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 기사 이미지에 등장하다

 

오늘 아침(28일) 집으로 돌아왔을 땐 거의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럼에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만지고 있다. 어쨌든 파란만장한 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오마이뉴스>에 접속해 특별취재팀의 기사 ''이명박 아웃'... 스스로 '닭장차'에 오른 시민들'을 보다가 물잔을 엎을 뻔 했다. 내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뒷모습이다. 촛불문화제에서 자주 만났던 중2 여학생이 혼자서 현장을 맴돌고 있었고 가두시위 참여까지 한다기에 아무래도 불안해서 행동을 같이 하다가 찍힌 사진이었다.

 

당차다고 해야 할지,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전경이 눈에 보이자 내 옆에 있던 아이는 주저앉아 손피켓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아이를 뒤로 데려갈까 싶었지만, 순순히 응할 아이가 아니었기에 나도 주저앉아 버린 것 같았다. 대신에 나는 디카를 들고 전경을 찍었다. 언제서부턴가 나는 전경 대열을 자주 찍게 됐다.

 

그 대열을 볼 때마다, 나는 숨이 막힌다. 이게 어떻게 2008년 대한민국의 모습일까? 그들이 화염병을 들었는가? 하다못해 돌멩이라도 들었는가? 들어봐야 손피켓이다. '비폭력'이라는 시위대의 구호는 맞는 이야기다.

 

물론, 그들은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지시에 따를 뿐이다. 그런데 여고생을 연행해선 조사를 한다는 핑계로 그 다음날 아침까지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학교도 가지 못하게 한 것들 감안해 보자. 결국 네티즌들의 비난에 다음날 오후에 풀어주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일들이 나날이 반복되니, 인터넷에서 경찰이나 전경에 대한 비난이 제기되는 것이다. 안타깝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들도 어쨌든 인간일 테니 저런 일을 저지르거나 겪고서 마음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저것이 바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입장의 비애일지도 모른다.  

 

바라봐야만 했던 '플라자 호텔'에서의 서글픔

 

이날(27일) 시위대가 '우왕좌왕'하던 것이 노출된 결정적인 장소는 '명동'이었다. 엉겁결에 따라갔지만, '아차' 싶었다. 명동은 포위당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입구를 막고 롯데 백화점에서의 큰 길을 막으면 시위대로서는 사면초가다. 명동성당? 시위대가 그곳을 향하도록 내버려둘까. 그래서 시위대는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시위대 중 앞장선 일부는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명동에서 우왕좌왕했던 일부 시위대는 삼삼오오 그 뒤를 따라 플라자 호텔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시위대보다 더 많은 전경이 그들을 포위하면서 '연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난 플라자 호텔 앞에서 닭장차에 시위대가 한 사람 한 사람 태워지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민주시민 석방하라"를 외쳐도, "평화시위 보장하라"를 외쳐도 소용없었다.

 

그 이후에 들은 소식은 '도로를 막은 것'이 '집시법 위반'으로 연결됐다는 것이었다. <오마이뉴스> 해당기사를 보니 남대문경찰서장은 "정상적인 시민들은 차가 다니는 길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시위대 중 일부는 신호등에서 '녹색 불'이 켜질 때마다 횡단보도를 왔다 갔다 하는 행동까지 했다. 물론,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다.

 

그 연행 작전이 끝난 이후, 플라자 호텔에 있던 일부 사람들은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돌발 변수는 바로 '비'였다.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향한 곳은 '시청역 역사'였다. 물론, 청계광장에서의 일부 시위참가자들은 청계광장이 갖는 '상징'도 중요하다며 그곳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의 뜻, 존중해주는 것이 마땅했다. 원하는 사람만 '시청역 역사'로 향했다.

