다가 살아났을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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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시장을 지날 무렵, 우리가 걷는 이 길 옆으로 난 두 줄기 찻길에 다니는 차가 그리 많지 않은데, 차소리가 꽤 시끄럽다고 느낍니다. 버스 한 대가 지나갈 때, 자가용 한 대가 지나갈 때, 짐차 한 대가 지나갈 때 크고작은 소리가 나는데, 어느 차가 지나가든 차소리는 귀에 쟁쟁쟁 울립니다. 찻길을 마주한 자리에서 가게를 꾸리는 분들은 문을 못 열고 살겠어요. 시끄러워서 어찌 삽니까.

화수시장 앞에 닿니다. 조금 있자니 아주머니가 나와서 집으로 이끌어 줍니다. 골목 안쪽에 있는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린아이 둘이 마당에서 놀고 있다가 우리를 빤히 쳐다봅니다. 사진기를 아래로 내리고 슬그머니 한 장 찍습니다. 사진 찍는 줄 몰랐겠지? 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앉습니다. 창문을 엽니다. 집 앞에 있는 거리등불이 켜집니다. 어스름이 깔립니다.

옆지기가 말합니다. “인천에 처음 왔을 때, 다들 집도 작은데 꼭 담을 쌓고 있”더라고. 그런가, 하고 골목집들 생김새를 헤아려 보니, 참 그렇습니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모두 시멘트나 벽돌로 세운 울타리를 두르고 있어요. 도둑 때문에 그럴 수 있고, 요새는 한뎃잠이 아저씨들이 술에 체한 채 갑자기 들이닥치기도 하니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두 식구를 불러 준 아주머니네에서. 아주머니네 아이와 동생네 딸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 화수동 골목집에서 우리 두 식구를 불러 준 아주머니네에서. 아주머니네 아이와 동생네 딸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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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앞서까지 아파트에서 사셨다는데, 골목집으로 옮겨오신 아주머니한테, 옮겨오시니 느낌이 어떠냐고 여쭙습니다. “땅을 밟고 사니까 좋지. 아버지는 아파트에 사는 걸 비닐에 둘러싸인 채 사는 거라고 하시던데.” 아이들도 아파트 아닌 골목집을 썩 마음에 들어한답니다. 이 집은 처음에는 집임자가 자기 딸내미 주려고 요모조모 고치고 달고 했다는데, 이렇게 새로 꾸민 집에 뜻밖에도 아주머니네가 들어오게 되었고, 잘 꾸며진 시설들을 본 아이들이 그냥저냥 잘 받아들이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한 가지만 좋으면 다 좋다고 해. 우리 어른들은 다 좋아도 한 가지만 마음에 안 들면 그것 때문에 못 견뎌 하는데.”

저녁을 대접받고, 막걸리도 대접받습니다. 아주머니는 ‘자연분만 산부인과’를 알려줄 테니까, 집에서 애 낳을 생각은 말고 그리로 가 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먼 옛날이 아니라 지금 아주머니들, 또 할머니들은 거의 모두들 시멘트로 지은 병원이 아니라, 흙에 올린 한 층짜리 살림집에서 아이를 낳았을 테고, 그 시골 흙집이든 도시 골목집이든, 땅을 밟고 뛰놀도록 아이들을 기르셨을 텐데. “애들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으니 좋지. 아파트에서는 조심조심 다니라고 말해야 했는데.”

골목 안쪽에서도 이처럼 이불을 널어 놓을 수 있다면, 이곳은 퍽 살기 좋은 데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송현동 골목 골목 안쪽에서도 이처럼 이불을 널어 놓을 수 있다면, 이곳은 퍽 살기 좋은 데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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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어 놓고 있으나, 아주 고즈넉합니다. 동네가 조용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파트가 오히려 시끄럽습니다. 자동차 드나드는 소리, 자동차 빵빵 소리가 모조리 집으로 울려퍼집니다. 위층과 아래층 소리도 잘 울려퍼져요. 창문을 닫으면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지만, 아파트에서 문마저 닫아 놓으면 성냥갑에 갇힌 듯 갑갑합니다.

그동안 몰랐는데, 골목집에 있으면 훨씬 조용합니다. 큰길에서 고작 집 한 칸 안쪽으로 들어온 골목집에서도 차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이웃집에서 싸움질하면 이런 소리나 들릴 뿐, 아주 고요해서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들 아파트로 몰리고 아파트에 마음을 빼앗길까요. 조용함이 달갑지 않아서, 시끌벅적함이 좋아서, 게다가 몇 해만 버티면 집값이 껑충 뛰어올라서 앉아서 돈굴리기가 되니까, 아파트로들 가나요. 그렇게 돈굴리기가 되면 그 돈으로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기름값이 오르건 말건 자동차 실컷 몰 수 있어서 좋은가요.

“우리는 둘 다 집에서 일하니까, 아이를 낳으면 하루 내내 아이와 함께 있게 돼요. 우리야 굳이 보육원 같은 데에 맡길 일도 없지만, 맡기고 싶지도 않아요.” 아이를 맡아 주는 ‘탁아소’는, 잘 살리면 좋은 제도이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을 남한테 떠넘기는 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한테는 돈이 아닌 사랑을 주어야 하잖아요. 아이한테는 부모 명예가 아닌 고운 믿음을 주어야 하고요. 아이한테는 큰 집도 빠른 차도 아닌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주어야지요. 아이가 있으니 아이한테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며 즐겁고, 아이는 또 아이대로 우리 어른한테 사랑과 믿음을 돌려주면서 즐겁도록.

골목집마다 고이 키우고 있는 여러 가지 꽃들
▲ 골목 꽃 골목집마다 고이 키우고 있는 여러 가지 꽃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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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태그:#골목, #골목길, #골목집, #인천,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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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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