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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부부 이야기
 
남편은 청개구리인가? 남편이란, 아내가 하는 말은 도통 못 알아듣고 뒷북치는 사람인 듯하다. 남편이란, 아내가 원하는 것은 결코 한 번에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인 듯하다. 아내가 보기에, 남편이란 사람은 아내를 잘 챙겨주는 '남편'이 아니라 자기 영역에서만 노는 '남 편'인 것만 같다. 남편은 하루라도 구박을 받지 않고서는 좀이 쑤신다.

 

아내는 명탐정인가? 회사 여자 동료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아내에게서 전화를 받은 남편은 조용조용 '으응'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전화 저쪽에서는 금세 '누구랑? 여자야?'하고 되물어온다. 무어라 설명할 틈도 없이 남편은 사실대로 '으응'하고 같은 대답을 한다. 남편은 보이지 않는 아내에게 뭐 하나라도 감출 생각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하루해가 넘어갈 때쯤 걸려오는 아내 전화를 받으면, 이제 막 사람들과 고깃집으로 포장마차로 '진짜 업무'를 하러 가는 남편은 사실 그대로 밝힐까 말까로 한동안 고민한다. 그러는 사이, 전화 건너편에선 곧바로 '주문'이 들어온다. '들어올 때 이거, 이거 사 와.' 무어라 변명할 틈도 없이, 남편은 '으응. 그러지, 뭐'하고 대답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도 저녁에만 잠시 할 수 있을까 말까 할 '진짜 업무'는 늘 뒷전으로 밀린다.

 

<아내가 꼭 읽어야 할 남편생태보고서>를 읽다보니, 아내와 남편 사이에 오가는 풍경이 이렇게 스윽 눈앞을 지나간다. 사실 이런 예상 장면은 다 이 책에서 참고한 것들이다. 결혼정보회사를 다니는 이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은이 김상득은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부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에 거의 도사 수준이다.

 

어차피 밀릴 수밖에 없는 말주변 탓에 묵묵부답인 남편들

 

"여자는 남자에게서, 남자는 여자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보완하고 싶어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머리말 삼아 재밌게 글을 시작한 지은이. 그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이어받아 '아내는 나의 거울입니다'라는 말부터 꺼내든다.
 

"어쩌면 아내에게는 사랑이 밥이고 남편에게는 밥이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 사랑 때문에 아내는 미운 남편에게 더운밥을 해 먹인다. 결국 사랑이 밥 먹여 주는 셈이다."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1년 반 정도 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모아 출간했다는 <아내가 꼭 읽어야 할 남편생태보고서>. 대개 자기 자신을 잘 챙겨보지 못한 남편들의 무덤덤함을 같은 남자인 지은이가 대신 아내들에게 일러바치기로(?) 작정했나보다. 

 

어디서부터 읽어도 남편들의 단점이 속속 드러난다. 4장으로 구분하여 달아놓은 제목도 참 '남편' 출신답다. 남편들이 집안과 집밖에서 보이는 태도의 차이를 따져보질 않나(1장 '서식장소), 휴일, 명절, 휴가 그리고 기념일처럼 모처럼 식구가 함께 할 자리에서 오히려 점수 잃기 쉬운 남편들 모습(2장 '활동시간')을 한꺼풀씩 드러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여자인 아내에게는 어차피 밀릴 수밖에 없는 말주변 때문에 묵묵부답일 때가 많은 남편들 습성이 조목조목 드러난다(3장 '고유습성'). 같은 공간에 살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지만 결국엔 '서로 떨어져 못사는 한몸'임을 확인하는 부부 관계도 재확인해본다(4장 '동거 관계').

 

소머즈 귀에, 셜록홈즈 뺨 치는 명탐정 실력에, 한꺼번에 몇 가지 일도 거뜬히 해내는 괴력에 속사포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말 많은' 아내. 그런 아내 위에 군림하려는 남편은 여지없이 이 책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물론 그게 다 남편 챙기기 선수인 아내 덕분에 '해피엔딩'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편들이 조금만 더 아내 맘을 챙기고, 아내가 조금만 더 남편 궁둥이를 토닥여 주면 될 일이다.

 

말 잘 못 알아듣는 남편과 그런 남편 '사람 만들려는' 아내

 

'남편생태보고서'라고는 했지만, 결국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대방을 다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은이가 '아내는 나의 거울입니다'라며 말문을 열었을 때 마지막 말은 아마도 아내들을 위해 '남편은 나의 거울입니다'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웃기기보단 차라리 감동스럽기까지 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이 책에서 어느 누가 배우자 공격할 '무기'를 발견하려들까 싶다. 무심하기 짝이 없고 아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사람 만드느라'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 아내는 서로 방법은 달라도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은이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책 제목을 차라리 '아내습성보고서'라고 고쳐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남편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을 조목조목 들쳐보려니 '큰 애기'같은 남편을 챙기는 아내들 모습이 덩달아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만, 그렇게 되면 책 제목이 '남편들이 알아야 할 아내습성보고서'가 되는 건가? 거 참, '아내는 남편의 거울입니다'라는 말이 거꾸로도 맞아들어가나보다.

덧붙이는 글 | <아내가 꼭 읽어야 할 남편생태보고서> 김상득 지음. 샘터, 2007.


아내가 꼭 읽어야 할 남편생태보고서

김상득 지음, 샘터사(2007)


태그:#부부, #남편, #아내,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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