 

 

시청역 역사에서의 '프락치 소동'

 

언제서부턴가 시위대와 누리꾼 사이에선 '프락치'를 강하게 의식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경찰 정보과 형사들이 시위대로 위장해 가담한 뒤에 엉뚱한 구호와 위치 유도로 시위대의 혼란을 유발한 뒤 전경과 충돌하게끔 한다는 소문이었다.

 

시청역 역사에 모인 사람들은 그 '프락치'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이 목격했거나 경험했다는 '프락치 이야기'를 내놓기 시작했고, 실제로 시청역 역사에서도 그런 소동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지난 25일 일요일 오전 집회와 마찬가지로 엉겁결에 '사회자'가 돼 자유발언 진행과 분위기 환기를 맡게 됐다. 그러던 도중, 소동이 일어났다. 한 시위참가자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여고생의 연락처, 부모님의 연락처까지 물으면서 '프락치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나중에 이르러 오해였음이 드러났지만, 이 '프락치 소동'은 시위참가자들이 경찰을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 그리고 경찰의 대처에 얼마나 큰 위기를 느끼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나중에 '오해'임이 밝혀지고 나서,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물론, "지금 모두들 예민하니 오해살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시청역 역사에서의 자유발언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경찰에 이토록 허망하게 당하지 않을 수 있을지"라는 촛점에 맞춰졌다. 별다른 조직 없이 일반시민의 참가로 구성되는 집회와 시위이기에 '프락치' 등에 쉽게 허둥지둥 무너져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많았다. 현재의 20대 대학생은 태반이 시위나 집회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대응도 어렵다는 이야기 역시 많았다.   

 

 

지하철 첫차가 다닐 때까지 나름대로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시청역 역사에서의 마무리 집회는 대화와 연대로써 끝났다. 집회에 2번 이상 참여한 참가자들 중에는 구면인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서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뜻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뢰가 쌓였고 이것이 밀도 있는 대화와 연대로 이어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지금 연행된 참가자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연행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이 어떻게 대응하든 우리는 촛불과 손피켓의 '평화시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시위' 유지할수록 국민은 '강경진압' 분노할 것

 

시청역 역사에 모인 사람 중에는, 즉석에서 형·동생 사이가 된 22살된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촛불집회와 가두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인 뒤에 우연히 플라자 호텔 근처를 지나다가 전경이 시청 광장에서 시위참가자들을 연행하는 광경을 보곤 너무 어이가 없어, 울화가 치밀었고 그래서 시청역 역사에 함께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경우를 보면, 뭘 생각할 수 있을까? '비폭력'으로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경찰이 '강경진압'으로 대응할수록 시위 참가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억누를 수록 타오르려 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다. 경찰은 왜 그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러니, 시위는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매일 이어지는 것이다.

 

'시청역 역사'를 지켜본 M일보 기자에 대한 '경고'

 

다소 불안한 요소 하나가 있었다면, 시청역 역사에서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과 토론을 꼼꼼하게 적는 일간지 기자의 존재였다. 여기서 나는 진행자로써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그 기자와 명함을 교환하고 나서 깨달았다. 그는 보수언론 M일보의 기자였던 것이다.

 

이 글을 빌어 그 기자에게 한마디 남기고자 한다. 포털사이트에서 그 기자가 남긴 글을 검색해보니 '촛불집회'에 대해 전형적인 M일보의 논조가 담긴 기사를 작성했던 것을 확인했다. 그 논조가 해당 기자의 진심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

 

경솔하게 그의 실명을 공개하는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 당시의 분위기와 대화를 엉뚱하게 호도하는 기사가 등장한다면 나로서는 25일 일요일 집회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좌시하지 않을 방법'을 알고 있기에 남기는 경고이니, 그저 가볍게 흘려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켜봤다면 알았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동고동락'을 계기로 하나가 돼, 격론을 나누면서도 어쨌든 하나된 마음으로 사회를 걱정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말이다. 그 모습, 그것은 왜곡된 보도가 오히려 더욱 굳게 만들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광우병 쇠고기, #이명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