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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이 한국 연극 100주년을 기념하며 야심차게 준비한 오태석 작·연출의 대형신작 <백년언약>이 베일을 벗고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분단과 대립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조상의 슬기에서 찾고자 신화와 고전을 빌려온 <백년언약>은 고구려의 무당 '추남'이 억울하게 죽으면서 서현공 부인 품으로 들어가 신라의 김유신으로 태어나 삼국통일을 이룬다는 <추남 설화>와 <심청전>을 모티브 삼아,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한 여인의 질곡의 삶을 통해 1910년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역사를 담아낸 작품이다.

 

한국 연극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한 장민호(84), 백성희(83) 선생이 오태석 연출의 국립극단 작가 데뷔작인 <환절기>(임영웅 연출, 1968년) 이후, 40년 만에 다시 부부로 출연해 그 의미를 더한다.

 

 

100년을 담기엔 부족했던 100분

 

쓰러질 듯한 객차. 그 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열 서너 세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전쟁통에 새댁(백성희 분)은 경무대에서 근무한 까닭에 남편(장민호 분)을 잃고 뱃속의 아이도 유산한다.

 

그 후 남편의 소식은 깜깜하고 새댁은 생계를 위해 갖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이들과 함께 하는 <인애모자원>, 성매매도 마다 않는 <용산여인숙>, 미군들을 상대하는 기지촌 <클럽 아리조나>, 부서진 연탄을 재생하는 연탄집, 중국풍을 타고 모택동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중국인 의사와 함께 하는 <모 안과병원>를 운영하며 새댁은 끈질긴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꿈인 듯, 생시인 듯 남편이 나타나 땅굴을 통해 사람들이 내려올 것임을 새댁에게 알리고, 노란 버스 한 대가 DMZ를 통해 달려온다. 버스 안에는 북녘의 어린이들이 실려 있고, 버스기사는 다름 아닌 남편이다. 새댁은 고통 받던 동족을 따스히 감싸 안는다.

 

100분의 시간에 100년의 역사를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항력이었을까?

 

100년의 통사(痛史)를 짚어보고, 지나간 100년과 다가올 100년을 새롭게 만나게 하고 싶다는 연출가의 의지는 객석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공연장의 공기 속으로 흩날린다. 오태석 연출 특유의 상징과 비약이 관객과의 접점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한국전쟁 전후를 중심으로 펼쳐진 시간적 배경은 전쟁을 겪지 못한 대부분의 관객에게 소구력을 가지기 어렵고, 민주화 운동 등 현대사는 통째로 들어내 100년의 시간을 오롯이 담아냈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엿보인다. 모자원, 기지촌, 모택동의 사진이 걸린 안과병원 등의 공간적 배경도 생경하긴 마찬가지다.

 

 

27일 열린 프레스 리허설에서 오태석 연출은 아직 극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라 밝혔다.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백년언약>은 한국 연극과, 한민족의 미래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는 중량감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 연극이 우리의 삶과 역사, 현실을 비추어 주는 훌륭한 문화적 매개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백년언약>이 회를 거듭할수록 다듬어지고 깊어져, 한국 연극 100년사에 남을 웅숭깊은 사유의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6월 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평일 19:30, 토 15:00, 19:30 / 일 15:00. 
으뜸 7만원, 버금 5만원, 딸림 3만원, 버금딸림 2만원 (사랑티켓 참가작) 
공연 문의 (02)2280-4115~6


태그:#백년언약, #국립극단, #오태석, #장민호, #백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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